詩가 흐르는 상자

[스크랩] 허기/안원찬

tlsdkssk 2017. 12. 5. 14:37

허기

 

안원찬

 

 

가스레인지 스위치를 켜자

썩을 놈의 혓바닥이

냄비의 엉덩이를 허벌라게 핥아댄다

 

시퍼렇게 치미는 불꽃에

조개처럼 입 쩍 벌린 냄비뚜껑

라면 한 개를 통째로

심청이처럼 꿀꺼덕 삼켜버린다

 

수프를 뿌리고 계란을 풀자

오 분도 안 돼 게슴츠레해진 라면 가닥

냄비 뚜껑 위로 끌어올려

굶주린 똥개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운 허기

코끝에 비지땀 흘리며 밑구녕까지 싹싹 핥는다

온종일 게걸스럽게 나를 신고 다닌 낡은 구두짝

미친개 가랑이 벌리듯 헤벌쭉한 채

코 골고 있다

고단함 풀풀 날리며

 

 

 

- 시집 귀가 운다중에서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긴밭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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