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미래인의 생활

tlsdkssk 2017. 10. 31. 07:03

전 세계 100억의 사람들과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복합지성 시스템들이 모두 인터넷으로 완전히 연결된 세상을 상상해 보자. 이른바 접속의 시대이다. 그곳에는 접속 인간과 접속 시스템이 가득하다. 그들은 지상의 모든 도시들과 바다, 지하 깊은 곳, 심해, 하늘 멀리 우주의 깊은 공간 속에서도 존재한다. 현실 세계만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에도 역시 그들은 가득하다.


   

   영상출처  chrisdancy.com 

그곳에서의 접속은 어떤 수단을 통할까. 아마도 거대한 플랫폼, 특히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런 초접속의 세상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마치 우리 모두가 초인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1967년 하버드 대학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는 서로 모르는 임의의 두 사람이 5명만 거치면 모두 알 수 있다고 하는 6단계 분리 이론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미래에는 누구나 어느 시스템이나 서로 즉시 알 수 있다. 모든 연결을 지원하는 소셜미디어의 정교하고도 방대한 정보와 네트워크 때문이다. 과거의 분리 이론은 종말을 맞는다.

     

그런데 그러한 연결에 묘한 점이 있다. 진정으로 그와 연결되었는지 여부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의 자아는 확장되고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비서 시스템들의 도움을 받아 현실과 가상의 수많은 세계에 존재한다. 그를 돕는 똑똑한 비서 시스템들은 그의 철학과 사고방식, 의사결정 구조, 언어와 몸짓 표현을 잘 알고 있으며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쇄도하는 수많은 연결 요구에 그를 돕거나 대신하는 방식으로 모두 1:1로 실시간 대응한다. 20세기 말 공학자들이 만들어 낸 병렬 컴퓨팅처럼 병렬접속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삼성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온라인 고객서비스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삼성처럼 그는 하나의 브랜드이다.

 

미래의 모든 접속 인간과 접속 시스템은 크든 작든 점차 브랜드화 될 것이다. 그 결과 그의 진정한 본질은 더욱 미궁으로 숨어들어가 스스로도 자신의 브랜드에 미혹된다. 그러한 세상에서 만남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이었던 니콜라스 카는 저서 유리감옥'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희생이 필요한 법이라고 하였다.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존하는 모사적 만남은 사람들을 결국 더욱 고립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게 만든다. 마치 모두를 만나는 제왕이 아무도 만나지 못해 외로운 것 처럼 말이다. 미래는 개인에게 고독한 제왕의 면류관을 씌우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서 이러한 시기의 자아는 심각한 '디지털 분열'을 경험한다. 이는 미디어 이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Douglas Rushkoff)가 주창한 개념으로서 현대인이 디지털 미디어에 빠져들면서 시간과 공간을 한없이 쪼개어 나가는 현상을 빗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시간을 나눔으로써 긴 이야기 보다는 즉흥적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고 긴 만남보다는 단시간의 관계에 집착한다. 공간을 나눔으로써 많은 곳에 존재하지만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곳에 있으면서 저곳의 삶을 살아간다. 시간과 공간의 분열은 서로 엉켜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자아의 패스트푸드화를 촉진한다.

 

패스트푸드에 젖은 고독한 자아는 스스로가 만든 브랜드를 두른 유리병 속에 갇힌다. 너나 나나 투명한 감옥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영상출처  raghdawahdan91.wordpress.com 

[출처] 미래 도시인의 생활(1) - 유리병 속에 살다|작성자 유기윤



미래의 그곳에는 두 개의 도시가 있다. 하나는 실제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가상 도시이다. 실제 도시는 지저분하고 위험하며 재해가 끊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플랫폼 노동자로 근근이 살아간다. 나의 존재감은 한마디로 하류인생이다. 반면에 가상 도시에서의 나는 호화스런 집과 요트, 그리고 미녀 제시카 알바를 빼닮은 인공지능의 아내와 함께한다. 마음대로 여행하며 게임을 즐기고 시시때때로 산해진미를 실컷 먹을 수 있다. 나는 어디에서 사는 게 좋을까.

 

   영상출처  flickrcom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가상과 실제의 도시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경험은 점차 실제보다 자유로운 가상의 도시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기술의 발전으로 뇌-인터넷 직접 접속이 구현된다면, 신체의 오감을 통한 정보 대신 가상의 오감을 통한 정보를 뇌로 보낼 수 있다면, 가상 도시가 실제 도시에 못지않은 상세함과 스케일을 갖출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는 충분히 현실적인 예측이다.

 

물론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지금까지와 그리고 미래의 기술발전에 대한 많은 예측들을 감안한다면 금세기 중반이면 약한 가상 도시가, 그리고 금세기 말이면 강한 가상도시가 출현하지 않을까 한다. 약한 가상 도시가 실제 도시를 부분적으로 모사한 것이라면 강한 가상 도시는 실제와 거의 비슷한 규모와 임장감을 준다.

   영상출처  thedmci.com.au​

  

그런 미래에서 커즈와일의 말처럼 시민들의 삶이 가상 도시로 옮아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우선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로서, 현실 도시에서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 아닐까. 팔 수 있는 재능의 부족과 그로 인한 경제적 궁핍, 끊임없이 시도되는 지배자들의 통제, 육체의 피로와 장애, 갖가지 질병, 오염된 공간, 짜증나는 추위와 더위, 시도 때도 없는 재난 재해,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흉해지는 외모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이유들이 내 삶을 신경질 나게 만든다. 가상의 도시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상당부분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늘어나는 수명이다. 시민들은 최신의 유전공학 기술 덕택에 세포를 교체하고 노화를 늦추어 나간다. 심지어 일부 시민들은 신체 냉동 기술까지 동원해 더 오랜 시간 살아 있으려 한다. 사람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는 일정 시점이 지나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아 대체가 불가능하다. 대신 다른 기관에 비해 수명이 길다. 따라서 뇌를 제외한 신체를 동면시켜 활동을 정지시키고 뇌에만 영양을 공급한다면 인간은 몇 백 년까지 정신생활을 할 수 있다.

 

   영상출처  polycount.com

 

신체 냉동을 위한 기술개발과 실험은 진작부터 행해져 왔다. 미국의 알코어 생명재단(Alcore Life Extension Foundation)에서는 1972년부터 최근까지 100명이 넘는 인간을 냉동보존하고 있다. 영하 169도의 액체질소 안에 신체를 보존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베드포드 박사를 1호로 하여 유명한 야구선수 테드 윌리엄스도 냉동되어 있다. 특히 테드 윌리엄스의 경우 머리와 몸을 따로 분리하여 냉동시켰다.

 

문제는 수시로 안전하게 냉동과 해동을 반복할 수 있느냐이다.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이끼 새끼돼지'라 불리는 동물을 30년 만에 해동시켜 살려낸 정도이다. 이끼 새끼돼지는 몸길이 0.2mm의 아주 작은 동물이다. 사람까지 성공시키려면 아직 갈 길이 한참이나 멀지만 기술은 계속해 진화하고 언젠가는 사람 역시 성공할 것이다. 특히나 뇌와 몸을 분리해 냉동과 해동하는 기술이 발달할 것이다.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 100세가 당연해 지고 나아가 유전공학이나 신체 냉동을 통해 뇌가 수백 년을 살 수 있다면 그 길고 지루한 날들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심심한 사람들은 현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짜릿한 경험이 기다리는 가상 도시로 슬금슬금 옮아가지 않을까.

 

세 번째로 생각나는 이유는 뇌구조의 변화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 마샬 맥루한은 당시로서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이렇게 말했다. “미디어는 사람들의 인식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인식의 근본적 변화란 곧 사람들의 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 증강 현실과 가상현실의 놀라운 경험들은 포괄적으로 미디어 경험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의 뉴런과 시냅스 연결 자체에 큰 변화를 줄 것이다.

 

특히 어릴 때부터 증강, 가상, 실제 현실의 중첩 속에서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뉴런과 시냅스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뇌 구조의 변화는 사고의 변화로 이어진다. 사고는 원래 텅 빈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런데 뇌라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이 세상과 교류하면서 사고가 성장한다. 그래서 뇌의 구조에 따라 사고는 다르다. 새로운 세대의 뇌는 기성세대의 뇌보다 복잡하며 특히 가상 도시에의 적응과 선호가 남다를 것이다. 그들은 실제 도시를 답답해하고 때로 감옥처럼 여길 것이다.

 

   영상출처   seriouswonder.com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어쩌면 기성세대는 가상 도시에로의 진입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들의 아날로그 뇌는 기술 발전에 부적응하며 때로는 반감마저 갖는다. 사실 이는 현 시대에서 누구나 겪고 있는 일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높은 교육수준의 사람이라도 트렌드에 따른 단순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뿐이며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전 세계 100억의 인류가 서로 연결되면서 초경쟁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는 자명하다.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 보수적 성향의 사람이나 나이 때문에 이해력과 적응력이 뒤떨어지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이야기한 많은 이유들 때문에 가상 도시는 미래로 갈수록 붐비게 될 것이다. 약한 가상 도시에 몇 시간 정도 접속했다면 강한 가상 도시에는 신체를 냉동시킨 채 뇌가 수백 년을 머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곳은 시민들에게 있어 또 하나의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상 도시는 가상으로서의 충만한 현실을 담고 있다."

  


사람은 감옥에 갇히면 답답해한다. 주변 생명체와의 단절이 큰 이유를 차지한다. 여기서 감옥이란 엄밀히 말하면 외부로 향한 감옥이다. , 나의 오관이 제한되어 단절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또 다른 종류의 감옥이 있다. 바로 내부로 향한 감옥이다.

   영상출처  CNN.com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내부로 향한 감옥에 갇히는 것에 대하여는 무감각하다. 외부 감옥에 갇히면 오관을 통한 주변 생명체와의 외적 교류가 차단되듯이 마찬가지로 내부 감옥에 갇히면 내면 의식을 통한 주변 생명체와의 내적 교류가 차단된다. 결국 감옥에 갇히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내부 감옥에 갇혀온 사람은 자신이 수감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한 번도 내면의 채널을 통한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미래의 도시에서는 내면의 감옥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늘어나지 않을까. 이유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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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했듯이 미래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점차 스스로의 유리병 속에 갇히게 된다. 아무라도 볼 수 있지만 누구와도 깊은 만남을 갖기 어렵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외부 감옥에 점점 깊이 갇힌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주변 생명체와의 단절이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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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외부 감옥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내부 감옥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감옥에 갇힌 수감자가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내면의 길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에게는 생존의 본능이 있다. 외부 감옥에 갇히게 되면 내부의 통로를 찾아낸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련하는 사람이 깜깜한 동굴에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자신을 외부로 가두어야 내부를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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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래로 갈수록 시민들은 외부의 감옥을 통해 오히려 내부의 감옥을 더욱 절절하게 체험하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를 해방하기 위한 노력, 즉 자아의 탐구가 더욱 치열하게 일어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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