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장진호 전투

tlsdkssk 2017. 7. 15. 12:07
각주1
6.25전쟁 [장진호 전투 이야기] ◎戰史實錄 ☆★

2017.06.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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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2대 동계(冬季)전투:
6.25전쟁 <장진호 전투> 이야기
 
한국전 참전 美해병대가 무너졌다면 UN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했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다.

金泌材      

 

 

장진호 전투와 美해병 제1사단

▲제1단계는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에 따른 개전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으로 정세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점이다. ▲제2단계는 38선을 돌파해 압록강까지 진출해 거의 전쟁이 끝날 것으로 여겨졌던 시점. ▲제3단계는 중공군의 참전에 따른 UN군의 후퇴와 그 이후 휴전까지 전개됐던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시기이다.  

 

이 가운데 ‘장진호(長津湖) 전투’(1950.11.27~12.11)는 6.25전쟁의 제2단계에서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38선을 돌파한 UN군이 북한의 청천강 이북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대병력(12만 명)을 만나 후퇴를 하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투이다.

전쟁초기 청천강 유역의 서부(西部)전선에는 美8군 휘하의 美 제1군단(美 제24사단, 국군 제1사단, 英연방 제27여단으로 구성), 중앙에는 제9군단(美 제25보병사단, 제2보병사단, 여단규모의 터키 전투단), 그리고 조금 동쪽으로 국군 제2군단(국군 제6사단, 7사단, 8사단), 예비대로 美 제1기병사단과 英연방 제29독립보병연단이 전개하고 있었다.

美 해병1사단, 중공군 12만 명과 사투(死鬪)벌여

동부전선에는 원산에 상륙했던 해병대 병력과 육군 병력으로 구성된 美 제10군단(美 제1해병사단, 美3사단, 美7사단), 국군수도사단과 3사단을 주력으로 하는 국군 제1군단이 전개하고 있었다. 당시 동부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美 제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은 ‘크리스마스 공세’의 공격개시일을 11월27일로 정하고, 美 제1해병사단에게 무평리를 목표로 진격해 제8군과 연결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제5 및 제7연대는 11월 25일 유담리까지 진출한 후, 11월 27일 아침에 유담리에서 무평리를 향하여 공격을 시작하였으나,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공격이 저지되고 말았다.

동부전선의 美 제10군단에 예속되어 있던 美 제1해병사단(1만 2,000명)은 장진호 북방으로 진출하던 중공군 제9병단의 공격을 받고 7개 사단 규모(12만 명)의 중공군이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을 빠져나오기 위해 2주일 동안에 걸친 死鬪를 벌인다.

인천상륙작전 당시의 모습. 사진 맨 오른쪽 인물이 美해병 제1사단을 지휘한 올리버 소장이다.


이 전투에서 美 제1해병사단은 혹심한 추위를 무릅쓰고 유담리로부터 진흥리까지 40㎞가 넘는 협곡을 겹겹이 에워싼 중공군 포위망을 벗어나는 동안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美 제1해병사단은 공군의 근접 항공 지원 하에 과감한 돌파작전을 전개해 함흥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장진호 전투’의 주인공인 美 제1해병사단은 1950년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후, 11월 2일 함흥 북방 수동 일대에서 중공군을 물리치고 진격을 계속해 진흥리와 황초령을 거쳐 고토리를 점령했으며, 11월16일에는 장진호 남단 하갈우리에 도달했다.

당시 美 제1해병사단을 공격하고 있는 중공군 제9병단(제20, 26, 27군) 12개 사단은 11월 초순 집안에 도착, 곧 압록강을 넘어 장진호방면으로 신속히 남진해 있다가 서부전선에서 중공군의 1차공세를 통해 시간적 여유를 얻은 후 11월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 유담리에 있던 美 제1해병사단 2개 연대에 투입된 부대는 4개 사단이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美해병대는 해병대의 전통에 따른 부상자뿐만 아니라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과 함께 철수했다.


서부전선에서는 중공군의 2차 공세로 인해 美 제8군의 전선이 붕괴되자 UN군사령부는 11월30일 전면철수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유담리의 해병 2개 연대는 사단사령부가 위치한 하갈우리로 철수해 사단과 합류한 후 흥남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11월30일 美 제1해병사단의 주력부대는 유담리에서 돌파작전을 시도, 12월2일 덕동고개까지 진출한 후, 하갈우리로 향한 돌파작전을 실시했다. 하갈우리에는 스미스 장군 휘하 약 1만 명의 병력과 1천대 가량의 차량이 있었다. 그러나 해병대에게 하갈우리의 도착은 철수의 첫 단계에 불과했다. 고토리, 진흥리,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함흥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올리버 사령관, 사병들과 生死 함께해

중공군은 美 해병 2개 연대에 4개 사단을 투입하여 공격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하갈우리로부터의 미군 철수로에 대하여 종전의 4개 사단에다 추가로 5개 사단을 투입했다. 또한 중공군은 하갈우리-고토리-진흥리 도로상에 주요 교량을 폭파하고 장애물을 설치하여 美 해병의 철수에 치명타를 입힐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혹독한 추위에 凍死한 美해병대 장병들의 모습. 그들은 추위속에서 조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죽어갔다.


이에 UN군 측에서는 철수를 제의하기도 하였으나 美 제1해병 사단의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사령관(Oliver P. Smith, 소장)은 이를 거절하고, 육로 철수를 단행했다.

당시 2차 대전의 경험이 있는 일당백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노련한 해병대원들과 올리버 사령관은 부대가 중공군에게 포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헬기로 포위 지역에 지휘소를 차리고 사병들과 生死를 같이 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당시 올리버 사령관은 이 작전이 후퇴작전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후퇴라니!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공격 중”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때부터 美 해병 제1사단은 “후퇴가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을 위한 긴 여정에 들어갔다.

1950년 12월9일 美10군단은 모든 UN군으로 하여금 흥남지역으로 철수하라는 작전명령을 하달했다.
이에 따라 12월10일 오전 6시, 美해병 제1사단은 행군 행렬이 함흥에 도착하기 시작했고, 12월11일
저녁까지 최종부대가 함흥에 도착했다. 흥남에서는 14일~24일까지 UN군 12만 명과 피난민 10만 명이
해상으로 철수했다. 사진은 흥남부두 폭파를 지켜보고 있는 <uss begor="">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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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12월 6일 하갈우리를 출발한 美 해병대와 美 보병 제7사단 1개 연대는 끝내 죽음의 통로를 통과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1일에는 최종 목적지인 함흥과 흥남간의 집결지에 도착함으로써 14일간의 철수작전을 마치게 되었다.

11월27일~12월11일까지 美 제1해병사단은 전사상자(戰死傷者) 3,637명 비전투전사상자(非戰鬪戰死傷者) 3,657명을 기록했다. 비전투사상자 대부분은 동상환자였다. 중공군 제9병단은 장진호 전투로 무력화됐다. 10월15일~12월15일까지 戰死 25,000명, 負傷 12,5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中共軍의 ‘3차 공세’ 막는데 공헌

이 전투결과 중공군의 함흥지역 진출이 2주일간 지연됨으로써 동북지방으로 진격하였던 국군과 UN군부대들이 흥남으로 집결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됐다. 곧 이어 개시된 흥남철수작전도 가능하게 되었다.

전설을 만든 'Chosin Few'(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모임) 들은 지금도 존경의 대상이다.


중공군 제9병단은 당시 피해로 중공군 3차 공세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중공군의 3차 공세는 후속병력 부족으로 전과를 확대하지 못하고 수원일대에서 멈출 수밖에 없게 됐다.

반면 국군과 UN군은 반격을 기틀을 마련해 이후의 전장에서 다시금 주도권을 쥐게 됐다. 전사가(戰史家)들은 당시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 추위 속에서 美 해병대가 무너졌다면 UN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이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동계(冬季) 전투이자 6.25전쟁의 10대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戰史에 기록됐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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