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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 2대 동계(冬季)전투:
6.25전쟁 <장진호 전투> 이야기
한국전 참전 美해병대가 무너졌다면 UN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했을 것이고,
대한민국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다.
장진호 전투와 美해병 제1사단
이 가운데 ‘장진호(長津湖) 전투’(1950.11.27~12.11)는 6.25전쟁의 제2단계에서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38선을 돌파한 UN군이 북한의 청천강 이북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대병력(12만 명)을 만나 후퇴를 하게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투이다. 전쟁초기 청천강 유역의 서부(西部)전선에는 美8군 휘하의 美 제1군단(美 제24사단, 국군 제1사단, 英연방 제27여단으로 구성), 중앙에는 제9군단(美 제25보병사단, 제2보병사단, 여단규모의 터키 전투단), 그리고 조금 동쪽으로 국군 제2군단(국군 제6사단, 7사단, 8사단), 예비대로 美 제1기병사단과 英연방 제29독립보병연단이 전개하고 있었다. 美 해병1사단, 중공군 12만 명과 사투(死鬪)벌여 동부전선에는 원산에 상륙했던 해병대 병력과 육군 병력으로 구성된 美 제10군단(美 제1해병사단, 美3사단, 美7사단), 국군수도사단과 3사단을 주력으로 하는 국군 제1군단이 전개하고 있었다. 당시 동부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美 제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은 ‘크리스마스 공세’의 공격개시일을 11월27일로 정하고, 美 제1해병사단에게 무평리를 목표로 진격해 제8군과 연결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제5 및 제7연대는 11월 25일 유담리까지 진출한 후, 11월 27일 아침에 유담리에서 무평리를 향하여 공격을 시작하였으나,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공격이 저지되고 말았다. 동부전선의 美 제10군단에 예속되어 있던 美 제1해병사단(1만 2,000명)은 장진호 북방으로 진출하던 중공군 제9병단의 공격을 받고 7개 사단 규모(12만 명)의 중공군이 포위망을 형성한 장진호 계곡을 빠져나오기 위해 2주일 동안에 걸친 死鬪를 벌인다.
‘장진호 전투’의 주인공인 美 제1해병사단은 1950년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후, 11월 2일 함흥 북방 수동 일대에서 중공군을 물리치고 진격을 계속해 진흥리와 황초령을 거쳐 고토리를 점령했으며, 11월16일에는 장진호 남단 하갈우리에 도달했다. 당시 美 제1해병사단을 공격하고 있는 중공군 제9병단(제20, 26, 27군) 12개 사단은 11월 초순 집안에 도착, 곧 압록강을 넘어 장진호방면으로 신속히 남진해 있다가 서부전선에서 중공군의 1차공세를 통해 시간적 여유를 얻은 후 11월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 유담리에 있던 美 제1해병사단 2개 연대에 투입된 부대는 4개 사단이었다.
11월30일 美 제1해병사단의 주력부대는 유담리에서 돌파작전을 시도, 12월2일 덕동고개까지 진출한 후, 하갈우리로 향한 돌파작전을 실시했다. 하갈우리에는 스미스 장군 휘하 약 1만 명의 병력과 1천대 가량의 차량이 있었다. 그러나 해병대에게 하갈우리의 도착은 철수의 첫 단계에 불과했다. 고토리, 진흥리,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함흥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올리버 사령관, 사병들과 生死 함께해 중공군은 美 해병 2개 연대에 4개 사단을 투입하여 공격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하갈우리로부터의 미군 철수로에 대하여 종전의 4개 사단에다 추가로 5개 사단을 투입했다. 또한 중공군은 하갈우리-고토리-진흥리 도로상에 주요 교량을 폭파하고 장애물을 설치하여 美 해병의 철수에 치명타를 입힐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당시 2차 대전의 경험이 있는 일당백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노련한 해병대원들과 올리버 사령관은 부대가 중공군에게 포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헬기로 포위 지역에 지휘소를 차리고 사병들과 生死를 같이 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었다. 당시 올리버 사령관은 이 작전이 후퇴작전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후퇴라니!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공격 중”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때부터 美 해병 제1사단은 “후퇴가 아닌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을 위한 긴 여정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12월 6일 하갈우리를 출발한 美 해병대와 美 보병 제7사단 1개 연대는 끝내 죽음의 통로를 통과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1일에는 최종 목적지인 함흥과 흥남간의 집결지에 도착함으로써 14일간의 철수작전을 마치게 되었다.
中共軍의 ‘3차 공세’ 막는데 공헌 이 전투결과 중공군의 함흥지역 진출이 2주일간 지연됨으로써 동북지방으로 진격하였던 국군과 UN군부대들이 흥남으로 집결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됐다. 곧 이어 개시된 흥남철수작전도 가능하게 되었다.
반면 국군과 UN군은 반격을 기틀을 마련해 이후의 전장에서 다시금 주도권을 쥐게 됐다. 전사가(戰史家)들은 당시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 추위 속에서 美 해병대가 무너졌다면 UN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했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이 벌인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동계(冬季) 전투이자 6.25전쟁의 10대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戰史에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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