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세한도/ 주용일

tlsdkssk 2016. 11. 23. 08:03

 

  세한도

 

고독해 본 사람은 안다

삶이 제 몸 속에 제 이빨 박아 넣는 일이라는 것을

흙벽에 걸린 양파가 제 살 속에

흰 뿌리를 밀어 넣어 푸른 목숨을 부축하는 겨울

빈들에 눈이 내리고 칼바람이 분다

고독이란 제 자리에서 꿈쩍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형벌이어서

적막한 사방을 위리안치의 몸으로 지켜보는 것이어서

앞산 봉우리 잔설에도 눈이 시리다

얼음 속으로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 쫓아

마음은 가끔 세상을 기웃거리다 돌아오는데

제 몸의 즙액으로 목숨을 견뎌야 하는 이 겨울은

날마다 몸이 마르고 마음이 가볍다


     - 주용일(1964~2015)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그린 그림이다. 그 절해고도에서 가시 울타이에 같혀 지낼 때("위리안치") 그는 가장 가까웠던 친구(김유근)와 아내를 잃었다. 시인은 추사의 '세한도' 안에 자신의 고독을 다시 새겨 넣었다. 이 시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인은 병마에 몸을 빼앗겼다. 2015년 1월의 일이다. 그는 얼마나 고독하게 제 목숨을 견뎠을까.

                                                                         중앙일보 시가있는아침/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