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갑질의 심리학

tlsdkssk 2016. 8. 8. 00:20

[경향신문]ㆍ현대 과학자들이 찾아낸 권력과 ‘갑질’의 심리학

최근 교육부 고위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다”라고 발언해 파면됐다(경향신문 7월8일 보도). 그는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사회의 상식과 정의에 어긋나는 이 같은 발언의 원인은 고위공무원으로서의 특권의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특권의식과 권력의 맛에 취해 사회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례가 잇따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나 주차원을 무릎 꿇게 하고 화를 낸 백화점 모녀 사건, 대기업 간부가 라면이 덜 익었다며 비행기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 등 한국사회에서 갑질의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높은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일까?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특히 권력이 인간의 뇌와 호르몬 등 생물학적인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제까지 발표된 연구를 종합하면 권력에 취하면 뇌가 변하고 그 결과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 편한 대로 명령을 하는 ‘고권력자’는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 E를 그릴 때 자기가 쓰기 편한 방향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상대방에게는 E의 좌우가 거꾸로 보인다.
나 편한 대로 명령을 하는 ‘고권력자’는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 E를 그릴 때 자기가 쓰기 편한 방향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상대방에게는 E의 좌우가 거꾸로 보인다.
남 보기 쉽게 명령을 받는 저권력자는 상대가 쉽게 알아보도록 알파벳 E를 그린다. 실험결과 저권력자 실험그룹은 12%만이 자신이 편한 방향으로 알파벳 E를 그렸다.
남 보기 쉽게 명령을 받는 저권력자는 상대가 쉽게 알아보도록 알파벳 E를 그린다. 실험결과 저권력자 실험그룹은 12%만이 자신이 편한 방향으로 알파벳 E를 그렸다.

■권력이 공감능력을 떨어뜨린다

회사에서는 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할까? 과학자들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는다.

이를 증명한 게 ‘알파벳 E 실험’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소속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2006년 ‘심리과학학술지(Psychological science)’에 사람은 권력을 가질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갈린스키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명령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다른 그룹에는 명령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갑자기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 대문자 E를 그려보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명령을 했던 기억을 떠올린 일명 ‘고권력자’ 실험그룹은 33%가 자신이 쓰기 편한 방향으로 알파벳 E를 그렸다. 반면 저권력자 실험그룹은 전 그룹의 3분의 1인 12%만이 자신이 편한 방향으로 알파벳 E를 그렸다. 자신이 쓰기 편한 방향으로 이마에 알파벳 E를 그리면 상대방은 알파벳 E의 좌우가 거꾸로 보인다. 즉 고권력자 그룹보다는 저권력자 그룹에서 상대방이 보기 편하도록 알파벳 E를 그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오른손과 왼손잡이의 차이는 실험 과정에서 그 영향을 통제했다.

최근에는 권력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어대 제레미 호기븐 교수와 토론토대 마이클 인츠리트 교수 공동연구팀은 권력을 가지면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게 하는 거울뉴런이 잘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남에게 의존했거나 또는 남에게 지시를 내렸던 경험을 글로 쓰게 한 뒤 손으로 고무공을 쥐는 영상을 보여줬다. 그 결과 권력이 있었을 당시를 회상한 실험 참가자는 거울뉴런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반대 그룹은 거울뉴런이 활발히 작동했다.

연구결과는 2014년 심리학 분야 국제 유명 학술지인 심리실험학회지에 게재됐다. 거울뉴런은 타인의 말을 듣거나 표정·몸짓을 보면서 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다.

다커 켈트너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권력에 취하면 타인과 동료를 괴롭히며 모욕을 더 많이 준다는 연구결과도 내놨다. 켈트너 교수는 이 모습이 마치 눈 바로 뒤편에 위치한 뇌 부분인 안와전두엽이 손상된 환자의 행동 방식과 비슷하다며 권력에 취한 행동과 뇌질환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호르몬 변화시켜

권력이 체내 호르몬을 변화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심리학과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2013년 발간한 책 <승자의 뇌>에서 권력이 주어지면 남녀 모두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 호르몬이지만 여성의 몸에도 소량이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데 그 양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두려움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테스토스테론이 권력욕과 관계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붉은원숭이의 무리를 관찰한 동물행동학자 캐론 쉬블리 덕분이다. 쉬블리 박사는 붉은원숭이 무리를 관찰하다가 서식지 다툼에서 패배한 원숭이는 유순해진 반면 승리한 원숭이는 더 포악해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양측 원숭이의 호르몬 변화를 측정했더니 승리한 원숭이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높아졌지만 패배한 원숭이는 그 수치가 낮아져 있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테스토스테론뿐 아니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도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2008년 심리학 분야 국제 학술지 ‘호르몬과 행동’에 여성의 경우 권력을 갖게 되면 에스트로겐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연구진은 남성의 경우 권력과 테스토스테론의 상관관계가 명확한 반면, 여성의 권력과 테스토스테론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는 연구 수가 많지 않아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연구진은 여성 참가자들에게 이기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록 하는 게임을 제안한 뒤 그들의 게임 전후 침 속에 섞인 에스트로겐 수치를 분석했다. 조사 결과 높은 자리에 올라간 참가자의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져 있었다. 어떤 참가자는 게임에서 이긴 뒤 하루가 지나서도 침 속의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게 유지됐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은 권력을 얻은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는 것과 여성의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는 것이 비슷한 경향성을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권력에 취하면 오만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적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 본성인 것도 같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죄수와 간수 실험’에서 간수 역할을 부여받은 실험참가자의 60%가 권력을 등에 업고 죄수 역할을 부여받은 실험참가자를 고통스럽게 고문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권력자들이 권력에 취하거나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짐바르도의 실험에서 40%의 실험참가자는 간수로서 죄수에게 고통을 주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따르지 않았듯 말이다. 인간은 권력 추구 욕구와 인간으로서의 정의 추구라는 욕구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