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크랩] 장계향은 본받을만한 사례가 되지 못한다

tlsdkssk 2016. 7. 19. 17:25

 


 ‘음식디미방’이란 책을 쓴 장계향이란 인물이 있다. 장계향은 인동장씨 가문에서 태어나 재령이씨인 이시명에게 시집간 조선 17세기 여인으로, ‘음식디미방’은 특히 조선시대 여성이 한글로 쓴 최초의 고(古) 조리서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음식디미방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 책의 저자인 인동장씨 가문의 여인 ‘장계향’이란 인물의 삶도 자연스레 조명을 받았었다.


 헌데 장계향의 삶을 논하면서 가끔 눈길가는 부분이 그녀가 계모(繼母)였다는 점이다. 실제 장계향은 젊은 나이에 1남1녀를 둔채 상처한 이시명의 후처로 들어갔고 이후 이시명과의 사이에선 8남매를 더 낳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시명의 전처소생 자녀들에겐 계모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재혼가정이나 계모의 아동학대 사례가 가끔 사회에 이슈가 되면서 조선시대 있었던 ‘착한계모’의 사례로 장계향을 언급하는 글을 종종 보게 되었다.


 헌데 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장계향이 젊은 나이에 상처한 이시명의 후처가 되어 그의 전실소생 두 남매를 포함한 총 10남매를 키운것은 사실이나 어쨌든 그녀 또한 이시명과의 사이에 8남매를 보았다. 적어도 장계향 자신으로선 그다지 손해볼것이 없었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작 좀 주목해봐야할 부분은 장계향이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자 60에 혼자되신 아버지와 특히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문제 때문에 그 무렵에 자신보다도 나이어린 젊은 여인을 후처로 들이게 해서 친정의 대를 잇게 했다는 부분이다. 조선시대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것’이 가장 큰 중심윤리였던 조선시대의 가치관에서 이해해야할 부분이긴 하지만 여하튼 꽤 흥미로운 사실인것은 틀림없다. 사실 요즘 같으면 자기 친정아버지에게 직접 나서서 그것도 자신보다 어린 여자를 후처로 들이게 할 그럴 여자도 없겠지만, 혹여 있다해도 ‘혹 정신이 좀 나간 이상한 여자 아닌가 ?’ 하고 다들 수군거릴것이다. 장계향의 이 일화는 확실히 ‘가문의 대를 잇는것’이 중요한 가치관이었던 조선시대 윤리관으로 이해해야할 부분이다. - 헌데 장계향을 여중군자(女中君子)라 칭송하면서 이 일화를 소개하는것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이런 사례가 그렇게까지 흔하게 있던 일은 아니었던것 같다.


 장계향 여사의 삶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른바 ‘착한계모’의 사례를 언급하며 장계향 여사의 일을 사례로 드는것이 적합한가 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인터넷에서 새엄마 또는 재혼관련 카페 그 외 신문,방송,잡지등을 통해 총 200여건에 달하는 새엄마의 사례를 접해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중요한 사실 몇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새엄마는 ‘천사도 악마도 아닌 그냥 보통 아줌마’일 뿐이라는 점과 그 외 또 중요한 사실중 하나는 세상에 의외로 ‘새엄마의 처지’가 되어있는 사람의 사연이나 상담을 들어주는 상담소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가령 청소년 상담소만 해도 부모 이혼이나 재혼 또는 새엄마 문제로 고민하는 자녀들의 상담을 들어주는 경우는 많아도 근본적으로 이곳은 ‘새엄마의 사연’ 상담을 들어주는 곳이 아니고 그 외 가정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한 상담을 들어주는곳도 대개는 부부문제나 이혼,재혼에 관한 문제가 상담의 성격의 주를 이루지 알고보면 ‘새엄마가 된 입장’의 사람의 문제가 주 포인트가 되어 상담을 들어주는곳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 간혹 사연 상담신청을 해도 대개는 ‘아이들을 좀 더 사랑으로 감싸안으라’던가 ‘아이들과 소통을 잘해보라’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만 나온다는것이 새엄마들의 고민이었다.


 기왕에 이혼,재혼 가정의 사례가 수두룩하게 존재하고 ‘새엄마’가 된 입장의 여성들도 많다면 ‘새엄마의 입장’을 제대로 들어주는 상담역할도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기왕이면 모범적이고 본받을만한 가령 새엄마와 전처자녀 사이에 잘 지낸다던가 재혼직후 초반기 갈등을 잘 극복하고 지금은 잘 지내는 그런 사례는 없을까 그와같은 ‘새엄마의 모범답안’이라고 할만한 사례들을 모아볼만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장계향의 사례는 ‘착한계모’의 사례로 하기엔 여러 가지로 부적합하다. 근본적으로 장계향 여사는 17세기 조선시대 사람이다. 상처(喪妻)한 전력이 있는 이시명이란 사람과 혼인하였다고 하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시명에게 총 열명의 자녀가 있었고 그중 두명의 자녀만이 장계향이 아닌 전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자녀일 뿐이다.


 오히려 장계향 여사의 삶에서 눈길가는 부분은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문의 대를 잇기위해 아버지가 젊은 후처 다시말해 젊은 새어머니를 맞아들이게 했다는 점이다. ‘가문의 대를 잇는것’이 중요한 가치관이었던 조선시대의 윤리관에서 이해해야 하는 일이긴 하지만 여하튼 현대인들에겐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기왕에 ‘모범적인 재혼가정’ 또는 새엄마 사례를 찾아보려면 그 접근방식에서부터 달리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냥 천사나 부처같은 그런 새엄마도 없고, 정말 무슨 지옥에서 뛰쳐나온 화신마냥 악독하기만 한 그런 새엄마도 세상에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알고보면 새엄마는 천사도 악마도 아닌 그냥 ‘보통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접근해야할 일이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 여사는 ‘여중군자(女中君子)’란 칭송을 들었을 정도로  조선시대의 유교적 가치관에 충실한 삶을 살다간 조선시대 전형적인 인고와 순종의 삶을 살다간 여인일 뿐이다. 심지어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자신보다 나이어린 새어머니를 들일 정도로 그 당시에도 웬만해선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일까지 감당해낸 여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따금 논객들이 ‘착한계모’의 사례로 장계향을 언급하는것은 좀 문제가 있기에 이와같은 글을 쓰게되었다.


 착한계모,악한계모 마치 이런것이 따로 존재하는것처럼 접근하는 이와같은 방식부터가 애초부터 문제가 있는 편견에서부터 출발된 지적이고 분석이긴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의 접근이든 장계향이란 여성의 삶은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게 본받으라고 제시할만한 사례로는 부적합하기에 하는 이야기다. 더욱이 그 무슨 ‘착한계모’의 사례로 장계향 여사의 일을 언급하는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적어도 ‘착한계모’ 사례로 장계향 여사의 일을 언급하는것은 좀 삼가 주었으면 좋겠다.







 






출처 : 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글쓴이 : 굿가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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