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풀/문정희
집시처럼 떠돌며 살아가는 풀을 보았다
온몸을 축구공처럼 둥글게 말아가지고
땅 위를 굴러다니다가
일 년에 한두 번 사막에 비가 오면
그 자리에 얼른 뿌리를 내려
생명을 퍼뜨리는
덤블링플랜트*
폭양을 쪼아 먹고 사는 새처럼
황금빛 뼈와 날카로운 가시만 남은
가벼운 빈집
오직 부재로 가득한 바람 속을
부서질 듯 부서질 듯
굴르고 굴러
사뭇 경건한 힘 하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식물의 자서전이 아니라
떠돌이 고행자의 경전을 쓰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혼신을 다해 떠도는 검불의
황홀한 생애
나 사막에 가서 두 눈으로 보고 말았다
* 덤블링플랜트 : 사막을 덤블링하듯 굴러다니는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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