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떠돌이 풀/문정희

tlsdkssk 2015. 6. 12. 08:59

떠돌이 풀/문정희

 

 

 

집시처럼 떠돌며 살아가는 풀을 보았다

온몸을 축구공처럼 둥글게 말아가지고

땅 위를 굴러다니다가

일 년에 한두 번 사막에 비가 오면

그 자리에 얼른 뿌리를 내려

생명을 퍼뜨리는

덤블링플랜트*

 

폭양을 쪼아 먹고 사는 새처럼

황금빛 뼈와 날카로운 가시만 남은

가벼운 빈집

 

오직 부재로 가득한 바람 속을

부서질 듯 부서질 듯

굴르고 굴러

사뭇 경건한 힘 하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식물의 자서전이 아니라

떠돌이 고행자의 경전을 쓰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혼신을 다해 떠도는 검불의

황홀한 생애

나 사막에 가서 두 눈으로 보고 말았다

 

 

 

* 덤블링플랜트 : 사막을 덤블링하듯 굴러다니는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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