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류근

tlsdkssk 2015. 6. 11. 19:01

시인 스스로는 자신을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 칭한다. 웬 이상한 단어들의 나열인가 싶지만, 그가 노래한 시들과 그가 걸어온 궤적을 살펴보면 어렴풋이 뭔가 잡힐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시인 스스로 ‘통속’을 자처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어느 누구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모른 척 혹은 아닌 척하고 살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그리고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알고 보면 얼마나 통속한 것인가. 그저 더 나쁘지 않은 혹은 더 불행하지 않은 처지와 비교해 겨우겨우 위안해가며 연명해 나가는 것이 대부분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그 통속적 삶과 세상에 대해 가장 멀리하려 하거나 섣부른 ‘감상’으로만 치환해 버리려 하는 것도 시 혹은 시인이 아니었나 싶다. 자고로 시인이라고 하면 멋있고 어려운 말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

꿈에게조차 배반당하기 일쑤인 삼류 시인은 그런 위악과 위선을 가장 혐오한다고 했다. 허례허식이나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본질을 경도해버리는 자세에 대해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단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한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일단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람들만 떠올려봐도 어떤 분야든 유연한 사람들이 훨씬 즐길 줄 알고 그래서 그런지 실력도 더 뛰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은 자신을 일부러 꾸미거나 드러내려고 애쓰지도 않고 당연히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뭔가를 일부러 만들어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괜히 무게를 잡고, 엄격하게 긴장을 조성해 진짜 본질을 외면하려고 한다. 사실 세상이 그렇게 근엄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는데 말이다.

“시 또한 마찬가지죠.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시가 돼야 합니다. 그동안은 시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었어요. 시 쓰기도 어렵고,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들조차 서로의 시를 읽기 어렵고, 당연히 시를 읽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세상이었죠. 또 시대가 불행한 탓에 시인은 너무나 지사적인 사람이어야만 했고요. 시인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에요. 놀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죠. 저는 망가지는 법, 만만해지는 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언제나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낮은 시인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읽히는 시를 택했다. 꾸미고 만들고 끌어다 붙이지 않는다. 통속한 일상의 풍경을 담아내고, 대신 그 안에서 빛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소리 내 술술 읽힐 수 있게 평소 쓰던 어투와 단어도 그대로 살린다.

물론, 그는 시가 영혼을 다루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영혼으로 쓰고 읽고 느끼길 바란다. 그가 강조하는 ‘쉬움’은 결코 하찮게 소비되고 가볍게 버려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쉽다는 것과 가벼운 것은 엄연히 다른 것. 진지함은 털어버리되, 더 깊이 다듬고 메워서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특히, 그는 페이스북에서 인기가 무척 높은 시인으로 잘 알려졌다. 페이스북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를 즐기는 그의 팔로어(Follow)는 한계치인 5천 명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그동안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모아 엮은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를 펴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자기 풍자, 자기 조롱 등 스스로 망가지고 아파하면서 내면을 드러내고 부끄러움을 공유하게 한다. 또한 성공과 행복 위주의 삶을 벗어나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으로 살아가는 자유에 대한 깨달음도 전한다.

김광석의 마지막 노래가 된,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
시라든가 시인라든가, 어쨌든 짐짓 까다롭게만 느껴져 아직도 경계를 풀지 못했던 이들도 아마 류근 시인의 이 ‘작품’에 얽힌 이야기만큼은 매우 흥미로워할 것이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 한 날들 /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파도가 이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떨리는 입술을 깨물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제목부터 가슴이 시려오는 고 김광석의 명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김광석 본인도 평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라고 얘기하고 다닐 정도로 아꼈고, 그래서였는지 결국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됐다. 그리고 이 곡의 노랫말을 쓴 사람이 바로 류근 시인이다.

“군 제대 직후에 등록금 좀 벌어보려고 썼던 거예요. 처음부터 김광석을 위한 가사를 쓴 게 아니라 다른 기획 음반을 위한 거였어요. 후배 한 명이 전인권 카페에서 기획실장을 했었는데, 노래 가사를 한번 써보라고 권하더라고요. 당시에 한 운동권 가수가 대중적인 노선을 걷기 위해 앨범을 기획하고 있었거든요. 닥치니까 막상 막막해서 처음에는 펜만 잡고 있다가 쓰다가 실패한 시까지 전부 끌어 모아서 막 쓰기 시작한 거예요. 하룻밤에 스물아홉 곡을 썼어요. 그런데 문제는 다 넘기고 나니까 음반사가 망해버렸대요.”

허공에 붕 떠버린 가사들이 아까워 속은 쓰렸지만, 달리 방법이 없을뿐더러 어차피 실패한 시라고 생각해서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까맣게 지워버린 채 지내던 어느 날, 가수 김광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찌어찌하여 떠돌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가사를 봤는데, 무척이나 마음에 드니 자기한테 주면 안 되겠냐고. 안 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당대 최고의 가객인데! 그리고 다시 며칠 뒤, 녹음실에 있는데 꼭 들려주고 싶으니 지금 좀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단다. 직접 곡을 붙여서 들려주고 싶단다. 물론, 한달음에 달려갔다.

“싱어송라이터라 김광석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을 다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내가 쓴 가사에 멜로디를 붙여서 그것도 본인 작업실에서 직접 들려주겠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워요! 녹음 스튜디오 안에 들어서서 딱 앉으니까 바로 기타를 치며 시작하는데…, 몹시 실망했어요. 제가 막연하게 그려봤던 느낌이랑 확연히 달랐거든요. 마음속으로 ‘진짜 이건 아닌데’를 수십 번 말했을 거예요. 저는 아마 약간 이문세 노래 풍의 잔잔한 걸 생각했거든요. 물론, 나중에 음반이 나오고 나서는 당연히 그 울림과 떨림에 반해버렸지만요. 지금도 뭐, 그 노래는 모든 사랑에 아픈 이들을 위한 성스러운 곡이죠.”

동시대를 함께했던 이들에게 김광석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자 상처였다. 무언가를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상처적 체질’을 지닌 젊은 시인에게도 그랬다. 슬프고 아팠다.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들어도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란 생각을 먼저 하기보다 “그렇게 되기 다섯 시간 전에 출연한 방송에서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불렀잖아요. 그래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기자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왔어요.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혹시 뭔가 아는 게 없냐고요”와 같은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먼저 꺼내놓을 수 있을 만큼이 됐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부식시켰다. 사람도, 감정도, 생각도,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들도.

사랑이란 건 그 자체만으로 이미 완성인데 다시 수식이 붙는 건 가짜라 외치던, 그것도 아프기까지 하다면 그건 정말 사랑이 아니라 읊조리던 청년도 어느새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내가 됐음을. 그렇게 모두 여기까지 왔다.

“노래 한 곡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실하게 느낄 때가 많아요. 제가 등단하고 시집 내고 아무리 시 이야기를 해봐야 아무도 관심을 안 보이는데, 그 노랫말만 꺼내면 다들 자세를 고쳐 앉아요(웃음).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아들 학교 선생님께서 우연한 계기로 그걸 아시고 갑자기 본인 사연을 줄줄…. 그러고 보면 세상에 참 누구나 가슴속에 절절한 사랑 하나씩은 품고 사나 봐요.”

노래 한 곡이 가진 위대함을 절감하는 때는 또 있다.

“이 노래 하나로 매달 술값을 벌어요. 현재 아무 노력 들이지 않고 버는 돈치곤 굉장히 큰 액수예요. 김광석씨가 살아 있을 때 저한테 얼른 저작권협회 가입부터 하라고 그랬었는데, 막상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진작 말 들을 걸 그랬다 생각이 들더군요. 1994년에 만든 곡을 2년 전에 등록했으니, 17년을 내버려뒀네요. 저는 뭐 한 달에 8천원 정도나 들어올까, 했었는데 지난달은 다른 때보다 많아서 60만원가량 받았어요. 20대 초반 우연히 썼던 가사가 누군가에 의해 생명력을 얻고, 또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지금 제게 이런 형태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글쎄요. 뭐라 생각해야 할지.”

원래 인생이라는 게 생각지도 않았던 사건들이 점철되면서 그 변형을 따라가는 거라고 하지만,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생겨나고 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많은 것들이 나의 하루를 지탱하고 구성할 때가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둘러싼 미묘한 파장들 그리고 우리 사이에 쌓여 있던 무수한 감정들, 뭉치고 흩어지며 또다시 흘러가기를 반복하다가 어떤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을 만나게 되면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현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이 될지, 먼 훗날이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지 않겠는가. 마치 지난 계절, 결정적 순간을 장식한 그 한 곡의 노래처럼 말이다.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 남아 있었다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 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 - 이외수
 
  시인이란다.  그래서 좀 고상하게 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커피도 한잔 내리고 편한 의자에 앉아 홀짝거리며 커피 마시면서 읽을려고 했었다. 사랑 이야기 아닌가?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떤 사랑일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외수 선생님의 추천평이 너무 강하다.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라니. 시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일까?  책장을 넘기자 마자 나오는 글 '이 책에 표기된 비속어, 문법 파괴 등의 표현은 원문을 쓸 당시의 격렬한 파토스와 문맥을 살리기 위해 저자와의 협의 아래...' 라고 되어 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읽으면 바로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류근 시인의 글은 이외수 선생님을 넘어선다.  이 분 누구실까?  깔깔 거리면서 웃다가 사뭇 당황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재주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  고상하게 읽으려고 했는데, 도통 그럴 여유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분이 살고 있는 시공간이 너무 낯설게 다가온다.  지금 시대에 이야기인지 훨씬 과거의 이야기인지 말이다.  그러면서 그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익숙하다. 
 

 작가에 대해 찾아보니 시인 류근은 시인들 사이에서 소문 혹은 풍문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란다. 그가 천재라는 소문도 있었고 술주정뱅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심지어는 미치광이라는 소문도 있었단다. 홍길동도 아니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단다.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시를 한 편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18년 만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전작시집을 냈을 때, 그 시집이 갖는 순정성 때문에 사람들은 다들 대경실색했고 그에 대한 풍문은 최고조에 이르렀단다. 그가 몇십억대 자산가라는 소문도 있었고, 돈 한 푼 없는 거렁뱅이라는 소문도 있었단다.  그뿐이 아니다.  소설가이자 신화학자인 고 이윤기 선생님은 그를 가리켜 3대 산문가라고 칭송했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었고 요절한 가수 김광석이 흠모했던 작사가라는 소문도 있었고, 애인이 백 명이라는 소문도 있었단다.  소문이 그랬단다.  모든 풍문은 풍문일 뿐일텐데, 책을 읽다보니 자산가라는 소문만 빼고는 거의 사실인 것 같다.
 
  시인의 시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올까?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를 읽으면서 시인의 글과 시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를 류근 시인이 썼단다.  글을 읽다보니 뜨악하고 있을 때 글을 써달라고 해서 써줬다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한다.  시에서는 욕이 없다.  '조또', '시바'같은 비속어가 책 곳곳에 나와 있어서 시에도 그런 비속어가 있나 싶었는데, 아니다. 담백하다. 충주 시내에 있는 유명한 술집 골목에 있는 조형물에 실려있다는 시인의 시도 담백하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대보내고 멀리 / 가을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 보내고 /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 눈물 나누나
그대보내고 아주 / 지는별빛 바라볼때 / 눈에 흘러내리는 / 못다한 날들 그 아픈사랑 / 지울수있을까?
어느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 흩날리는 거리에서, / 쓸쓸한 사람되어 / 고개~숙이면 그대~목소리 /
너무 아픈 사랑은 /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하루 바람이 / 젖은 어깨 스치며 지나가고 / 내 지친 시간들이 /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
너무 아픈 사랑은 /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 세상에 오지말기 /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 못다한사랑! /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너무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독작>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사람은 / 질실로 작별과 작별한 사람이 아니다
 
진실로 사랑한 사람과 작별할 때에는 /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 이승과 내생을 다 깨워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사랑을 살아가라고 / 눈 감고 독하게 버림 받는 것이다 / 단숨에 결별을 이룩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아 /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아라 / 혼자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다 불지르고 운다
 
  그는 술꾼이다.  술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술꾼이다.  아파서 마시고 외로워서 마시고 좋아서 마시고 슬퍼서 술을 마시는 술꾼이다.  그런데 언제 이런 글을 썼을까 싶으면 안 마실 때 썼단다.  부추밭에서 일하면서 네팔청년에게 욕을 얻어먹으며 글을 쓰고, 시래깃국을 먹고 먹고 또 먹었을 때도 쓰고, 동화작가를 꿈꾸는 주인집 아저씨와의 대화후에도 글을 썼다.  그래서 소문엔 그가 쓴 시가 수천편이 넘는다고 한단다.  글도 이럴진데, 분명 시도 수천편은 될 것 같다.  누군가의 글에서 그의 시집은 10년 넘게 쓴 글이라 하루동안 다 읽으면 안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1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농축된 글은 꼭꼭 씹고 애지중지하면서 읽어야 한단다.  2011년 10월 부터 2013년 7월까지 쓰여진 글이라는데, 이글 역시 꽤 오랜 시간동안 농축되어있는 글로 느껴진다. 공황장애로 진단받고 그렇게 믿고 살았는데 단순한 폐쇄공표였다는 이야기. 말도 안되는 술에 대한  이야기. '나는 몸에게 딴 생각을 품게 하면 안 된다. 무조건 술로 조져서 모든 병을 술병으로 단일화시켜야 한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따위에 몸을 내어줘선 절대 안된다.'(p.111).
 
  가끔은 이 글이 허구인지 사실인지 구분이 안된다.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데 말이다.  하루종일 배가 고프고 아파서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맑스,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을 한 솥에 넣고 유전자 변형 콩나물 한 봉지와 내 친구 소금 장수 박후기 시인이 보내준 소금 한 가마니를 풀어 푹푹 끓여서 먹었다." (p.131) '내가 글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실은 시인이 이야기하고 만나고 있는 옛애인도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독특하다.  그런데 걱정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 남편이 아니라서 정말 감사하다.  내게 천재는 너무 과분하다.  천재와 함께 살다가는 제명에 살지 못할 것 같다.  그냥 시인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애인들과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시가 나오고 글이 나올것이다.  그래도 몸 생각해서 술좀 줄이면 좋으련만......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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