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문을 통해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에 바티칸을 상징하는 열쇠모양의 반암을 박아 놓았다.
바닥 위에는 전 세계의 이름난 성당들과 성 베드로 대성당의 크기를 비교해 놓은 수치가 새겨 있다.
각종 천연대리석을 사용해 아름답게 깔아 놓은 바닥
반암을 박아 표시해 놓은 원형의 붉은 대리석을 밟게 된다.
서기 800년 성탄 자정 미사 때 바로 이 자리에서 샤를마뉴가 무릎을 꿇고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왕관을 받았다.
처음 베드로의 무덤에 성당이 세위진 것은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이다.
당초에 세워진 바실리카식 성당은 그후로 1200년이 지나 낡게 되자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217대 교황)에 의해 개축이 시작되었다.
공사기간중 면죄부의 남발과 종교개혁 파동으로 공사가 부진한 적도 있었으나
미켈란젤로와 그의 제자들에게 의해 작품이 진행되어 마침내 1626년 11월18일 교황 우르반 8세 때 준공되었다.
120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거치면서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구상,
그 제자 델라 포르타와 카들로 마데르소가 옥상 돔과 성당 정면 부분을 완성함으로써 완공된 것이다
이중랑의 장식 벽기둥 표면은 대형 메달과 초기 서른여덟 명의 교황을 묘사한 부조가 있다.
중랑의 벽기둥 사이 벽감에는 서른아홉 명의 수도원 창립자들을 묘사한 대리석상들이 세워져 있다
반암으로 만든 커룹 한 쌍이 지키는 2m 높이의 성수대
입구쪽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
피에타가 있는 곳이다.
대성당을 찾는 모든 전 세계의 방문자들이 꼭 한 번 보고싶어했던 인류의 대 걸작이다.
피에타(Pieta)'는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비통에 빠진 모습을 표현한 회화나 조각상이다.
그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져 왔다
' 미켈란젤로(Michelangelo)' 전후의 예술가들은 언제나 '피에타(Pieta)'를 표현할 때,
죽은 예수의 시신을 팔에 앉고 비통해 하는 마리아 의 모습과 팔을 늘어뜨리운 채
죽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피에타(Pieta)'는 어떤 불가사의한 영적인 셰계를
느끼게 해주는 보는 사람들에게 초자연적인 느낌을 부여하고 있다.
천재 작가에 의해 인류에게 선사받은 이 웅장한 걸작은 종교적 관점에서의 인 간의 고통에 차원 높은 영적인 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또한 고전주의적 아름다움의 '르네상스(Reneisssance)' 이상과 자연주의(Naturalism)' 사이에서의
균형 잡힌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각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상이다.
이는 그가 21세때 만든 조각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 위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상이다.
당시 시대로는 인체의 비율을 깬 파격적 조각으로 당대 예술가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뒤, 이미 숨이 멎은 예수를 무픝에 얹고 앉아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정결한 우아함으로 빛나고 있다.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장엄하게 수용하는 데서 나타나는 평온함을 보여주고 있다
르네상스의 거목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주여 자비를 주소서)를 완성하고
가죽으로 대리석 조각을 600만 번 문지르며 기도했다
그의 작품들 중 유일하게 이 작품에만 작가의 서명을 남겼다.
"MICHAEL. ANGELUS. BONAROTUS. FLORENT. FACIEBAT"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of Florence)'가 만들었다."
손톱이 뽑힌 손가락도 있다.
대리석으로 팔과 손은 퉁퉁부어 핏줄이 서고 손등에는 못자국까지도 표현했다.
마리아의 품에 안긴 예수는 엄청난 십자가와 가시관의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마치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이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대리석으로 표현한 치맛주름
기존의 상심한 늙은 여인의 모습 대신에 청아하고 젊은 천상의 동정녀 마리의 모습
1972년 정신불안의 33살의, 헝가리 출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젊은 청년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다" 하고 외치며,
망치로 조각상을 가격하였다. 마리아상의 왼쪽 어깨와 코는 부서졌고 왼쪽 눈과 머리에 쓴 베일은 조각나 버렸다
그 이후로 피에타는 유리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여 사진찍는데 애를 먹였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 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을 말한다.
이 피에타상은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머물던 시절인 25세때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하였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고있는 모습은 고딕 조각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흔히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의 무릎 밖으로 뻗어나와서 조각 작품으로서는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된다.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작게 표현하면서 옷을 이용하여
마리아의 무릎을 크게 보이게 함으로써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조형적인 해결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옷이라는 것은 미켈란젤로에게 중요한 사상적 의미를 가지며, 옷으로 감싼다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서 보호받고,
현실적인 위협으로부터 수호되어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채색된 조각을 좋아하지 않았던 미켈란젤로는 푸른색이었을 마리아의 옷을 대리석에 의한 형태로만 표현하여 하였다.
그는 대리석으로 구겨진 옷자락의 주름을 만들어 그것을 그리스도를 지키는 하느님의 옷으로 표현하였고,
후광이나 가시와 같은 상징도 마리아의 청순하고 경건한 얼굴과 육체의 표현속에 담았다.
이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운데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마리아가 두른 어깨 띠에는 "피렌체인 부오나로티 제작 (MICHEL. 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피렌체에 있는 다비드상, 로마 산피에트로대성당에 있는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작품으로 꼽히는데,
그 중에서도 완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미켈란젤로가 어느날 대리석 상점 앞을 지나다 거대한 대리석을 보았다.
그는 상점 주인에게 그 대리석의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그 대리석은 돈을 받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그것을 팔려고 했지만 아무도 쳐다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가게는 비좁은데 그것이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그냥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그 대리석을 공짜로 얻어 자기 작업실로 운반했다.
그로 부터 1년후, 미켈란젤로가 그 대리석 상점 주인을 자기 작업실로 초대했다.
"와서 보시오. 그때 그 대리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의 작품을 본 상점 주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껴안고 있는 상으로, 예수가 그녀의 무릎 위에 누워 있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운데서도 걸작으로 뽑히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 중의 하나이다.
가게 주인이 물었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조각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까?"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내가 이 대리석 앞을 지나치려 하는데 예수가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지금 이 대리석에 누워있다. 불필요한 부분들을 떼어내 내 모습이 드러나게 하라.'
대리석 안을 들여다 본 나는, 어머니 무릎에 누운 예수의 형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형상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 대리석이 그토록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단지 예수가 시키는 대로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입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미켈란젤로는 고집이 세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을 때는
사람들의 성당 출입을 막고 무려 4년 동안이나 성당에 틀어박혀 그림에만 매달렸습니다.
어느 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 구석구석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려가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여보게,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뭘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고 있나?
완벽하게 그려졌는지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내가 안다네."
이런 내적 동기를 우리는 '미켈란젤로 동기'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러한 그만의 작품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이처럼 후세에 남는 걸작으로 자리매김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미켈란젤로(1475-1564)는 그의 나이 25살 때에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피렌체에서 보관중인 다비드상, 그리고 로마 성베드로의 쇠사슬 성당에서 보관중인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작품에 들어간다. (피에타란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임).
이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유일하게 그의 서명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돌아가신 예수님을 무릎에 안은 성모님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아들 예수님의 나이에 비해 너무나 젊은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성모님의 얼굴이 젊게 표현된 이유를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아스카니오 카우디비가
그의 스승에게 물었을 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스카니오, 너는 아직도 모르느냐? 정결한 여자들은 무릇 그 정결함을 고귀하게 유지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하물며 동정녀로서 잉태하신 성모님의 정결함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지 않겠느냐?
천주의 모친이신 성모님의 모습을 젊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아라.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파견되었으며,
사람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을 받으셨다.
그 분의 처절한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분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양심의 성찰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이 바로 나의 의도이다.
우리는 한 예술가를 재조명해 보면서 르네상스의 마지막 대가였던 미켈란젤로를 그저 조각가나 건축설계사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예술 세계는 바로 그의 깊은 신앙심의 바탕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러기에 몇 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경이적인 찬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상점 주인에게 그 대리석의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그 대리석은 돈을 받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그것을 팔려고
했지만 아무도 쳐다보는 이가 없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가게는 비좁은데 그것이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그냥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그 대리석을 공짜로 얻어 자기 작업실로 운반했다.
그로 부터 1년후, 미켈란젤로가 그 대리석 상점 주인을 자기 작업실로 초대했다.
"와서 보시오. 그때 그 대리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의 작품을 본 상점 주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껴안고 있는 상으로,
예수가 그녀의 무릎 위에 누워 있었다.
그것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운데서도 걸작으로 뽑히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 중의 하나이다.
가게 주인이 물었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조각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까?"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내가 이 대리석 앞을 지나치려 하는데 예수가 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지금 이 대리석에 누워있다. 불필요한 부분들을 떼어내 내 모습이 드러나게 하라.'
대리석 안을 들여다 본 나는, 어머니 무릎에 누운 예수의 형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형상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 대리석이 그토록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단지 예수가 시키는 대로 불필요한 부분을 쪼아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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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미켈란젤로는 고집이 세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을 때는
사람들의 성당 출입을 막고 무려 4년 동안이나 성당에 틀어박혀 그림에만 매달렸습니다.
어느 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 구석구석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려가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여보게,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뭘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고 있나?
완벽하게 그려졌는지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내가 안다네."
이런 내적 동기를 우리는 '미켈란젤로 동기'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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