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바람 냄새/구활

tlsdkssk 2015. 1. 22. 11:04
바람 냄새 /구활





편지가 왔다. 산과 골이 첩첩인 두메에 살고 있는 여류 문학인이 보내 온 편지다. 산골에 살면서 자연에 동화되기보다는 자연이 자신의 몸속으로 밀고 들어오기를 바라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도시 사람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호사를 누리는 대자유인이다.

“어제는 달이 참으로 밝았습니다. 밤늦도록 달빛을 받으며 개울물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런 밤에는 마을 샘이 깊어지는 법이지요. 다시 날씨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아침나절 바지랑대에 청개구리가 물색도 모르고 올라앉았다고 놀렸더니 비 소식을 전해주려 그랬었나 봅니다. 오늘은 양철 물받이를 타고 내리는 빗물 떨어지는 소리와 골 안 가득히 서리는 비안개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밤에는 아쟁 산조를 듣는 답니다.”

초두에 시작하는 품이 심상찮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도시에서 안달하며 살고 있는 나를 약 올리기에 충분한 가구미문(佳句美文)이다. 글 속에는 산골 사계의 풍광이 너무나 선명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인도하는 듯한 그녀의 글은 촉수 높은 전구가 밝히고 있는 가로등길 같아 눈감고 걸어도 쉽게 찾아 갈 것 같다.

“어제 내내 비가 오더니 이제 멎었습니다. 비는 청개구리가 몰고 오고 햇빛은 매미가 불러옵니다. 매미들이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 노래하고 내일 죽을 수도 있는 목숨들이지요. 사람과 무에 다를 게 있나요. 상현달이 뜨면 하현달로 기울 때까지 봉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옥양목 홋이불 같습니다. 그런 달빛을 어찌 어깨까지 끌어당겨 덮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의 변주곡이 쨍하고 해뜨는 날로 이어지더니 금새 달빛 만찬으로 연결된다. 그녀의 글은 프랑스 영화 ‘뽕뇌프(pont neuf)의 연인들'처럼 스피디하다.

“이 산골에 살면서 때때로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은 비온 뒤 바지랑대 높이 고여 이불을 내다 거풍을 한다거나, 빨래를 삶아 빨아 줄 가득 널면 바람에 나부끼는 흰옷들이 눈부시게 빚어내는 풍경은 어떻구요. 빨래를 널 때 문득 치어다 보이는 잉크 빛 하늘은 때론 고단하게 느껴지는 삶을 신선하게 해 준답니다. 그리고 빨래를 걷어 개킬 때에는 옷가지에서 바람 냄새가 납니다. 바람 냄새! 그 냄새가 하도 좋아 옷가지에 코를 묻고 한참 동안 바람을 좇아가는 소녀가 된답니다. 정말이지, 그 냄새는 아기의 젖비린내만큼이나 여자로서의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최근 며칠의 날씨 상태를 소곤거리듯 전해주다가 바람타령에 접어들어선 절창을 이룬다. 오케스트라의 온갖 악기들이 이 대목에 이르러선 지휘봉이 내려 긋는 어느 한 방향을 향해 일시에 고음을 쏟아 놓는 듯하다. 그런 연후에 다시 나직하게 속삭인다. 제4악장.

“달이 없는 밤도 좋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유리창 가득 쏟아지는 별빛이 얼마나 아늑하다구요. 이런 밤이면 사람과의 인연을 생각하고 쓸쓸해집니다. 사람은 좋은 인연 보다 상처를 주는 인연이 더 많지요. 하늘과 바람, 별과 달, 꽃과 풀들은 사람들이 상처를 줬으면 줬지 그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것과 진실한 것을 가르쳐 주는 영원한 랍비니까요. 갑자기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얼린 협주곡이 듣고 싶어 졌습니다. 그럼 안녕.”

편지는 여기서 끝났다. 이박삼일쯤 걸리는 산골여행에서 돌아 온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내 방 어디에선 가에도 바람에 무슨 잎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읽었던 편지에서처럼 바람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남쪽에 머리를 두고 북쪽 벽을 향해 누우면서 머리 밑에 깍지를 낀다.

죽농 서동균 선생의 횡액 그림인 ‘왕죽’이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바람소리를 내며 서걱이고 있다. 방금 읽은 산골편지의 연상 작용이 우리 집 대나무 그림에 옮겨 붙어 이야기를 걸어 온다. 나는 갑자기 ‘바람’이란 화두를 든 선방의 스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전지 크기의 이 그림은 절반이 여백이며 나머지 절반에 댓 닢이 내는 소리를 석 줄의 글씨가 찬찬하게 설명하고 있는 보기 드문 명품이다. 죽농 선생은 이 그림을 주시면서 “아직은 젊어서 모르겠지만 훗날 나이를 먹고 그림을 알게 되면 댓 닢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게야”라고 말씀하셨다. 내 나이 서른 살 적 일이다.

표구한 그림이 너무 커 안방 아니고는 마땅하게 걸 자리가 없어 지금까지 그대로이다. 직장을 떠나고 그리고 아이 셋이 모두 우리 내외의 품을 떠나면서 고적함이 가까이 다가오자 대나무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이 보이는 듯 하다.

웃대 어른들 중 사군자를 비롯하여 문인화 그리기를 여기로 즐기던 선비들은 특히 대나무를 칠 때는 바람을 그렸지 그냥 대나무 잎만은 그리지 않았다. 그래서 ‘풍죽’이라 했다. 우리 집 ‘왕죽’이 ‘풍죽’으로 바뀌는 데도 삼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무릇 그림 속의 바람 이는 소리를 듣는데도 오랜 세월이 걸리거늘 사람이 인연을 소중히 여길 줄 알려면 연륜이 쌓여야 하는 법인가 보다.

사군자 중 매화 난 국화는 꽃이어서 꽃이 피워내는 향을 그려야 제 맛이 난다. 그러나 유독 죽(竹)만은 사운거리는 바람을 그려야 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이도 반드시 바람을 느껴야 하고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풍죽’이 사군자 중에서도 한 차원 높은 군자임을 이제야 알겠다.

벽에 걸려 있는 ‘풍죽’을 치어다 볼 때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오우가가 절로 읊조려진다. “내 벗이 몇 인고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귀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 하여 무엇 하리” 친구인 ‘풍죽’이 곁에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 나는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는 댓 닢 아래서 책을 읽는다. ‘바람’이란 어쩌면 ‘그리움’이다. 옛날 선비들도 바람을 통해 그리움을 불러오고 바람 따라 그리움을 날려 보내고 그랬었나 보다. 모두가 바람 탓이다.
출처 : 반숙자의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글쓴이 : 헬레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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