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스크랩] 마재성지

tlsdkssk 2014. 10. 24. 15:34

      

    마재성지 (거룩한 부르심의 땅)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116번지 / 031-576-5412 남궁경(알베르또)신부 

     

     

    선교사의 전교 없이 스스로 하느님을 찾게된 한국 교회의 뿌리는 당시 실학자들에 의해 한강변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 했다. 18세기의 대표적 석학이던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년) . 권철신 . 안정복(安鼎

    福, 1712~91년) . 홍유한(洪儒漢, 1726~85년) 등이 몰려 새로운 학문을 토론했으며, 유명한 정약용 형제들

    순암(順庵) 안정복의 제자이고 권철신의 동생 일신은 안정복의 사위였다.   그러고 보면 학문으로서의

    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선구자들은 인맥과 지연으로 서로 미묘하게 얽혀 있음도 볼 수 있다.

     

     ▲ <마재성지 전경>

     

    거룩한 부르심의 땅 마재성지는 조선 후기에 최초로 천주께 대한 신앙을 믿고 받아들인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이다. 특히 "천주실의"(예수회 마테오 리치 신부 저술)를 읽으며,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땅 바로 이곳 마재성지 이다.

     

    ▲ <한옥으로 지은 마재성당 모습>

     

    이곳에 살던 나주(羅州) 정씨(丁氏) 집안의 후손으로 정약현, 정약전(흑산도 유배지에서 자산어보 저술),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다산 정약용(세자 요한)이 있었다. 이들은 18세기 후반부터 집안에 보관되어 있던

    한역(漢譯) 서학서(西學書)를 읽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정약전은  1779년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의

    주도로 열린 주어사(走魚寺) 천진암 강학회(講學會)에 참석하여, 이벽(李檗, 요한)으로부터 천주교 교리에

    대해 듣게 되었다. 또 1784년에는 마재를 방문한 이벽이 정약전, 정약용 형제와 함께 배를 타고 상경하면서

    천주교 교리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였다.

     

    ▲ <마재성당 내부>

     

    정약종의 가족들은 1800년 양근(楊根) 지방의 박해로 마재에서 서울로 피난 하였으며, 이때 유(柳) 체칠

    아와 자녀인 정하상, 정정혜가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곳 주변은 이스라엘의 지형과 비슷하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갈릴래아호수와 비슷하게 한강이 흐르고 있으며, 산상설교와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

    신 답가(Tabgha)가 있는 언덕과 마재의 작은 언덕과는 환경적으로 상당히 닮은 형태를 하고 있다. 이곳에

    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순교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1760~1801)의 가계도는 아래와 같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1760년 경기도 광주의 마재(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유명한 학자 집

    안에서 태어났으며,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한국천주교회 창설 2년 후인 1786년 이었다.  정약종 아

    우구스티노는 오랫동안 교리 연구를 바탕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최초의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2

    을 완성하였고, 교리교육을 위한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 회장으로 정약종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면서 체포되었다. 문초를 받으며 증언 한다 "천주님을 높이 받들고 섬기는

    일은 옳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 천주는 천지의 큰 임금이요 큰 아버지입니다. 천주님을 섬기는 도리를

    알지 못한다면, 이는 천지의 죄인이며,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습니다." 라고 했으며 체포된 지 15일 만인

    1801년 4월 8일(음력 2월 26일) "땅을 내려다보면서 죽는 것보다 하늘을 쳐다보며 죽는 것이 낫다." 면서 그

    때 나이 41세로 순교 하였다.

     

     

    ▲ <성전 옆 명례방과 사제관>

     

    지난 2006년 9월 의정부교구가 개발하는 첫 번째 성지인 이곳은 2008년 9월 28일(주일, 오후 2시)에 한옥 성

    전 축복식을 이한택 주교님 집전으로 봉헌하였으며, 매일 11시에 미사( 월요일 없음 )를 봉헌하고 있다. 한

    옥 성전 옆의 명례방은 전시관과 만남의 방이며, 약종 동산에는 성모자상, 예수성심상을 모셨고, 약종동산

    자락에는 십자가의 길을 만들었다.

      

     ▲ <약종동산의 성모자상>  

     

    ▲ <약종동산 성모자상 뒤에서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는 순례객들> 

     

       

    ▲ <예수성심상과 성모자상>  

     

       

    ▲ <마재성지 입구> 

     

    마재성지는 규모가 크거나 넓은 성지는 아니다.

    성지 개발을 시작한 것이 겨우 2년 남짓한 곳으로 아직 많은 손질이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숨결이 묻어나는 곳으로 천주교 신앙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전해

    올 수가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성지 이다.

    또한 한강물을 휘감은 "마재"의 주변 경관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가족나들이로도 아주 좋은 곳이다.

     

     

    마재성지 찾아 가는 길

     

    대중교통 

     

    서울 방면에서는 지하철 1호선 팔당역에서 내려 양수리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능

    내역에서 내려야 한다.(다산 정약용 유적지 입구에서 내리면 많이 걸어야 하기에 꼭 능내역에서 내릴 것)

    능내역은 간이역으로 지금은 열차가 서지 않는다. 능내역에 내려서 역사 왼쪽으로 들어가면 철길 건널목

    이 나온다. 철길을 건너서면 능내교회가 보인다. 여기서 100m 정도 가면 창고 같이 보이는 건물(아래 3번째

    사진)이 있는데 건물 좌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성지가 나온다.   만약에 이 골목을 놓치고 계속 가면 아래 작

    은 사진에서 처럼 길 좌측에 어린이 놀이터가 보이는데 놀이터 뒤 한옥 건물이 마재성당 이다.

    ▼ 

     

     

      

     

    자동차 이용시 => 서울에서가면 팔당댐을 지나 양평 방향으로 가다보면 능내역이 나온다. 능내역에서 조

    금만 더 가면 철길 굴다리가 나오는데 굴다리를 건너면서 우회전한다. 이 길이 다산 정약용 유적지로 가는

    길인데 중간쯤에서 마재성지 안내 간판(아래 사진 참조)이 보인다. 마재성지 간판 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이

    능내교회 안내판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산 쪽으로 길이 나오고 바로 앞에 한옥 마재성당

    건물이 보인다.

     

    청량리에서=> 망우리고개 직진- 도농삼거리에서 덕소 방향 직진-  팔당대교, 팔당댐 지나 다산유적지 쪽

    올림픽대교 이용시 =>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지나서 - 팔당대교를 건너 팔당댐을 지나 다산유적지 쪽으로 

    ▼ 

    ▲ <다산유적지로 가는 길에서 우측 마재성지로 갈라지는 곳>

     

      

    ***************************************************************************************************** 

     

    다산 정약용 유적지 

     

    마재성지 & 다산 유적지

       

     ▲ 정씨 형제들이 살았던 생가의 모습

      

     ▲ 정약용 선생의 묘에서 앞을 보면 팔당댐의 물이 보이고,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정약현, 약전, 약종, 약용

    형제가 살았던 생가가 보인다. 또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보면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이 있는 앵자봉 능

    선이 보인다. 

     

       

       

     

    ▲ <다산 정약용 동상과 우측 책으로 둘러쌓은 조형물, 다산은 실학자로서 500여 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햇수로 5년전...시간만 나면, 한국 천주교의  성지를 찿아 주말이면 순례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양수리쪽 두물머리쪽으로  여러 아는 사람들과 함께 출사를 갔을때 겸사겸사

이곳 유적지도 그 일정에 함께 넣었었다.이곳 마재성지는, 고갯 마루턱을 넘자마자 왼편으

로 보이는 다산 정약용생가(유적지)하고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은 신학자이자 순교자인 정약종 등.. 4형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고  성지 사무장님께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시다. 고개넘어에 있는 고풍스런  유적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

 

  

 

생가와 박물관이 있는곳으로 가려고 고개를 넘는중에  전에 보이지 않던  마재성지 우측으로

100m 라는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그냥 지나치다가 다시 차를 돌리다.


 

                                 

 

                                 사제관 뒤편에 모셔진 성 모자상


 


 

                                  

 

                                      예수님의 손을 잡고 예수 성심께 바치는 봉헌 기도

 

                               지극히 어지신 구세주 예수님

                               주님앞에 꿇어

                               주님의 성심께 저희 가정(공동체를 )봉헌 하나이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희 가정(공동체)를 보살펴 주소서

                               저희는 온전히 성심께 의지하고 바라오니

                               저희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거룩하신 뜻대로

                               예수님 저희가 하는 일에  강복하시어

                               기쁠때나 슬플때나 저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깨달아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성지의 십자가의 길.. 14처..

                                 


마재는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학자이 순교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을

비롯한 다신 정약용, 정약전(1777년 주어사 강학회 참석)등 4형제가 태어나고 자란곳이다.

마재(능내리)에서한강 넘어 천진암 앵자봉 능선을 바라다 볼수 있으며,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건너 권철신 5형제의 생가터인 양근성지와는 지척의 거리이다. 

 

                                                                       - 마재성지 소책자 옮김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곳은 옛 지명을 따서 흔히 '마재 성지‘로 부르는데, 공식 표기는 '다산 문화 유적지'다.

도대체 다산 생가가 가톨릭과 무슨 연관이 있기에 이곳을 천주교 성지라고 부르는 걸까?

아무리 둘러봐도 궁금증을 풀어줄 실마리는 눈에 띄질 않는다. 한국교회사에 대한 지식 없이 찾았다가는 낭패를 볼 것 같다.

그러니 먼저 마재 성지 유래부터 살펴보자.

 

의정부교구 덕소본당 관할인 마재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증거자를 비롯한 다산 정약용 등 4형제의 생가 터다.

마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한강변에 안겨있는 마을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증거자가 태어나고 묻히신 곳이다.

또한 이벽, 이승훈, 황사영 등 신앙의 선조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다.

 

정약현, 약전, 약종, 약용 등 여기서 태어난 4형제 중 셋째인 약종은 천주 신앙을 위해 피를 흘린 순교자로,

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약현의 부인이 이벽 성조의 누이, 정씨 형제의 누이가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 약현의 사위가 황사영이라는 것을

알면 정씨 형제가 얼마나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신학자인 정약종 증거자는 형제들 중에 가장 늦게 신앙을 받아 들였지만, 불타는 열성으로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걸어갔다. 최초의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회장으로 전교에 힘썼으며, 특히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최초의 순수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편찬하였고, 그 뒤 교리서를 종합·정리하여 ??성교전서??라는 책을 쓰던 중

신유박해가 일어나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가족들까지도 기해박해 때 모두 순교하였다.

 

정하상은 아홉 차례나 북경을 드나들며 성직자 영입 운동을 벌였고, 그가 로마 교황에게 보낸 청원서는 조선교구 설정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정하상은 또 한국교회 최초의 호교론서인「상재상서(上宰相書)」를 통해 천주교가 유교 전통에

어긋나지 않으며, 사회윤리를 바르게 하는 미덕을 포함하고 있음을 박력 있는 명문장으로 웅변했다.

 

정약용은 그의 형 약종처럼 순교하지는 않았으나 천수(天壽)를 다하면서 "목민심서", "경세 유표", "흠흠 신서" 등 수많은

명저를 남겼다. 그는 본래 세례자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갖고 10여 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제사 문제로 번진

신해박해 때(1791년)만 해도 그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을묘년(1795년) 포도청 장살 사건이 당쟁으로 발전,

좌천되면서 반대파의 원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명소(自明疏)를 올린다. 즉 천주교를 떠났다는 것을 글로써 명백히 밝힌

것이다. 이어 그는 신유박해(1801년) 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실학을 집대성한 5백여 권의

주옥같은 저서는 바로 이 무렵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쓰인 것이다. 이때 그는 스스로 호를 여유당(與猶堂)이라고 부름으로

써 초대 교회 창립을 위해 명도회를 조직, 회장으로 크게 활약한 형 약종과 매부 이승훈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데 대해

부끄러움을 표시했다. 그는 당시의 참담한 심정과 외로움을 ‘만천 유고(蔓川遺稿)’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한평생을 살다보니

어쩌다가 죄수가 되어 옥살이를 하게 되었을까? 그 옛날 어질던 스승과 선배, 그리고 절친했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러나 그는 20여 년간의 기나긴 유배 생활 중에 잃었던 신심을 되찾는다. 1811년에는 성직자를 영입하기 위한 교회재건

운동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할 정도였다. 그가 완전히 교회로 돌아온 것은 유배에서 풀려난 지 2-3년 뒤로 볼 수 있다.

그의 생활은 은둔과 묵상, 고행과 기도로 일관했을 뿐만 아니라 회갑을 맞으면서 미리 작성해 둔 자신의 묘비명 가운데는

참회와 성찰의 문구가 역력하다. 유배 생활을 끝내고 다시 이곳 마재로 돌아온 그는 보속하는 뜻에서 기도와 고행의 삶을

살다 중국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고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약용과 약종 가족의 숨결이 배어 있는 마재성지는 이들 생가와 다산 묘소, 다산 동상과 기념관 등으로 꾸며져 있다.

마재 성지에서 천진암 앵자봉 능선을 멀리 바라다볼 수 있다. 그리고 천주교회의 큰 초석이 된 권철신 5형제의 집터가 있는

양근(陽根) 대감 마을과도 지척이다. 때문에 마재는 당시 천진암 주어사에서 천주학을 공부하던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아름드리나무 곁에 있는 커다란 기와집인 생가는 옛집 그대로가 아니라

복원한 것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인형들이 이 방 저 방에서 순례객을 맞는다. 다산의 일생을

들려주는 방송이 애절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데, 쉬어갈 겸 툇마루에 앉아 잠시 200년 전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성지를 지키고 있는 남궁 신부는 "마재 성지순례를 통해 신자들이 신앙 선조 숨결을 느끼고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여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이곳에 와서 자연 속에서 쉬고, 영적 힘을 얻어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 가족이나 소규모 단체를 대상으로 1일 피정을 기획하고 있으며,

인근 구산ㆍ천진암ㆍ양근성지 등과 연계해 성지순례 코스를 개발하거나, 영화촬영소ㆍ친환경농장과 연계해 문화벨트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강북 강변도로나 올림픽대로를 통해 팔당대교를 건너 6번국도(양평 방면)를 1㎞ 정도 가면 오른쪽 강변으로

다산 유적지 푯말이 나온다. 푯말을 따라서 팔당댐을 지나 4㎞ 가면 철길이 나오고, 철길 아래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틀면 '다산 문화 유적지'이다. 팔당대교에서 마재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열차를 이용할 경우 중앙선 능내역에서 하차,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출처 : "깨비 가족"의 휴식공간
글쓴이 : Berardus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