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몽마르뜨...세번째 포스팅입니다.
'Models, Dancers and Prostitutes 모델, 댄서, 그리고 창녀들'이라는 타이틀로
이 당시 화가들이 그린 모델, 댄서, 창녀들의 그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과 수잔 발라동, 에드가 드가, 파블로 피카소, 삐에르 보나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Theophile-Alexandred Steinle, Georges Rouault, Auguste Chabaud,
Jean-Louis Forain 등의 그림이 있었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도 있었습니다.
이 당시 몽마르뜨의 피갈(Pigalle)이라는 지역에는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6백명 이상의 젊은 여성을이 모델, 댄서, 창녀 등의 일자리를 찾아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16세에서 21세까지 였다고 하네요.
이들이 식당이나 주점, 공장, 등에서 일하는 수입은 남자들에 비해서 반절도 되지않아
이러한 수입으로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이러한 직종에 몰렸다고 합니다.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실정이겠지만요.
그 당시의 작가 에밀 졸라는 여자들이 버는 돈으로는 살아나갈 수가 없으니
창녀를 선택하거나 굶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하니
당시의 시대상을 여실히 대변하는 말인 것같습니다.
"All the world can see that women's earnings in Paris are not enough to live on.
A working woman has two choices; prostitution or starvation and a slow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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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몽마르뜨에서 활동한 화가 중에 잊지 못할 이름, 앙리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1864-1901) 이 있지요. 남프랑의 알비에서 알퐁스 백작과 사촌 아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근친혼의 결과인지 어려서 부터 몸에 이상이 있었고 그나마 13세에 사고로 허리를 다쳐서 성장하지 않은 난쟁이나 다름없는 단신의 기형적인 모습이 되자 가족들의 외면에 빠리에 와서 몽마르뜨의 물랑 루즈에서 창녀들과 어울리며 무희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모델이었던 수잔 발라동과 동거하기도 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36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극히 불운한, 그러나 천재 화가이지요.
이번 전시회에 그의 그림과 포스터들이 상당히 많이 전시되고 있어서 다른 화가들과는 다르게 창녀나 무희들을 욕망의 대상이 아닌, 친구로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몽마르뜨에서의 로트렉의 삶을 쉽게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 |
Vincent Van Gogh, Nude Woman, 1887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 - 1920)와 아내 잔 에뷔테른...
이태리 출신의 미남 화가 모딜리아니는 이태리 Livorno에서 유대인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안이 어려웠고 폐결핵 등으로 병약해서 학교를 그만 두고 요양을 하면서 그는 베네치아와 피렌체 미술학고에서도 공부하다가 1906년에 몽마르뜨에 아틀리에를 빌려 세잔의 영향을 받으며 독특한 화가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주위에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만 14세 연하의 화가 지망생이고 모델이었던 잔 에뷔테론을 만나 동거하며 딸을 낳고 아내 잔은 남편의 모델로 열심히 살았지만 잔의 가족들은 가난한 화가
모딜리아니를 여전히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화가로서도 남편으로서도 그 삶의 무게에 시달리다가
36세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요절하자 충격을 받은 아내 잔은
이틀 뒤에 임신 8개월의 몸으로 6층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합니다. 서양 미술사에 영원히 남을 충격적인 일이지만
그 누구도 잔의 모딜리아니에 대한 사랑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인 것같습니다. 모딜리아니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도 있지요.
모딜리아니는 빠리의 페르 라 쉐즈 묘지에 묻혔고 잔과의 동거를 반대했던 잔의 가족들은 10년 뒤에야 잔을 모딜리아니 곁에 묻어 주었다고 합니다.
오른쪽 그림의 모델이 누구였는지 검색해 보지 않았지만
얼굴을 그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내 잔이 모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딜리아니는 미모의 아내를 모델로 많은 인물화를 그렸지요. | |
왼쪽 여자 누드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입니다. 그의 누드 그림은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어린애까지 있는 창녀 시엔을 돌봐주며 결혼을 하고 싶어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은 하지 못했지만 시엔과 동거하면서도 시엔을 바느질하는 여자로만 묘사했었던 고흐라고 여겼는데 누드 그림에 조금은 놀랐습니다.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전도자로 일하기도 했던 고흐.. 그러기에 창녀들과 모델들, 그리고 댄서들이 우글거리는 몽마르뜨에서 그의 갈등은 더 심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흐는 그래도 한 두점 밖에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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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anne Valadon, Nude girl lying on a sofa, 1894
Suzanne Valadon, Women at their toilet
Suzanne Valadon, Node on a red sofa, 1920 | |
Suzanne Valadon, Utrillo, nude, sitting on a divan, 1895
Suzanne Valadon, Woman with white stockings, 1924
수잔 발라동(1865-1938), 서커스에서 공중곡예를 하다가 몽마르뜨에서 화가 로트렉, 사반느, 르노아르, 드가의 모델이었지요. 18세에 미혼녀로 아들 위트릴로를 출산했는데 끝내 아버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드가를 사사하기도 하여 여류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국립예술원의 회원이 되었지요. 가난한 음악가 에릭 사티와 6개월 정도 동거하기도 하였는데 나중에 에릭 사티가 죽은 후 그의 방에서는 발라동에게 쓴 편지가 보내지 않은 채로 한묶음 나왔다고 합니다.
아들 위트릴로도 몽마르뜨를 대표하는 풍경화가입니다. | |
날아갈 듯한 모습의 발레리나들을 그리고 눈이 나빠지기 시작하자 조각작품을 만들었던 에드가 드가 (Hilaire-Germain-Edgar Degas, 1834 - 1917)가 사창가의 여인들을 스케치한일련의 그림들은 조금 놀라웠습니다. 그도 역시 몽마르뜨의 화가였으니까 이들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드가는 83세까지 살았지만 평생 독신이었다고 합니다.
드가의 묘도 가족들과 함께 몽마르뜨묘지에 있습니다. | |
Edgar Degas, Brothel Scenes, 187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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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s Van Dongen, woman fastening her underskirt, 1904
Kees Van Dongen, Woman in the bathroom, 1905/06
키스 반 동겐(1877-1968)은 네델란드 화가로 1897년에 빠리에 와서 몽마르뜨에서 많은 화가, 시인,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예술적인 영감을 받고 활동한 화가, 1926년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1927년에는 벨기에 훈장을 받고 1929년에는 프랑스정부로 부터 시민권을 받았다고 합니다. 1950년부터 모나코에 살았고 1968년 91세를 일기로 몬테카를로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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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s Van Dongen, Belly dancer, 1910
Kees Van Dongen, Nude Standin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