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선의 '기쁨'중에서
개인전
천신만고 ,
우여곡절 끝에 첫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 .
흥분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전시장 칸막이 속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데 들려오는 소리 ,
" 나 이 그림 샀어 ."
"너 이 그림 사지마 ,이 그림은 사이코야 , 이 화가는 사이코
래 , 만약 네가 이그림을 산다면 사람들이 너까지 사이코 취
급할 거야 , 그러니까 너 이거 사지마 ."
그런데도 그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그 그림을 샀다 .
나는 놀랐고도 고마웠다 .감동 되었다 .
그 후 대 여섯 번 그에게 그림을 주었다 .
그냥 그림을 실어다 주었다 .
화랑에 전시하기도 전에 우선 한 점을 실어다 주었다 .
기뻐하는 얼굴에서 나는 힘을 얻었다 .
그런 힘으로 나는 나의 생존을 아어갈 수 있었다 .
하늘 걷기
나는 하늘에 있어도 날지 않는다 .
나는 하늘 에서도 걷는다 .
나는 새가 아니다 .
사람일 뿐이다 .
나는 치마를 펄럭이면서 하늘에서 걷는다 .
맨발로 발가락을 쫙쫙 벌린 채
하늘 에서도 걷는다 .
발가락 사이로 바람이 쏵쏵 지나간다 .
머리카락이 뒤로 훨훨 휘날린다 .
벌린 잎 속으로 바람이 슥슥 들어간다 .
나는 하늘에서 걷는다 .
구름 사이를 힘차게 걷는다 .
나팔꽃
생나무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
나팔꽃이 피어 있는 남쪽 철책 담 앞에 한참 서서
꽃송이 수를 센다 . 한 송이 , 두 송이 , 세 송이 ...
마흔 여덟 송이 .
세상에 ! 연한 하늘색 꽃들이
맑은 하늘색 하늘 속에서 빛나고 있다 .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그들을 바라보고
한참 동안 서 있는다 .
교회 옆 전봇대 쇠줄을 타고 오르는 나팔꽃들은
무려 10미터도 넘게 하늘 높이 피어 있다 .
그렇게 높은 데까지 넝쿨이 올라가고 ,
그렇게 높이 꽃이 매달려 있으면서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다 .
나팔꽃은 하늘이 집인가 보다 .
풀숲 눕기
나는 풀숲에 누워 있다 .
하늘을 보고 누웠다 .
모든 것을 비운 듯이 가볍게 누워 있다 .
이따금 눈 속에는 하늘이 보인다 .
땅의 물기가 풀잎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
나도 잎맥을 따라 조금씩 하늘 속으로 들려 오려진다 .
나는 꼭 떠오를 것이다 .
몸 바로 위는 하늘이고 몸 바로 밑은 땅이다 .
나는 살아 있다 .
나는 편안히 누워 휴식할 뿐이다 .
오리
오리는 내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동물이다 .
어릴 때 이가 아파서 치과엘 다녔다 .
약솜을 꽉 눌러 아물고 터덜터덜 걸으면서
오리를 부러워했다 . 오리가 되면 좋겠다 .
오리는 이빨도 없고 아무거나 먹고 ,
헤엄도 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
매일 물 속에서 노니까 목욕탕에 안 다녀도 되고 ,급하면 날기도 하고 ,
좀 커서는 오리가 좀 둔하고 튼튼해서 좋았다 .
다른 새들은 연약하고 가볍고 만지면
죽을 것같이 위태롭게 보이는데.
오리는 궁둥이를 퍽퍽 때리고 내려놔도,
금방 씩씩하게 달려가는 게 좋았다 .
- ▲ 화가 김점선 /랜덤하우스 제공
김점선의 작품세계
김점선은 단순화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자연물을 표현하는 작가이다.
소설가 박완서의 말처럼 김점선의 그림은
“대상이 풍기는 아리까리한 위선을 걷어내고
직통으로 본질을 포착하기 때문에 사실적인 그림보다
훨씬 더 모란은 모란답고,백일홍은 백일홍 외에
다른 아무 것도 될 수가 없다
파격적이지만, 너무나 재미있고,
꾸밈이 없는데도 예쁘고,색채도 구성도 맘대로 인 듯 하지만
차분한 그림. 어린시절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던 때의 마음처럼 정겹다.
김점선의 그림의 소재는 동물, 나무,꽃 등 자연물이 주를 이루는데,
이 소재들은 작가의 기억과 경험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모두 포용하고 무조건적으로 주는 자연의 모성을 닮는다.
데포르마숑(Deformation)이라
불리는 이러한 기법은 대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에 의해 고의로
왜곡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글:정유찬
자화상
그림:김점선
화가와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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