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치마/문정희

tlsdkssk 2014. 7. 11. 08:39
문정희 시 <치마>로 여름 그리고 6월의 문학 마음을 여세요.

전 문정희의 시를 읽으면 전율이 일곤 합니다.

살아있는 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해서요.

얼마전 오랜만에 차 한 잔을 하며 내가 그런 얘길 했더니 그런 느낌이 안 올까봐 수없이 다른 사람,

전혀 나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 읽어보고 고치고 도 고치고 읽어보곤 한다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며 참 부끄러웠어요. 그렇게 목숨 바쳐 그 짧은 시를 쓰는구나. 그런데 나는 어떤가.

이왕 시작한 길, 그런 마음 그런 각오로 우리 수필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정희, 「치마(낭송 문정희)

 


문정희, 「치마」를 배달하며


스무 살 때는 자전거쯤은 능숙하게 타는 여자를 만나기를 바랐지요. 왕릉과 소나무가 아름다운 경주 어딘가에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집에서 파초나 키우며 산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었어요. 서른 무렵에는 다림질을 잘하는 여자와 미래를 꾸리고 싶었지요. 통영의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달셋방에 살아도 행복하겠다 싶었죠.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치마 속은 우주라죠? 치마 입은 인류는 치마 아래에 남자들이 모르는 우주를 숨기고, 그 속에서 흥망의 비밀들을 기른다죠. 정말 그곳에 달과 회오리, 신, 갯벌, 조개들의 세계가 있을까요? 그 치마 아래 우주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기쁨의 총량은 반 이하로 줄었겠죠. "이 지상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이 천상에서 이루어지며/말할 수 없는 것이 여기서는 성취되었다./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라는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읊조려 봅니다. 이룰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성취되는 천국이란 바로 여성들이 남자들 몰래 그 치마 아래에 감춘 우주가 아닐까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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