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곳간

셰에라자드

tlsdkssk 2013. 9. 1. 07:49

 

 
 

 

 

 

 

고전이란,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는 재치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마크 트웨인?) 물론, 제목만 아는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의 고전, 특히 문학작품들은 줄거리도 왠만큼 알려져 있죠. 그것은 고전의 이야기 자체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가지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고전의 내용을 기본 뼈대로 한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변주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손쉽게 알려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라비안나이트는 8세기경 집대성된 아랍지역과 그 부근 (인도, 유대, 아프리카등을 포함하는)의 민담의 모음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이야기들이 추가되어 15세기경에 완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과정에서 여러지역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아랍과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시각으로 각색되었지요. 이것이 세월이 지나 서구에도 소개가 되었고, 그중 가장 유명하고 권위를 인정 받는 번역본은 리처드 버튼(영화배우 아님 ㅋ)의 번역본이 되겠습니다.(국내에 나와있는 영어판과 한국어 번역판이 바로 버튼본) 이 원본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버튼판이 국내에 완역된것이 사실 그닥 오래되지 않아서 아라비안나이트를 제대로 읽은 독자는 그 명성에 비해 얼마 없을수 밖에 없으나, 우리는 이미 상당 부분의 이야기들을 알고 있습니다.

 

어린이명작동화

모여라 꿈동산 (나중에 인형극장)

신밧드의 모험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가수 김준선의 '아라비안나이트'

나이트 아라비안나이트...웨이터...둘리;;;

등등등

 

 

쨋건 저런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신밧드, 알라딘, 알리바바등의 이름을 알고 있고 내용도 알고 있죠.

이런 재미난 스토리들의 집합체를 음악이나 발레에서 그냥 지나쳤을리 없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 (1844~1908)  

 

 

소위 러시아의 국민악파 5인방중 막내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원래 해군장교 집안에서 났으며 취미로 작곡을 시작했다가 결국 페테르부르크음악학교에 교수로 부임하며, 평생 음악을 하게된 사람입니다. 그의 음악은 '색채적 이미지가 강하다'라는 평을 듣습니다. 이것은 각종 악기의 연주기법과 음역등에 통달한 그가 악기를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여, 마치 소리로 시각적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특기를 가장 잘 살려낸 작품이 바로 '세헤라자데' (1888년)입니다.

 

세헤라자데는 제목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아라비안나이트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아시다시피 세헤라자데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이야기해나가는 주된 화자인데 이곡은 세헤라자데가 샤리알 왕에게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정경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사실 작곡자 본인은 청자들의 상상력의 제한을 우려하여 초연때 붙였던 표제를 개정발표때는 다시 삭제하였는데요. 하지만 그의 사후 다시 붙인 표제들을 보면, 정말 표제가 적절하게 음악으로 잘 표현된다는 것을 느낄수 있을겁니다.

 

즉 그것들은 아래와 같은데

 

1. 바다와 신밧드의 배

2. 칼린더 왕자의 이야기

3. 젊은 왕자와 공주

4. 바그다드의 축제

 

마치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듯한 느낌(물론 각자의 그림은 다를것이겠지만)...강하고 웅장한 샤리알의 주제와 섬세하고 차분한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어울려 마치 그들이 대화하는 듯한 정경이 그려지고 거기서 마치 뭉게뭉게 상상의 풍선(파도치는 바다에 신밧드의 배가 떠있는)이 커지며 전체화면으로 전환되는...그런 느낌(주로 애니에서 사용되는 기법;;;)이 듭니다.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마지막에는 마음을 바꿔먹은 샤리알왕에 의해 삭막했던 바그다드는 축제를 맞게 된다는...

 

하지만 곡을 감상하면서 저 표제에 얽매일 필요는 없고, 자기만의 아라비안나이트, 자기만의 세헤라자데를 그리며 감상해도 충분할겁니다.

 

 

 

 

 

 

 

발레 세헤라자데  

 

 

20세기초 발레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발레뤼스의 미하일 포킨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음악으로 발레를 안무하였습니다. (1910년) 강렬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인지, 비교적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3악장을 제외하고 약 30분 길이의 단막으로 구성했습니다. 기존의 레파토리만을 공연하던 발레뤼스에게 있어서는 최초의 창작레퍼토리였던 세헤라자데는 레옹박스트의 초화려하고 이국적인 무대와 의상때문에 발레를 넘어선 '패션의 폭발'로 회자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에 비해 춤은 비중이 조금 뭍힌면이 없지 않아 있어 보입니다. 왕의 처 조바이데와 놀아나는(?) 황금노예를 포킨과 니진스키가 추었습니다.

 

재미있는것은 (혹은 문제는) 제목은 세헤라자데인데, 도대체 발레에 세헤라자데는 어디 있느냐는 것;;;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면, 샤리알왕과 아우 샤자만이 샤리알왕의 처 조바이데를 비롯한 첩들의 정절을 시험하기 위해 궁을 비운다. 그 사이 조바이데를 비롯한 후궁들은 궁내에서 환락의 잔치를 벌인다. 이때 돌아온 왕은 황금노예를 비롯한 모두를 처형시키며, 결국 조바이데는 자살하고 왕은 망연자실...하며 막이 내린다

 

즉, 이 발레는 세헤라자데가 1001일 동안 이야기를 하게되는 계기인 아라비안나이트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이야기 하는것입니다.

 

저래서 의심증이 생긴 왕은 매일 처녀들과 동침한후 다음날 그녀들을 처형하였고, 결국 세헤라자데가 왕비로 간택되어 천하루동안 밤마다 왕에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라는...내용은 누구나 다아는 바로 그 이야기죠?

 

 

 

이것은......낚시... (낚였다ㅠㅠ) oTL

 

그런데, 반전의 가능성이 하나 존재합니다.

그것은 조바이데=아라비안나이트 몇년후의 세헤라자데 라는것...(결국 세헤라자데도 이전의 처첩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결국 죽임을...) 정말 이런 의도로 만들어진것이라면......ㅎㄷㄷㄷㄷ (물론, 근거는 전혀 없는 나만의 억측 ㅋㅋㅋㅋ)

 

 

 

 

 

사실, 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는 이 작품을 통해 화려하고 이국적인 스펙타클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어한것으로 보입니다. 어쨌건 흥행사였던 그로서는 단박에 파리의 관심을 모을 작품이 필요했던 거겠죠. 관능적이고 활기찬 안무도 안무지만(현명하고 지혜로운 세헤라자데를 나타내던 그 음악이었는데!!) 아라비아와 인도풍의 살아있는 화려한 원색의 의상과 무대 배경이 더더욱 화제였던 작품.

 

그것이 발레 세헤라자데였습니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about 발레 게시판을 참고하세요)

 

 

 

 

 

마린스키(구 키로프)발레단 (1999년)

 

 

 

 

 

 

 

 

 

 

 

주역은 율리아나 로파트키나(조바이데)와 파룩 루지마토프(황금노예)

두사람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너무 유명해서 말이 필요없는 두사람.

 

 

 

 

 

역시 마린스키(구 키로프)발레단의 이고르 콜브와 한국인 발레리나 유지연

 

 

 

 

 

아시다시피 콜브는 유지연씨와 함께 한국을 비교적 자주 찾는 발레리노로 역시 마린스키의 주역이죠.

많은 분들이 공연을 직접 보셨겠지만 우아하고 깔끔한 춤이 일품입니다. (작년엔 지젤 전막을 국립에서 했죠)

유지연씨는 현재 수석캐릭터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이제 더위 쫓아내는 보너스 피겨 영상 들어갑니다...ㅋㅋ

 

 

 

존 커리(1980, 아이스쇼)

 

 

발레 세헤라자데의 황금노예를 형상화한듯한 연기와 표현력이 인상적인 프로그램.

존 커리는 빙판위의 발레리노라는 별명을 가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인 선수입니다. (1976년 올림픽 챔피언)

아닌게 아니라 원래 꿈이 발레리노였으나, 쫄쫄이가 쪽팔렸던 아버지의 반대로 피겨를 선택한 케이스죠...

그래서 발레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특히 많은 선수입니다.

특유의 섬세한 표현과 유려한 스케이팅은 지금 봐도 정말 대단한 수준.  

 

 

 

  

김연아 (2009, 월드)

 

 

아쉽게도 클린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포스를 보여줬던 프로그램.

대회가 거듭될수록 향상되는 표현의 섬세함과 깊이에 감탄을 금할수가 없었습니다.

전대 세헤라자데인 미셸콴이 콴의 얼굴을 한 세헤라자데였다면, 김연아의 경우엔 세헤라자데 그자체.

데이빗 윌슨의 세헤라자데의 모든면을 보여주는 천재적인 곡믹스와 안무를(역대 모든 세헤라자데 프로그램들과 비교해도 차원이 틀립니다)

완벽하게 몸에 익혀 보여주는 김연아의 퍼포먼스는 감히 역대최고라 할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