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스크랩] ★ 사순절을 묵상하면서, 간음한 여인,...

tlsdkssk 2013. 8. 20. 15:46

사순절을 묵상하면서, 간음한 여인,... 

 

 


 
Meditation - Stella Incognita 

 

 

2009 3 25()

 

없어진 복음이야기.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쓰여지는 과정에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동방교회의 초기 사본에는 이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 사가에 의하여 쓰여진

것에는 거의 천년간 이이야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서방 교회에서는, 어떤 초기 사본

에는 이 이야기는 없어졌고 또 다른 사본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이야기가 복음서

에서 삭제 되었기 때문에(후에 다시 삽입되었다), 이부분이 복음서 어느곳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어떤 학자들은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서의 다른곳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서에 속한 것이 아니고 원래 루가복음서의 한부분

이며 유다의 배반 직전에 나와야한다고 말한다. 어떤 초기 사본에는 실제로 그곳에 있었다.

이 이야기가 어느곳에 있어야 하던간에, 명백한 것은 이것은 예수님에 관한 것들의

초기 전승의 한부분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

 

교회내에는 우리로 하여금 관대함에서 멀어져서 가혹해지도록 만드는 어떤 요소가 있다.

교회내에서 사람들이 일대일로 사귈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정하다. 그러나 교회가 집단

으로 행동할 때, 결과는 매우 가혹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집단적인 가혹함이다.

세상을 향하여, 하나의 교회로 우리가 취한 자세, 즉 우리가 나타내 보이는 이미지는

관대하기 보다는 집단적인 가혹함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항상 우리를 그방향으로

몰고 가는 강력한 바람과 같은 것이있다. 이런것은 교회에만 있는 특수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이민법을 생각해 보자. 어느길로 표류해 왔는가?  피곤한 사람, 가난한

사람,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들은 다 나에게 오라라는 관대함에서 점점 멀어져서 가혹해

지고 있다. 소규모의 것들, 네 동네의 단체나 부락의 클럽을 생각하여 보아라. 처음에는

즐겁고 행복한 지역사회를 이루려는 공동의 노력으로 다같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런

후에 그들은 점점더 엄해진다. 요한 23세는 우리가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끌어 들여 왔다.

아무에게나  좋은 요한 교황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면, 이미지가

명백하게 올것이다. 그것은 자비와 사랑에 대한 신선한 강조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새

로운 미풍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자신이 없으며, 우리들의 성향은 그것을 못하게

 막는다. 오늘의 복음 구절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 떠났고,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과 홀로 서계신다. 어거스틴 성이이 아름답게 묘사한 멋있는 장면이다.

두사람 남았네 한사람은 비탄에 젖어 있고 또 한사람은 자비로 가득찼네 밖에는 너무

 많은 고통이 있으며 절대적으로 자비로운 교회가 필요하다.

 

2009 3 26()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 어느날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축일

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할것이고, 3 25일이 그날이라고 말해주면 사람들은 그날은 성

모님의 성수태고지 축일이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그뜻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것

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실상 3 25일 축일의 공식 명칭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

. 이 축일은 정확하게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축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모님도

 이 축일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점이 성모님께대한 진정한 헌신은

항상 주님에 대한 그분의 관계에 집중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

7세기에 이 축일을 축하한 증거가 있다. 이세상 거의 모든 곳에서 12 25일이 성탄절

이기 때문에 주님수태고지축일은 정확하게 9개월 전이다. 주님탄생예고 축일은 사순절

동안의 일요일에는 축하할수 없기 때문에 올해는 3 26일이 되었다.

 

 

그 동안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바라빠를 놓아 주고 예수는 죽여 다라고

 요구하게 하였다. 총독이 이 두사람 중에서 누구를 놓아 달라는 말이냐? 하고 묻자

그들은 바라빠요 하고 소리질렀다.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고 묻자 모두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소리 질렀다. 빌라도가 도대체 그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으나 사람들은 더 악을 써가며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외쳤다.(마태 27: 20-23)

 

우리는 예수님의 유년기 이야기를 다시 한번 반복한다. 그때 천사가 요셉을 찾아와서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에집트로 피신하라고 말한다. 헤로데 왕이 아기를 죽이기

위하여 찾고 있기 때문아라고 하였다. 지금은 종교 지도자들이 군중들에게 바라빠를 살

리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설득한다. 마태오는 이 선택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예수님과

바라빠는 군중앞에 서있고 빌라도는 명료하고 직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너희들은 이

두사람중에서 너희들을 위하여 누구를 석방 할까? 선민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할,,

거의 죽어가고 있던 모세가 긴 작별의 인사를 한다. 모세는 백성앞에 단호한 선택을 내놓았다.

 나는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선택하라. 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군중속의 사람들은 똑같은

문제에 당면 했다. 이 두명 중에 누구를 원하느냐? 그들은 바라빠를 선택했다. 매일 크고

 작은일에서 우리는 이런 선택의 문제에 당면 한다. 나는 생명을 주는 일을 해야하나 또는

죽음과 관계되는 일을 해야 하나? 나는 쌓아 올려야 하나 찟어버려야 하나?

 

주님과 조용한 시간을 보내라.

 

 

 

 

 

2009 3 27()

 

제자가 되는것은 활동이 개입된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카드가 아니고 하나의 동사다. 그래서 나의 삶의 여러부분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나죄를 향하여 또는 하느님을 향하여 특정한 방향없이 아무

곳으로나 표류하는가?  -켄 언데너 주교 1995-

 

작은 책들.

 

2004년 오늘 미시간주 새기너 교구의 켄 언테너 주교님은 잠시 아프신 후에 돌아가셨다.

 1995년 그분은 그의 교구내의 교회들이 기도, 단식 또 자선 행위와 같은 전통적인 행사로

사순절을 지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는 향후 5년간 기도, 자선, 금식과 화해에 관한 작은

책자, 교육자료, 전례와 행사를 개발하는 전담반을 만들었다. 2000년 그는 작은 책들을

소개했는데, 이 책들은 복음서의 수난사를 묵상함으로서 사람들이 기도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Lectio Divina(성서를 기도하기)의 기도 방법을 이용한 이 책들은 아주 인기가

 있어서,  다음해에는 대림절/성탄절 기간과 부활절까지 확장 되었다. 2002년 청지기직을

 위한 작은 책도 소개되었다. 오늘날 작은 책들은 온세계로 배포된다.

 

 

 

빌라도는 그 이상 더 말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오이려 폭동이 일어

나려는 기세가 보였으므로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너흐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군중은 그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게 한다음 십자가 형에 처하라고 내어 주었다. (마태 27:24:26)

 

빌라도는 그의 손을 닦는다. 우리는 다시 한번 무고한 피의 잊혀지지않는 흔적들을

갖게 된다. 빌라도는 그자신의 책임을 씻어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군중에게 한

빌라도의 말 너희가 알아서 처리하여라 라는 말은 대사제와 장로들이 유다에게

한 말 네가 알아서 처리 하여라 의 반복이다. 우리가 마음속 깊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하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다. 어떤 잘못을 합리화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소용없다. 우리가 갈곳은 아무데도 없고 죄는 아직도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어느 만큼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의 이야기를 기억하느냐?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뜨지도 못하고, 그의 가슴을 치며기도했다. :

오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주 정직하게 이말을 못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것을 말하라. 다음엔 조용히 앉아서 하느님의 반응을 들어라.

 

출처 : 유토피아의 꿈과 낭만이 머무는 세계
글쓴이 : 야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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