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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예가 이형석 작가를 찾아서

tlsdkssk 2013. 6. 6. 18:20

 

 

흙의 예술, 흙의 정형-도예가 이형석 작가를 찾아서

 


남녘에는 이미 햇살이 따스한 봄빛이 완연했다.

중부지역도 잔뜩 몸을 부풀리고 있던 꽃들이 때를 만난 듯 화사한 거리풍경을 만들고

나뭇가지 끄트머리도 연둣빛으로 빛깔을 바꾸고 있다.

산자락 군데군데 참꽃이 벙그러져 있으며, 개나리며 벚꽃들이 화사한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풀과 나무에게 꽃은 한 해의 농사다. 꽃을 피우기 위한 날은 길었다.

도예가 이형석 작가의 작품이 완성되는 날까지의 날도 길었다.

 

 

인천에서 언양 석남사까지의 길도 가깝지는 않았다. 

비구니스님들의 도량인 언양 석남사의 봄빛은 산자락 끄트머리에부터 도량에 이르는 오솔길 풍경도

은은한 연둣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조용했고

국내 승가대학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는 비구니사찰인 운문사의 봄빛은

주변 호거산의 풍경을 더욱 안온하게 만든다.

 

 

경북 청도군 이서면 금천리에 위치한 이형석작가의 요장(窯場)인 '청도요'를 향했다.

이서면에 들어서자 과수원 유실수들을 손질하는 일손들이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금천낚시터 뚝방에는 노란 민들레가 곱게 눈인사를 건네고,

마당 끄트머리에 죽 늘어선 매화와 수양매화의 향기는 차창을 통해 코끝을 간질였다.

건너편 복숭아 과수원에 비껴 내리는 햇살이 포근했다.

금천 낚시터 방죽을 끼고 걸어서야 당도한 도예가 이형석작가의 요장인 ‘청도요'

뜨락에는 꾸벅꾸벅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졸음이 가득한 진돗개들의 눈꺼풀 위로 봄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마당은 단정하게 잔디가 깔려 있었고,

마당 가장자리로 자리 잡고 있는 매화나무가 화사한 봄을 느끼게 하였으며,

 마당 끄트머리에 맞 닿아있는 금천낚시터에 내려앉은 윤슬이 평화로운 요장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금천 낚시터를 가운데 두고 요장 건너편 과수원 자락에

꽃망울을 머금고 햇살사냥에 나선 복사꽃이 만개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까를 상상케 하는 요장 풍경은

 쥔장의 말소리만큼이나 평온하게 다가왔다.

 

 

 

 

 

 

이형석작가는 대구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한 청도 출신 작가로서

 예리한 눈빛과 꽁지머리가 인상적이며 장작가마를 짓고 분청사기를 만들고 있었다.

요장은 나지막한 야산을 뒤로하고 뜨락 끝에 펼쳐진 금천낚시터는

배산임수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낚시터 건너편에 펼쳐진 평화로운 과수원과 어우러진 요장 풍경은

이형석작가의 작품에서 풍겨지는 느낌을 많이 닮았다.

 

 

 

 

 

내가 이형석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8년 전 "오산 세계막사발 워크숍" 에서였다.

그 후로 매년 한두 번씩 만나게 되고 함께 전시회도 갖게 되었다.

반가운 수인사를 건네고 청매향에 취해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다가 다실로 들어갔다.

기우는 햇살이 들이치는 다실 분위기는 차분했고 창문 깊숙이 햇살이 들이친 차실에는 봄이 들어 앉아 있었다.

 

 

 

 

차창 밖에는 이미 봄이 당도해 있었지만

차실 안 풍경은 정돈되어 있는 다구들과 다탁 위에 고졸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다화가

매화향을 나눠주며 오후 햇살을 끌어안고 있었다.

 

 

 

 

 

가볍게 두어 송이 띄어 놓은 찻잔 속에서 꽃봉오리를 살포시 피워내며

매화 향을 코끝에 맴돌게 하는 찻잔 속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슬그머니 번지는 입가의 미소가

'이것이 도심에서 활동해야하는 작가들이 느끼기 쉽지 않은 여유로움의 진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고 한다.

이형석작가의 작품은 빛깔이 따뜻하고 형태도 소박해서 한국인의 소박한 정서와 많이 닮았다.

어느 장르의 예술이든 작가와 감상자의 교감의 창은 작품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마음도 읽게 되고 그 작품에 담긴 의미도 살피게 되기 때문이다.

 

 

 

 

 

 

이형석 작가의 작가의 작품에는 두 가지 특성이 먼저 눈에 띄었다.

트임기법과 덤벙기법이었다.

 

 

 

 

 

트임기법은 말 그대로 손때를 씻지 않아 어린 아이의 손이 트듯이 트게 해서 자연미를 살리는 방법이다.

 빚은 흙을 바깥쪽을 불로 살짝 말린 후에 안에서 표면을 넓혀주면 바깥쪽의 표면이 튼다.

 마른 표면을 넓히면 표면 확장에 따라 벌어지는 현상으로

소나무 껍질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투박한 맛을 준다.

 

 트임기법의 투박한 기물 표면과 힘찬 속도감이 느껴지는 귀얄문양이 그려진 귀얄문 항아리는

투박한 분청사기에 동적인 느낌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또 하나는 덤벙기법이었다.

기존에 둥글고 매끈한 것과는 달리 항아리를 흙물에 담가 자연스러운 굴곡과 틈을 살린 것이다.

 덤벙기법을 이용해 만든 다구와 항아리들은 장작가마 소성 작품 특유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트임기법이나 덤벙기법은 모두 한국인의 심성을 닮은 기법이다.

한국미를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답한다,

한국의 미는 자연미라고. 도자기가 성형이라는 인공성이 깊이 들어가 있는 작업이지만

인공성에 자연을 담는 기질은 한국인의 기본적이며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특성이다.

이형석 작가의 작가의 특성이 곧 한국인의 특성이기도 했다.

 

이형석 작가는 물레를 차기도 하고 도판을 이용하기도 한 분청사기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다시 3칸의 장작가마에서 소나무를 지펴 소성과정을 거쳐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을 밟았다.

 

분청사기란 분청회청자사기의 준말로

백토를 도자기 표면에 발라 장식해서 만든 도자기로 14세기 중엽에 발전된 도자기로

16세기 초반까지 연계되어 만들어져 온 전통도자기의 한 축이기도 하다.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胎土)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조선 초기의 도자기다.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基)의 준말로서 이 분장기법은 무늬를 나타내기도 하고,

그릇 표면을 백토로 씌워 백자로 이행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분청사기라는 이름은 한국미술사의 토대를 마련한 고유섭(高裕燮)이 처음 이름 붙였다.

분청사기는 청자기의 표면에 상감(象嵌), 박지(剝地), 백토분장(白土粉粧), 각화(刻畵),

철화(鐵畵) 등으로 장식한 것을 전부 포함하는데 편의상 상감분청계(象嵌粉靑系:인화분청,

감화분청)와 백토분청계(白土粉靑系:백토분청, 박지분청, 철화분청)로 구분된다.

 

분청사기는 한국의 고유하고 독자적인 개성으로 태어난 도자기이다.

한국인의 소박함을 대변하는 도자기이기도 하다.

질감의 거침과 빛깔의 소박함이 만나서 조화를 이룬

그야말로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서민의 마음과 생활을 닮았다.

 

 

 

 

 

 

작년 늦가을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이형석 작가의 작품전이 있었다.

이형석 작가의 개인전에서 만나게 된 작품들.

막연히 다완과 다관 그리고 잔을 떠올리며 도착한 갤러리에는 포스터에 붙여진 것처럼

도자제기전이 열리고 있었다. 

 

 

 

 

 

 

작년 여름 길고 지루했던 장맛비와 극성스러웠던 가을비로 작품 건조는 물론

소성에도 큰 어려움이 겪었을 것이 떠올랐다.

 

고생했음을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다구들과 항아리 그리고 갤러리 이층에 전시되어 있었던

도자 제기들은 성공한 작품으로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시중인 기물들을 바라보던 나는 나도 모르는 새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려운 여건에서 준비를 잘 한 것이 대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서울에서 전시는 하는 일은

작가에게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마음을 닮은 작품

 

 


이형석 작가의 작품은 따듯한 기운을 품고 있다.

아래층에는 다구들과 항아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층에는 도자제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층에 전시되어 있었던 제기들은

우리 전통문화 중 한 분야인 제례문화와 전통의 아름다움의 맥이 닿는 작품들이다.

 

예로부터 도자기가 제례 용기로 사용되어 온 기종으로는 향완, 탕기, 방형제기,

향로, 접시, 대접 등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단아한 아름다움을 갖춘 제기들은 그릇 자체가 주는 의미에 

제례 행사라는 무형의 전통까지를 포함한 전승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 와서 대부분 제기는 목기나 유기가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다.

 

이형석 작가의 도자 제기를 보는 순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필자도 도자 제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새로워졌다.

 이형석 작가의 제기 작품들은 단아하다, 단순하고 편안한 빛깔이다.

이형석 작가는 문중에 장손으로서 제례문화와 제례 예절에 대한 남다른 깊이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자기로 제기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제례문화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시도해 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현대 미적 해석이 아니더라도 우리 전통을 이어가려는

이형석 작가의 문화적 정체성이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형석작가는 제기를 만드는 작업이 시도단계이지만 좀 더 깊이 연구하고 공부를 해야

작품의 완성도가 깊어질 거라고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마치 수행하듯 성찰하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 이형석작가,

그는 몸과 마음이 최상일 때 작업을 한다고 한다.

작품이 가지는 고유의 에너지가 감상자나 소장자에게도 전달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을 만들 때의 경건한 마음가짐이나 작품을 만들 때의 정성은 작가 본인의 것이기 이전에

느낌으로 소통하게 되는 감상자나 소장자와 공유한다는 생각이 의식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작품에 대한 애정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매화향이 그득한 차실에서 2013년 청도 미술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한 이형석 작가의 도자예술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도예가에게 있어 흙작업은 그 자체가 이미 자연의 일부로서의 자리매김을 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자기의 탄생은 상반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생성과 소멸 그리고 재탄생.

흙이라는 원천적인 재료로 만든 작업이라는 특성이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잡는다.

 

암석이 부서져 돌이 되고, 돌이 부서져 모래가 된다.

그 잔 모래마저 부서지면 흙이 되는데 다 부서진 후에야 비로소 점성을 갖는다.

흙은 다 부서진 후에야 비로소 서로 끌어안음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흙작업은 인간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인의 정 같은 것이다.

끈끈하면서도 차지고, 차지면서도 차갑게 굳어 절정의 미를 보여준다.

흙으로 만든 세상은 도자기로 태어나는 순간 다시 단단해지며 아름다워진다.

그것이 도자기의 매력이다.

흙이 다시 굳어져서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이 도자기다. 

흙작업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가진 과정이 반복되는 자연의 이치와 일맥상통한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외로운 길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외로움의 끝에서 만나는 희열 때문이다.

작품이 나왔을 때의 기쁨이 외롭고 고되지만 꾸준히 쉬지 않고 도예가의 길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다. 

 

뜨락에 내려앉은 봄을 뒤로하고 귀가 길에 오르는 나에게

이형석 작가의 모친께서 재배한 쪽파 한줌과 수양 매화 몇 가지를 건네던 손길에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손수 흙에서 재배한 것들을 건네주는 마음이 떠나는 길손의 마음까지 덥혀주었다.

 

(2013. 4. )  

 


출처 : 막사발사람들
글쓴이 : 파아란 신정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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