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의 회상
낭만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로맨스를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낭만적인 감정은 스스로에 의해 표출되는, 자기만의 행복한 감정일 수 있다. 작가는 인고의 세월을 거친 뒤 창조의 해산에서 낭만을 느낄 수 있고, 승화의 희열 속에서도 낭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야 말로 예술만이 안길 수 있는… 낭만의 선열이라 할 것이다. 어둡고 긴 터널… 뼈를 깎는 아픔 속에서 비로소 한 사람의 예술가로 설 수 있었던, 라흐마니노프가 탄생시킨 피아노곡이야말로 근대 음악사에서 큰 획을 그은 마법의 융단이었다. 20세기 들어 그처럼 어필하는 피아노곡을 쓴 사람은 없었다. 라흐마니노프(러, 1873-1943)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고, 또 작품이라야 몇몇 피아노곡에 한정되어 있지만 그가 음악을 통해 던지고 있는 심리적인 도전은 크다. 인간은 과연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는, 미학적인 동물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초극을 위해 투쟁하는… 승화를 위한 극한대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존재인가를 보여준 작곡가였다.
바람이 어디서 불고… 사랑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다만 그 다가옴에 희생될 뿐이다. 일생을 사는 동안 애정의 결핍, 로맨스로 고통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베이지역은 청명한 하늘, 아름다운 경관이 우선 로맨틱하다. 바람은 늘 어디서 불어오는 지… 꽃은 왜 사철 피는지 알 수 없다. 청춘의 목마르던 시기… 20년 전을 회상하자면 지금도 낯설기만 하다. 이발을 싫어했기에 머리는 늘 길어있었고 … 웃 옷은 십년이 넘은 가다마이였다. 형이 물려준 것이었는데 초코렛 빛… 곤색 칼러가 좋아서 그냥 입고 다녔다. 누군가 '쌍팔년도 옷'이라고 놀려주기에, 그제야 유행이 꽤 지난 구닥다리인줄 알았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치열하게 학업에 몰두한 것도 아니었다. 어쩐지 낙오병 같은 움추림이 있었는데 외로움이랄까 당시의 심리 상태가 그랬다. 흔히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는데 당시에 특별히 실현 가능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현재를 배설하고… 본능적으로 하루를 지탱해 나갈 뿐이었다. 스쳐가는 사랑 같은 것이 없었을 리야 없었겠지만 이루지 못할 아픈 기대감일 뿐이었다. 현재라는 모호한 안개… 아련한 아픔의 젊은 날이었다. 당시의 어두운 모습은 <우울한 광시곡>이란 제목으로 한번 표현한 바 있지만 미래의 불안감 때문에 학교에도 가는 둥 마는 둥, 종일토록 도서관에 처박혀 화집을 들쳐보기도 하고 바닷가에 앉아 낙조를 바라보며 존재에 대해서 골똘히 사색 하고, 전차를 타고 비 내리는 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마치 살아있는 화석처럼 몸속에 열기라고는 전혀 없는, 마치 철로 만든 로봇처럼, 철거덕거리는 육체를 이끌고 길 잃은 개처럼 도시를 방황하였다. 절망하던 나에게도 약간의 핑크빛 순간은 있었다. 그러나 처지가 처지였던 만큼 당시의 로맨스는 마치 금지된 장난처럼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졌다. 나는 감정과는 정반대로 그녀에게 무뚝뚝하고 야비하고 때로는 건달처럼 굴었다. 그녀는 서글프게 돌아섰고, 나는 방안에 처박혀 <우울한 광시곡>, 라흐마니노프의〈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만을 미치도록 들었다. 그리고 우리를 버린 도시를 저주하였다. 창백한 도시는 모른다. 우리의 가슴 속에 뜨겁게 불타오는 우울한 랩소디를…
라흐마니노프는 매우 독창적인 예술을 남긴 작곡가였다. 마치 외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나 할까…. 어둡고 모호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그의 협주곡은 어떤 수수께끼 같은 본능을 잠에서 일깨우곤 한다. 유명한 그의 협주곡(피아노) 2번을 들어보자. 서주부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이 세상의 경험으로 인식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막연한 두려움이라고나할까….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호수 같은… 두려움만이 출렁이고 있을 뿐이다. 먹구름의 도입부가 지나면 곧바로 햇살같이 맑은 가락이 들려온다. 급작스러운 변화인데 작곡가의 극단적인 감정 기복을 엿볼 수 있다. 작곡가는 왜 이런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을 노출했을까? 정신치료를 받은 때문이었을까… 결코 건강한 소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아름다운은 소리가 또 있을까. 이것은 하나의 소리라기보다는 얼어붙는 대기의 미립자…. 입김이 환원되어 영혼을 얼게 하는 메아리다. 결코 특별한 소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라프마니노프만이 전할 수 있는, 고혹적인 낭만이 물결쳐 온다. 짙은 절망이 랑데뷰 되어 있기 때문일까…. 세계는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버리고 또 미치도록 사랑하는… 절규의 랩소디를…
출처 : Musicjung
글쓴이 : 이정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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