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욕망, 솔직해도 괜찮아요! 인간이라서, 인간이기에,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고 느끼는…
언젠가 모 신문사의 칼럼 필진들이 모여 대담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보니 두 명의 유명 남자 작가들 사이에 끼어 있던 나는 그날 유독 날카로운 질문들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 기자가 던졌던 다양한 질문 중에 기억에 남아 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독자가 가장 소통하기 힘든가라는 것이었고, 정확히 말해 어떤 세대가 심리적으로 가장 불편한가와 관련된 문제였다.
자기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는 법을 모르니,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땅에 이토록 많은 퇴폐 이발소와 아가씨들이 등장하는 노래방과 음란 주점들이 생기는 게 아니냐고 되묻고 싶기도 했다. 지금은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욕망사회지만, 그래서 얼핏 자유로운 욕망들이 넘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정직한 욕망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는 셈이었다.
당사자들도 검사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검사들도 언제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애기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웠다. 모든 사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사실이 탄로날까봐 권위적이 되거나, 반대로 자신 있는 사건의 경우 그 기회를 이용하여 지나치게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살인적인 노동 시간에 시달려 잦은 의료사고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한국의 의사사회, 전공의들의 문제와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사라지지 않는 ‘전관예우’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꽤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검사는 비슷한 맥락에서, 왜 검사들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지 왜 평판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결국에는 모두가 다 변호사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변호사가 되었을 때의 몸값 문제 때문인 것이다. 높은 수임을 얻는 '전관'이 되려고들 하고, 그래서 판검사들 경쟁이 심해진다.” 모두 평생 판검사로만 일할 수 있다면 생기지 않을 문제들이라는 점에서 전관예우는 매우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김두식이 『욕망해도 괜찮아』를 냈을 때, 그것을 읽은 건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었다. 요즘 들어 『은교』처럼 중년 이후 남자들의 욕망을 다룬 책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날이 덥던 어느 날, 벤치에 앉아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신정아의 책 『4001』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중년 남자의 ‘욕망’에서 시작한 성찰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즉 어머니 세대까지를 초월한 사람들의 욕망으로 확장되어 갔다. 교사로 일하며 평생을 도덕적으로 살아온 어머니가 자신의 욕망을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에 불편함을 느꼈던 그는 그것의 실체에 접근한다. 가령 친구들에게 자식이 쓴 책을 굳이 ‘선물’의 형식으로 전달하면서, 자식 자랑을 하고 싶은 어머니로서의 욕망 말이다. 그는 그것을 ‘욕망의 우회로’라고 설명한다.
그는 영국의 신사가 ‘신사’일 수 있는 것은 원래 물려받은 유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그것이 그들의 지식이나 매너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규범을 만든 사람들은 애초에 돈이 만들어준 여유 때문에 규범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고, 규범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언제든 그걸 고친다는 점에서 절대 우위에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세계대전 같은 사건을 당대에 겪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식민지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시스템 안에서의 의무다. 규모를 유지하려면 유산이 가급적 한명의 아들에게 모아야 하기 때문에 아들 중 일부가 전쟁터에서 죽어주는 것도 계급을 지키기 위한 필수조건인 셈. 아들 하나가 죽으면 노동력의 손실로 당장 먹고 살게 줄어드는 중산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욕망은? 며칠 전, 처음으로 영화 <색계>를 보았다. 탕 웨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추>를 꽤 흥미롭게 봤기 때문에, 또 그녀의 목소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여배우들 중,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탕웨이를 치면 별 수 없이 딸려 나오는 ‘겨털’이라는 말이 정말 싫었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탐독하던 이십 대, 나는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몸과 영혼이 모두 자유로운 여자들을 늘 동경했었다. “나는 섹스를 좋아하지만, 욕구를 참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가령 「what's going on」의 로드니와 아이다 같은 엉망진창의 커플을 보면서.
너무 많은 욕망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욕망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는 모르겠다. 영원한 젊음을 욕망했던 한 남자의 파멸기를 그린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 사람들과 자유로운 강연회를 연 적이 있었다. 강연회를 마치고, 늦은 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열정적으로 질문을 하던 한 오십 대 남자를 떠올렸다. 유명 컴퓨터 회사에 근무하고, 젊은 시절 미국에서도 살았다는 그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세대가 세대를 소외시키는 방식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 든 남자가 솔직히 자기 욕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지금, 이제 나이 든 여자역시 자기 욕망에 대해 솔직해 져야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 건 왜일까. 개똥녀, 지하철녀, 겨털녀, 된장녀 까지 수많은 ‘녀’들이 등장하는 한국사회에 유독 무슨무슨 ‘남’이 등장하지 않는 걸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 만인 걸까. 남자의 욕망을 그린 『은교』같은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동안, 미국과 유럽에서는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라 불리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가 2천 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문득 김두식의 책에도 재인용되어 있는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무 ‘성’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무성의 어머니. 그러나 그것이 또한 여자의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이 독백이 인간이라서, 인간이기에,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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