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윤동주의 시

tlsdkssk 2011. 9. 26. 11:00

삶과 죽음

 

                                                    윤동주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 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새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 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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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비

 

                                           윤동주

 

아씨처럼 나린다.

보슬보슬 햇비

맞아 주자 다 같이

   옥수숫대처럼 크게

   닷 자 엿 자 자라게

   햇님이 웃는다.

   나보고 웃는다.

 

 

하늘 다리 놓였다.

알롱알롱 무지개

노래하자 즐겁게

   동무들아 이리 오나

   다같이 춤을 추자

   햇님이 웃는다.

   즐거워 웃는다.

 

 

* 햇비 : 그 해 처음 내리는 비

* 이리 오나 : 이리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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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뚝

 

                                               윤동주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웨인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 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 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 몽기몽기 : 느릿느릿

* 한 커리 :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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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오줌싸개 지도> 윤동주 지음/ 이창건 엮음/ 효리원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