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살리자-①가족해체 원인·대안] 잠만 자는 집… 하숙생 가족… 대화가 없다
국민일보 | 입력 2010.05.04 18:13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연상됩니까. 아버지의 뒷모습, 어머니의 주름진 손, 어린 자녀의 해맑은 웃음소리…. 애틋한 이미지들이 떠오르나요. 굳게 다문 아버지의 입술, 윽박지르는 어머니의 목청, 밖으로만 나도는 아이들이 먼저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울타리가 되는 가족 대신 이혼·가출·학대·방임으로 마음의 짐이 되는 가족들이 늘고 있습니다.
가족 해체는 이미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현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도 제대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에 깊어만 가는 가족 해체의 원인과 대안을 짚어보고, 가족 안에서 삶의 가치와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습니다. '바른 가정 만들기' 시리즈는 가정의 달을 맞아 한 달 동안 네 차례 연재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족 해체가 사회 문제로 크게 부각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0년대 후반부터다. 갑작스러운 경제 불황으로 사회가 뿌리째 흔들리면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아동 학대와 방임, 가출 등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10여년이 흘러도 가족 해체 현상은 계속 진행 중이다. 겉으론 화목해 보이지만 서로 단절된 생활을 하는 해체 직전의 가정도 적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숙생이다"=중소기업 임원을 하다 2년 전 퇴직한 장모(60)씨는 최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쉽게 짜증을 내고, 입맛이 없고, 밤에는 잠을 설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증상이다. 꼭 닫혀 있는 아이들의 방문을 볼 때면 깊은 허무감에 휩싸인다.
장씨의 큰딸(30)은 잡지사에 다닌다. 야근이 잦다. 큰아들(28)은 공무원 시험 준비로 바쁘다. 집 근처 도서관을 오가느라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온다. 막내아들(20)은 대학교 2학년이다. 입대를 앞두고 휴학했는데 자주 외박을 한다. 집에 있을 때면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 셋과 함께 아침식사 하기도 힘들다.
아내와는 지난해 이혼 직전까지 갔었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냈지만 실패하면서 골이 깊어졌다. 퇴직금을 모두 날리고 처가에 빚도 졌다. 지난해에는 아내와 마주하기만 하면 돈 문제로 다퉜지만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 요즘은 서로 말도 잘 섞지 않는다. 평생 일만 하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장씨는 어느 때보다 혼자라고 느낀다. 장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하숙집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가족은 집에서 잠만 잔다. 함께 밥 먹을 시간도 별로 없고, 마주보고 5분 넘게 이야기하는 일도 많지 않다. 가족이 아니라 서로에게 하숙생이다"며 한숨지었다. 장씨는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집 전화처럼 혼자 덩그러니 있는 자신의 모습이 서글프다. 그는 "식구들이 각자 휴대전화를 하나씩 갖고 있다 보니 집 전화 벨이 울리는 일도 거의 없다. 남들도 다 비슷하게 산다지만 식구들이 부대끼면서 살아야지, 가족을 위해 30년을 살았는데 남은 것은 빚과 외로움뿐"이라고 토로했다.
◇각박해진 사회…그래도 돌아갈 곳은 가정=가족 해체 현상은 경제 상황과 연관이 깊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으로 떠올랐고, 최근 불경기와 함께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2003년 이후 감소했던 이혼율이 지난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는 12만3999쌍이 이혼해 2008년 11만6535쌍보다 6.4% 증가했다.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가 가장 많았고 경제 문제가 2위였다.
개인 단위 생활이 확대된 것도 가족 해체 현상과 관련 깊다. 인터넷과 모바일 발달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가족 간 대화가 단절되고 심리적 결속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가족 해체 직전의 상황에서 신음하는 가족들이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가족들의 끈끈한 정이나 결속력을 그리워하는 부모 세대와 개인주의 생활에 익숙한 자녀 세대 간 심리적 갈등은 흔한 일이 됐다.
가족 해체 현상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가족 단위에 지워진 경제적인 짐을 사회가 나눠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치관의 변화,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한경혜 교수는 "가족 해체는 개인적인 문제에서 사회적인 것들까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례별로 적합하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우리나라에서 가족 해체가 사회 문제로 크게 부각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0년대 후반부터다. 갑작스러운 경제 불황으로 사회가 뿌리째 흔들리면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아동 학대와 방임, 가출 등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10여년이 흘러도 가족 해체 현상은 계속 진행 중이다. 겉으론 화목해 보이지만 서로 단절된 생활을 하는 해체 직전의 가정도 적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하숙생이다"=중소기업 임원을 하다 2년 전 퇴직한 장모(60)씨는 최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쉽게 짜증을 내고, 입맛이 없고, 밤에는 잠을 설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긴 증상이다. 꼭 닫혀 있는 아이들의 방문을 볼 때면 깊은 허무감에 휩싸인다.
장씨의 큰딸(30)은 잡지사에 다닌다. 야근이 잦다. 큰아들(28)은 공무원 시험 준비로 바쁘다. 집 근처 도서관을 오가느라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온다. 막내아들(20)은 대학교 2학년이다. 입대를 앞두고 휴학했는데 자주 외박을 한다. 집에 있을 때면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 셋과 함께 아침식사 하기도 힘들다.
아내와는 지난해 이혼 직전까지 갔었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냈지만 실패하면서 골이 깊어졌다. 퇴직금을 모두 날리고 처가에 빚도 졌다. 지난해에는 아내와 마주하기만 하면 돈 문제로 다퉜지만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 요즘은 서로 말도 잘 섞지 않는다. 평생 일만 하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장씨는 어느 때보다 혼자라고 느낀다. 장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하숙집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가족은 집에서 잠만 잔다. 함께 밥 먹을 시간도 별로 없고, 마주보고 5분 넘게 이야기하는 일도 많지 않다. 가족이 아니라 서로에게 하숙생이다"며 한숨지었다. 장씨는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집 전화처럼 혼자 덩그러니 있는 자신의 모습이 서글프다. 그는 "식구들이 각자 휴대전화를 하나씩 갖고 있다 보니 집 전화 벨이 울리는 일도 거의 없다. 남들도 다 비슷하게 산다지만 식구들이 부대끼면서 살아야지, 가족을 위해 30년을 살았는데 남은 것은 빚과 외로움뿐"이라고 토로했다.
◇각박해진 사회…그래도 돌아갈 곳은 가정=가족 해체 현상은 경제 상황과 연관이 깊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으로 떠올랐고, 최근 불경기와 함께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2003년 이후 감소했던 이혼율이 지난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는 12만3999쌍이 이혼해 2008년 11만6535쌍보다 6.4% 증가했다.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가 가장 많았고 경제 문제가 2위였다.
개인 단위 생활이 확대된 것도 가족 해체 현상과 관련 깊다. 인터넷과 모바일 발달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가족 간 대화가 단절되고 심리적 결속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가족 해체 직전의 상황에서 신음하는 가족들이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가족들의 끈끈한 정이나 결속력을 그리워하는 부모 세대와 개인주의 생활에 익숙한 자녀 세대 간 심리적 갈등은 흔한 일이 됐다.
가족 해체 현상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가족 단위에 지워진 경제적인 짐을 사회가 나눠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치관의 변화,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한경혜 교수는 "가족 해체는 개인적인 문제에서 사회적인 것들까지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례별로 적합하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