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공항에서 쓸 편지/문정희

tlsdkssk 2008. 10. 3. 05:32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나 지금 결혼 안식년 휴가 떠나요
그날 우리 둘이 나란히 서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겠다고
혼인 서약을 한 후

여기까지 용케 잘 왔어요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고
아니 오아시스가 사막을 가졌던가요
아무튼 우리는 그 안에다 잔뿌리를 내리고
가지들도 제법 무성히 키웠어요
하지만,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조용한 학자들 조차도
재충전을 위해 안식년을 떠나듯이
이제 내가 나에게 안식년을 줍니다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내가 나를 찾아가지고 올 테니까요.


- 문정희. <공항에서 쓸 편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