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위 시가 정현종 시인의 대표작이냐고 묻는다면 아닐 거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정 시인의 대표작이냐고 물으면 아무 대답도 못할 것입니다. 정형종 시인의 시는 어떤 시를 대표작으로 뽑아야 할지, 어떤 시가 시인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인지 참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위 시가 정현종 시인의 시 세계를 보여주는 충실한 이정표 역할은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현종 시인을 처음 뵈었던 게 한 23년 쯤 전이었던 걸로 생각됩니다. 그때도 정현종 선생의 머리는 백발이었지요. 그분의 백발은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 주위의 친우들과 농담으로 정현종 선생의 백발은 젊었을 때부터 너무 노회한 시를 써서 그렇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인들 중 가장 철학적인 시인 중 한 분이 정현종 시인입니다. 선생의 시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기본 주제가 모두 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선생의 시는 깊이가 있습니다. 그 말을 뒤집어서 얘기하자면 좀은 재미없는 시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서정적인 재미는 아무래도 뒷전이니까요.
위 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단어는 몇 가지 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요한 모티브를 제공하는 단어는 더욱 적습니다. '사람'과 '풍경', 이 조촐한 두 가지가 실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람'은 '사람' 그 자체라고 일단 이해하고, '풍경'은 어떤 풍경일까요? 시인은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풍경일 때처럼 / 행복할 때는 없다'라고 말합니다. 시인의 의지가 들어간 풍경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의미가 잡힌다면 '사람은 풍경일 때처럼 / 행복할 때는 없다'라는 단정이 쉽게 이해가 되겠지요?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릅니다. 시에 정답 따위는 없습니다. 다만 점근하는 것은 있겠지요. 시에 다가갈 때는 군인들의 낮은 포복처럼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고 고통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현종 시인의 '사물의 꿈'을 읽어보십시오. 한 편이 아니니 모두 읽어보시길.
넋두리의 마지막으로 정현종 시인의 시들 중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섬'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섬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