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한 문우에게 답장 메일을 쓰다 말고
가벼운 행장을 꾸려 산으로 나섰다.
그 근육질 남자(?)의 유혹 때문이었다.
그 시각이 주는 양광의 효과이었을 것이다.
내 책상에서 보이는 북한산이 마치 근육이 잘 잡힌 거인 남자처럼 보이질 않는가.
산의 능선도 그러 하고 세로로 구비구비한 줄기들의 윤곽이 어찌나 선명한지
잘 다듬어진 근육남을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사물도 그러하지만 산은 계절이나 시간대에 따라 보이는 게 사뭇 다르다.
천지에 하얀 눈이 쌓인 겨울이면 산들은 줄기마다 검고 굵은 선을 두른 것이
루오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오후의 일정 때문에 가까운 수락산으로 갔다.
비온 뒤라 산들은 청정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계곡마다 옥수가 원 없이 넘친다.
그 소리는 우렁차고 시원하여 내 속까지 다 쓸고 지나갈 기세다.
게다가 태풍의 영향인지 바람마저 좋은 날이다.
오랜만에 맨발로 걸어 보았다.
발이 따금거려 천천히 걸었다.
약간의 통증은 있지만 통증만큼 시원함도 있기에 참고 걸었다.
걷다가 더우면 게곡 물에 두 발을 담그고 서 있었다.
흐르던 땀이 이내 거두어지며 머리속까지 개운해지는 것 같다.
골짝의 너럭바위에 몸을 뉘이니 등이 서늘해진다.
푸른 하늘이 내게로 내려온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푸른 잎새 사이로 노니는 새들이 보인다.
그러나 이 행복한 산행을 1시간도 못 누리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집에 돌아오니 멋지던 근육남은 어느 새 근육이 다 풀린 펑퍼짐 男이 되어 있다.
밤이 되면 저 산은 거대한 박쥐 날개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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