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나를 이쁘다고 여기는 여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나보다 열살쯤 아래로서 권위있는 문예지와 신문사를 통해 소설 등단을 한 작가.
물론 작품집도 내었다.
뿐인가 , 번역을 하며 출판사도 경영하고 있는 이른바 유능한 커리어우먼이다.
그녀는 여성스런 외모에선 좀 벗어나 있지만 그럼에도 매력 덩어리다.
그녀의 많은 능력과 능란하고도 유려한 화술이 나는 몹시 부럽다.
그녀의 영리한 머리는 부족한 외모를 다른 매력으로 상쇄시키는 법을
통달하여 잘 구사해내고 있다. 한 마디로 참 똑똑한 여자다.
세상엔 특출한 외모를 지니고도 별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K같은 여자도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5년전쯤 이었고 광화문 교보에서였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사이라 서로 핸드폰 연락을 하면서 접선을 시도했다.
약속 지점에서 통성명을 하며 상대를 확인한 뒤, 나는 잘 가던 인근 커피숍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자리에 앉마마다 그녀가 하는 말.
"참 기분 나쁘네요. 저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다 해서 늙수그레한 여자가 나올 줄 알았더니
아이, 신경질 나. 나보다 젊으시잖아요. 게다가 이쁘고 날씬하고 세련되고 글도 잘 쓰시네.
정말 신경질 나. 앞으로 안 만나고 싶어."
그녀는 웃지도 않고 정색을 하며 속사포같이 빠르게 말했다.
자기 감정을 표출하는데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윤색하지도 않았다.
나는 웃으며 응수했다.
"그렇게 보인다면 용서해. 근데 나, 가난하거든."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가난하다구요? 거짓말 같애."
"아냐, 난 늘 쪼들리며 살아."
"정말이에요?"
"정말."
상대는 의외다 싶으면서도 다소 안도하는 눈치.
나의 가난은 그녀에게 좋은 약발로 먹힌 것 같다.
돈이라도 많은 티가 났다면 그녀는 정말 나를 상종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애초에 내가 나의 가난을 미리 공표한 덕에 우리의 미팅 비용은 거의 그녀가 댄다.
나는 이제껏 그녀처럼 솔직한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
그녀는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고 뾰족하다.
나는 그녀가 늘 언제 깨질지 모를 유리그릇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나이 덕인가 한결 편안하고 유해진 것 같다.
어제 그녀를 만났더니,
"내가 형님같이 생겼다면 늘 드레스를 입었을 것 같아요." 한다.
내가 "입고 싶음 입어." 하자,
"내겐 안 어울려요." 하더니
"아이 신경질나. 형님은 왜 나이를 먹어도 생기가 사라지질 않아요?"
하며 또 내 외모 타령.
세상에 이쁜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나를 보고 그렇게 이쁘다고 하는 건지.
나는 그녀의 칭송이 고맙고 기쁘다기 보다 왠지 내가 사기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