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자식들이 짝을 구하여 부모님들 모시고 상견례를 하는 자리.
아들 모친이 며느리 될 규수가 마음에 들어 그녀의 어머니께 한마디 했다.
“딸자식 곱게 키워 시집보내려는 엄마의 심정 이해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서운하신지요!”
딸 부친은 안사돈 될 분의 말씀이 감사해서 가만히 있고, 모친이 “애지중지 키웠지만 나이가 차서 분가를 시켜야 하니 어쩔 수 없지요. 뭐!”했다.
그때 아들 부친이 느닷없이 한마디 한 말씀. “그라마 우짜라꼬!(어쩌라고!)”
‘둘이 좋다며 가정을 꾸리겠다는데 뭘 어쩌란 말이냐! 짝 찾아서 가겠다니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아니냐!’를 남도 사투리로 툭 던진 것이 ‘그라마 우짜라꼬!‘ 였다. 과묵하신 분이 툭 던진 한 마디! 자리에 같이 한 양가 식구들이 크게 웃었다. 그러자 아들 부친은 점잖은 목소리로 천천히 한 말씀 더 했다.
“효도는 우리에게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 둘이 잘 사는 거다! 그것이 효도다. 어흠!”
琴兒 피천득 선생의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가 떠올라 여기에 옮긴다.
‘예식장에 너를 데리고 들어가는 너의 아버지는 기쁘면서도 한편 가슴이 빈 것 같으시리라. 눈에는 눈물이 어리고 다리가 휘청거리시리라. 시집보내는 것을 딸을 여읜다고 한다. 왜 여읜다고 하는지 너의 아빠는 체험으로 알게 되시리라.
네가 살던 집은 예전 같지 않고 너와 함께 모든 젊음이 거기에서 사라지리라.
너의 아버지는 네 방에 들어가 너의 책, 너의 그림들, 너의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리라. 네가 쓰던 책상을 가만히 만져보시리라. 네 꽃병의 물을 갈아주시려고 파란 꽃병을 들고 나오시리라.
부부는 일신이라지만 두 사람은 아무래도 상대적이다. 아버지와 달라 무조건 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언제나 마음을 같이 할 수는 없다. 제 마음도 제가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 한결같을 수야 있겠니?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기분이 맞지 않을 수도 적은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자존심 강한 너는 남편의 편지를 엿보지는 않을 것이다. 석연치 않은 일이 있으면 오해가 커지기 전에 털어놓는 것이 좋다.
집에 들어온 남편이 안색이 좋지 않거든 따뜻하게 대하여라. 남편은 아내의 말 한마디에 굳어지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같이 살아가노라면 싸우게도 된다. 언젠가 나 아는 분이 어떤 여인 보고, “그렇게 싸울 바에야 무엇 하러 같이 살아 헤어지지“그랬더니 대답이 ”살려니까 싸우지요, 헤어지려면 왜 싸워요“ 하더란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싸움이라도 잦아서는 나쁘다. 그저 참는 게 좋다.
아내, 이 세상에 아내라는 말같이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이름이 또 있겠는가. 천년 전 영국에서는 아내를 ‘피스 위버(peace weaver)'라고 불렀다. 평화를 짜 나가는 사람이란 말이다.
행복한 가정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결혼 행로에 파란 신호등만이 나올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려움이 있으면 참고 견디어야 하고, 같이 견디기에 서로 애처롭게 여기게 되고 더 미더워지기도 한다. 역경에 있을 때 남편에게는 아내가, 아내에게는 남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같이 극복해 온 과거, 옛 이야기 하며 잘 산다는 말이 있지.
결혼 생활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긴긴 대화다. 고답할 것도 없고 심오할 것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
부부는 서로 매력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 지성인이 매력을 유지하는 길은 정서를 퇴색시키지 않고 늘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며 인격의 도야를 늦추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은 충실히 살아온 사람에게 보람을 갖다 주는 데 그리 인색치 않다.
너희 집에서는 여섯 살 영이가 <백설공주> 이야기를 읽고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고거, 에미 어려서와 꼭 같구나.”그러시리라.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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