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도 늙어봐라..
운이 좋았어요.
교대역까지 가는 내내...
앉아서 갈 수 있었거든요.
오는 길도 운이 절반은 좋았지요.
서초역에서부터
전철을 갈아타야하는 신도림역까지
앉아서 올 수 있었으니까요.
수원, 천안으로 가는 전철...
그리고 인천으로 가는 전철로 갈아타기 위해
사람들이 오고가는 신도림역은
늘, 그렇게 북새통이지요.
천안으로 가는 전철을 한 대 보내고서
인천행 전철을 탈 수 있었어요.
가는 길에, 자리에 앉을 수 있던 운과
좀전까지 있었던 운에 비하면...
손잡이를 잡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었지요.
반납일이 다가오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어요.
몇 줄 읽어 내려가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엄청 큰 소리가 나더군요.
"아자씨~ 동인천까지 얼마나 가야혀?"
한 할머니께서
옆에 앉아 계신 아저씨에게 물어보시는 거였어요.
소리가 워낙에 컸던 터라...
전철안의 모든 사람들은 시선을 집중 했지요.
그런 시선이 민망했던지
아저씨,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한참 가셔야 돼요."
하고 말씀 드렸지요.
"잉? 시 정거장? "
"아니요~ 한참 가셔야 한다구요"
"한 시간 가야 헌다고?"
전철 안의 사람들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어요.
'이그~'
이미 돌아가 있던 고개를 뺀,
나머지 몸뚱아리를 할머니께 돌렸어요.
"할머니~ 한참 가셔야 돼요~~"
"잉~ 한 시간 가야 헌다고?"
"아니요~ 오래오래 가셔야 한다구요.
한참동안 가셔야 돼요~"
손잡이를 다시 잡았을 때...
앞에 앉아 있던 두 여자분이 제게 말을 건내더군요.
"할머니, 귀가 어두우신가 봐요.
아까부터 계속 물어보세요.
할머니 옆에 앉아있다가
여기로 옮겨왔잖아요"
"네..."
제가 전철에 타기 훨씬 전부터
할머니의 질문이 있었나 봐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들 웃었구요.
"동인천까지 몇 정거장 가야혀?
이번에 질문을 받은 사람은...
대학생인듯한 두 청년이었어요.
그 중의 한 청년,
전철 문위에 있는 노선표를 뚫어지게 보더군요.
아마도... 정거장을 일일이 세고 있는 거 같았어요.
그 뒷모습이, 얼마나 믿음직스럽던지요...^^
"열여덟 정거장이요."
"여싯 정구장?"
"열여덟 정거장요"
"열 정구장?"
'휴~'
한숨보다 먼저 몸뚱아리를 또 돌렸지요.
"할머니~ 열여덟 정거장이래요.
열 정거장 하구요. 여덟 정거장 더 가셔야 한대요"
"여싯 정구장?"
그사이에 개봉역인가? 오류역인가?
정거장에서 한 번 쉬었지요.
"열일곱 정거장이에요. 할머니~
열. 일. 곱. 정거장이요~"
"아~ 열일굽 정구장~
그리키 많이 남았어?"
"네~ 아직도 한참 더 가셔야 돼요."
그 후...
제가 소사역에서 내릴 때까지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어요.
신발 벗은 발을 의자에 올려놓으시고서
정거장 수를 세고 계신 거 같았지요.
지금, 아니... 어제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후회되는 게 하나 있어요.
내리기 전에...
앞으로 몇 정거장 남았다는 거,
다시금 확인시켜 드리지 못한 거요...
할머니를 계속 지켜보던 사람 중에...
동인천 역보다 멀리 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 도와드렸겠지요.
아~ 아~
간만에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탁~ 트였습니다.
061115 두꺼비
출처...againhws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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