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늙으면 죽어야

tlsdkssk 2006. 7. 12. 14:47
 

                       늙으면 죽어야


   큰처남내외가 장인어른께 여행을 잠깐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내게 하소연한다. 육순인 처남은 올해가 결혼30주년이라 아버지가 흔쾌히 승낙할줄 알았단다.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데 너희는 여행할 기분이냐?” 하시더란다.

   큰 병도 아니고, 입원하면 보살펴드려야 할 일들이 너무 많으므로 처남댁이 수고가 많을 것이고, 30주년을 기념하여 다녀오겠다는데 허락을 안 하셨다니 장인어른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인어른은 자수성가를 한 분이고 재산도 모아 자식들에게 지금도 물질적 도움을 주시니 대단한 분이다. 하지만 육순인 아들이 모처럼 간청하는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을 보며 장인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어려운 세월을 살아왔고, 자식은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를 사셨으니, 부모가 병환으로 입원해 계시면 만사 제쳐놓고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해는 하면서도, 시대가 바뀌었으니 자식의 입장에서 판단을 하셔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은 처남이 한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훌륭하시지만 자식에게 베풀어주고 물려준다는 ‘지혜’는 없다. 형님내외가 한집에서 모시면서 참 잘하고 있다. 재산 움켜쥐고 그러실 게 아니라 며느리 수고 많다고 좀 풀어놓으시면 훨씬 더 잘 해드릴텐데.”

   빙부님의 별명은 대원군이다. 나라를 개방하지 않고 쇄국정책을 쓴 것에 비유하여 붙인 건데 마음을 열지 않고 닫아걸고, 남을 많이 의심하시는 게 심하셔서 그렇단다.

   장모님은 안하무인이시다. 쓰던 물건을 간호사가 치워두었는데 잃어버렸다고 난리가 났다. 도로 갖다 주니 말도하지 않고 치웠다며 호통을 치셨다. 그만 좀 하라고 장인이 말리자 “당신이 예수님이냐?”하셨단다.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노망이  들렸냐며 가족들이 걱정을 하는데, 내가 보기엔 베풀며 살겠다는 마음자세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절 구경 가시는 건 좋아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 ‘베풀라’는 생활에 실천을 못하고 사시는 것이다. 

   늙으면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일으키기 위하여 ‘집념’은 필요하다. 하지만 노인에게 집착은 추하게 보인다. 후진을 위하여 자리를 내어주고 가진 것을 나누어 줄때 그는 존경받는다.

   편찮으신 장모님을 보며 장인어른이 하신 말씀은 “죽는 것 불쌍해서 어떻게 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 죽게 하겠다!” 그러려니 많은 재산이 필요한가? 최선을 다해 치료하되 섭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자세가 필요한데….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 보낸 생에 만족하고 이제는 자신을 ‘귀천’하겠다고 마무리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서산에 지는 해를 아쉽다고 바라보며 집착할게 아니라,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기쁘게 맞이하려는 자세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나는 행복 합니다. 여러분도 행복 하십시오.” 몇 달 전에  선종(善終)하신 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평화로운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며 남긴 말이다. 사자(死者)의 얼굴이 평화로운 미소를 띠느냐, 일그러진 모습을 하느냐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의 유무에 달린 것이리라.

   10년이 넘게 파킨슨씨병을  앓은 그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생명 연장을 위한 부가적 입원 치료를 거부하면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단다.

   드라마 ‘허준’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스승인 유의태는 유서를 남기고 동맥을 끊는다.  ‘태어난 모든 생명의 예정된 길, 죽음의 발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만병의 정체를 밝혀 모든 생명체가 천수를 누리게 할 길은 없을까? 내 몸 가르고 살을 찢거라. 오장 육부 생김새를 살펴라. 너를 심의(心醫)가 되라고 가르치고, 나의 육신까지 너에게 주고 간다. 이 길이 내 생명을 이 세상에 영원히 남기는 길이다.’

   나는 28세에 결혼했고, 78세에 죽기를 원한다. 금혼식을 가족과 조촐하게 보내고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다. 너무 장수하는 것은 자식들을 고생시키는 것이며, ‘늙으면 죽는다’ 는 섭리를 받아드리고, ‘늙으면 죽어야’의 섭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자세로 살아가련다.

   다양한 직업을 동시에 가지며 폭 넓게 활동하고, 250권의 저서를 남긴 인생천재 邱永漢은 ‘나는 77세에 죽고 싶다’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한창 바쁠 때 죽는 것이 소원이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쇠퇴하면 끝장이다. 죽기 전에 때로는 예행연습을 한다.’

   육신의 부활을 약속하는 종교가 있다. 부활을 향유하기 위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묵상하면서…….

                                            2005. 10  (200x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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