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은 강요될수록 허영심으로 나타난다. | 2005/06/13 오전 8:22:02 | ||
meadow(mibc0803) | 조회 116, 찬성 2, 반대 0 | ||
견디기 힘들만큼 뜨겁게 달구어 지고있는 쇠바닥의 작은 감옥속에서 신발조차 신지 못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었다면 그때 그 엄마의 <아이 사랑>은 어떻게 나타날까? 이건 극한상황속의 <모성>을 실험했던 나찌들이 벌인 잔인한 실험의 테마였다고 전해진다. 처음엔 아이를 안고 뛰다가 점점 뜨거워져 오는걸 막기위해 나중엔 머리에 얹고 뛰더니, 결국은 아이를 바닥에 깔고 그위에 서있었다는 실험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극한상황속 제정신이 아닌 바에야 엄마도 <인간>인 이상 모성이 작동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얻은셈이다. 모성을 벗어던지는것 또한 쉬운일은 아닐것이다. 절로 귀엽게 느껴지는 자기의 아이에게 모성은 절로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압박속의 모성신화는 모성을 환상적으로 부풀려 정작 엄마의 능력과 한계를 넘는 강압적인 의무를 만들어 강요하고 그건 강압적인만큼 독재적인 일이된다. 그런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정부는 훗날 국민으로써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하게되는 어린이들에 대한 육아의 일정책임을 안일하게 회피할 수도 있고, 정부가 책임져야할 일정부분의 복지정책 시행의 의무를 가정단위의 부모들에게 또한 자식들에게 떠 넘길 수도 있게 된다. 우리나라엔 한때 "장한어머니 상"이란 제도가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릴적엔 신문에 대서특필되곤 했다. 그걸 부러워하는 이웃들이 많았고 그 상을 받은 어머니들은 평생 소원을 이룬것 같다고 했다. 그 시상이 언제 없어졌는지 혹은 아직도 시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십여년전에도 분명 신문상에 오르내리던 상이다. 물론 <효부상> 이란것도 있었던 때다. 가히 "열녀문"을 세워 며느리의 희생을 미화하며 은연중 그녀들의 희생을 강요하던 시대의 발상과 견줄만 하다. 장한어머니상은 효부상의 연장선상이다. 효부가 과부가 된후의 드라마를 보는듯 했다. 상을 받은 분들을 폄하하려는게 아니다. 그 상을 만든 취지가 가히 독재적이며 비 인간적인 발상에서 비롯한걸 말하고자 할 뿐이다. 당시 장한어머니상이나 효부상등의 수상이유나 수상소감은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했다. 요컨데, 남편잃은 홀몸으로/ 행상등을 마다하고/ 몸이 부서져라 언갖 궂은일 마다않고 일해 돈을 벌었으며/ 그 돈으로 자식들을 악착같이 공부시켯고/ 효부는 행상으로 돈벌어가며 가계를 책임지고/ 거기에 더해 병든 시부모를 모셨으며/ 공부시킨 자식들은 판검사나 의사나 교수가 되었고/ 사위들 역시 그러한 직위에 있는 사람을 선택했으며/ 정작 수상한 효부나 어머니 그 자신들을 위해서는 단 한푼도 쓰지 않았으며/ 근검절약으로 모은 전 재산은 유명대학의 장학금으로 전액 기부한다...로 맺는다. 이건 한마디로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의 전형이다. 수상자는 자신이 한시대의 모성의 대표적 사례가 된것에 더 없는 영광을 누렸다고 착각한다. 신체적 학대만이 학대가 아니다. 인간 그 자체로 살지 못하도록 정신적인 조작을 가능케 했던 그 시대의 발상들은 모두 학대의 개념들 일수 밖에 없다. 과부에 대한 정조개념, 어머니들을 압박하는 모성개념 등은 여성을 압박하며 비 인간화 시키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갖는 환상적 개념들이다. 마치 한 임금을 섬기라는 유교의 계율처럼 남자들에게 내려진 <군신유의>라는 지침이 더이상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개념이 된것처럼 어머니 신화에 대한 개념은 다분히 정치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 왔다면 지나친 말일까? 그로 인해 우리 여성들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여권신장은 꽤나 뒤쳐져 왔던것도 사실이다. 근간에 호주제가 폐지되고, 여성 당수가 존재하는가 하면, 여성 국회의원수도 늘어나는것 같다. 남녀가 함께 세상을 동등히 살자는건 그 자체로 평화를 의미한다. 모성이 정치권의 한 교묘한 술수로 전락해 국민을 우롱하는 술책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무엇보다도 모성의 진실은 인간사랑의 최고의 형태이긴 하지만, 무조건적인 어머니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 <약점>은 아니란걸 직시해야 한다. 모성에 대한 정치적 압박은 엄마들에게 <죄의식>을 심는다. 죄의식은 자연스럽지 못한 감정이므로 <집단 허식>을 낳게 된다. 아이를 학원으로 하루종일 내모는 현상이나,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면밀히 파악할 여유를 주지않고 점수에 매달리게 하는 작금의 교육부조리가 여기서 비롯된다는걸 정치하는이들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물론 <행복> 일 것이다. 그걸 향해 가는길은 개인마다 모두 다를 수있다. 그 개인이 바로 내 자식이다. <헛된 모성>을 벗어 던지는 과정은 아이와 부모 모두의 행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신세기를 창조하여 세계를 리드하는 일등국가가 되려면 우리의 아이들에게 학교성적으로 인간의 등수를 매기려는 천박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들을 과감히 파괴해야 한다. 그런 가치전도적 모순에 매달려 어마어마한 재원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그에 발이라도 맞추듯, 자신의 현명하지 못한 희생을 자랑스럽게까지 생각하는 바보스럽고 헛된 모성들이 자꾸 확대 재생산 되어 끝없는 행렬을 이루고 있다. 언제나 그 바보스런 갈팡지팡행렬이 그칠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갈짓자 행렬이 제대로 잡힐 수 있는 가능성 조차 있는것인지 예측조차 하기 힘든게 금세기 대한민국의 그림자놀이간은 수수께끼 현주소다. 그건 국가의 교육정책에 진정한 인간철학이 결여돼 있다는 완벽한 증거이기도 하다. 어머니들이 모성의 껍질을 벗어 던진다는건 허위의식을 벗어던지는것과 다름없다. 모성의 껍질을 깨고 나온다는게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키워주는일이며, 부모들이 진실과 막딱드리는 긍정적인 도전일 뿐이다. 도전은 마음의 준비가 철저해야 성공한다. 그 도전에 직면해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 지도록 정부가 먼저 앞길을 열어 제끼는 대책이 정작 중요하고 유용한 역할을 할것이다. 정부가 교육개혁을 고심해 단행할줄 안다면 모성의 허영심은 사라질것이고, 그제서야 아이들의 진정한 미래를 위해 부모가 해야할 일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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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모성에 관한 논란
글쓴이 : Jin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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