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크랩] -미셀 투르니에 <생각의 거울> 중에서-(시하늘에서 옮겨옴)

tlsdkssk 2006. 1. 26. 08:22
락과 기쁨 / 미셀 투르니에
 경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
셨다고 한다. 이 신이라는 분에 대해서 인간은 많은 것을 알지 못한
다. 그가 바로 창조주 자신이라는 사실을 뺀다면 말이다. 따라서 창조
는 인간의 근원적인 소명이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창조한다는 것이
다. 창조가 없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삶에
는 창조라고 하는 신의 불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불꽃은 인
간의 생명이기도 하다.
 러면 어떤 창조를 이르는 것인가? 가장 거창한 것에서부터 가장
소박한 것에 이르기까지 창조의 방법은 무수히 많다. 자기 방의 페인
트를 새로 칠할 수도 있고, 꽃을 심는가 하면 그림을 그리고, 코러스
가 들어간 교향곡을 작곡하거나 국가를 건설할 수도 있다. 아이를 낳
을 수도 있고, 아이를 기를 수도 있다. 그것은 가장 아름다운 창조이
지만, 가장 위험한 창조이기도 하다.
 런데 모든 창조에 수반되는 감정은 기쁨이다. 그것은 창조적 해
동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면모이다. 창조적인 일이 가져다주는 다른
보상---돈.명예---은 비본질적이며 우연적인 것이다. 기쁨만이 창조
의 고유한 속성이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천지창조가 이루어지는 7일
동안 매일매일의 창조가 "야훼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로 끝나
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성경 구절이 의미하는 바도 바로 그것이다.
 락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기쁨이 창조를 물들이고 있는 감정이
라면, 쾌락은 파괴의 한 가지 형태인 소비에 동반되는 감정이다. 과자
를 만드는 법을 고안해서 그 요리법으로 과자를 만드는 제과공은 기
쁨을 느낀다. 배가 고파서 과자를 먹으면, 쾌락을 느낀다. 그러나 과
자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이다.
 덕주의자들이 쾌락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다. 가장 최선의 경우에 쾌락은 동물로 하여금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
는 자연의 수단이다. 고통이 동물로 하여금 파괴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게 해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쾌락은 쉽게 변질되기도 하고, 마약 중
독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살인적인 습관을 수반하기도 한다. 불행하게
도 쾌락에 대한 혐오는---어떤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발견되는---생명
에 대한 증오를 많이 닮아 있으며, 마약 중독 못지 않은 자기파괴적인
행동(고행.단식 등)의 동기를 부여한다.
 러나 기쁨과 쾌락이 분리시킬 수 없는 형태로 뒤섞여 있는 경우
도 있다. 그것은 바로 관능이다. 기쁨과 쾌락이 뒤섞여 있다는 점이
관능의 특색이다. 왜냐하면 성적 욕망은 타자에 대한 욕망이며,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식인 충동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살과 냄새
와 체액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분명히 식인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섹스가 이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곧 사디즘 속으로 굴러떨어
지게 된다. 그러나 관능이라는 이 파괴적인 열망은 창조적인 행동이기
도 하다. 그래서 성적 쾌락은 두 사람이 함께 구축하는 삶 속에서 활
짝 피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인
하여 예기치 않았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생활은 두
사람의 자질들을 단순히 한데 더해 놓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
큼 풍요롭다.
***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 그것
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
이 영광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는 창
조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영광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
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기쁨이 신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앙리 베르그송
                 -미셀 투르니에 <생각의 거울> 중에서-
		
출처 : -미셀 투르니에 <생각의 거울> 중에서-(시하늘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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