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부문 당선자· 童同 김하늬>
동화 같은 세상을 꿈꾸며
인터뷰: 함영연
동화 당선자 童同 김하늬(본명 김홍순)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서울과 부산이라는 거리 때문에 양해를 구했다.
다음은 전화와 메일을 통해 인터뷰한 것임을 밝힌다.
함: 김하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계몽아동문학회 17기 동화 쓰는 함영연입니다.
먼저 제1회 황금펜아동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김: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기도깨비와 밀곡령’이 선생님 작품이죠?
그때 참 감명 깊게 읽었는데 새삼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함: 기억해 주셔서 저도 고맙습니다.
선생님, 황금펜아동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김: 워낙 오랫동안 꾸어온 꿈이라 그런지 처음엔 저도 의외일 정도로 담담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번쩍 차리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생각하며 동네를 한바퀴 돌았죠.
함: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였는지요? 그 까닭은?
김: 동네를 돌면서 동화작가 김재원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어떻게 전해드릴까, 생각했죠. 선생님을 알게 되면서 동화를 알고 동화의 참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은혜가 참 깊습니다.
함: 그러셨군요. 선생님께서 황금펜아동문학상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김: 무엇보다 계몽아동문학회의 모든 작가 선생님들이 뜻을 모아 이 상을 마련하고 전 회원이 심사한다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설마 전 회원이 심사할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막상 그렇다는 것을 알고 어이쿠나, 싶었습니다.
또 한가지, 황금펜이 탐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왠지 그 펜이 옆에 있으면 글이 절로 쓰여질것 같은 환상이 들어서요. 동화는 환상의 문학인데 그 환상이 바로 옆에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멋진 일일까, 의기소침하고 힘들 때 그 펜이 나를 위로해주고 손 내밀어주겠지 혼자 상상했습니다.
함: 평소 계몽아동문학상과 계몽아동문학회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요?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요?
김: 막연히 계몽사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당선된 선생님들의 모임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여름세미나 자료집을 통해 여러 선생님들의 글을 접하게 되었고 계몽아동문학상에 당선된 훌륭한 작품을 대하면서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족 같은 분위기도 특별했고 무엇보다 쟁쟁하신 선생님들이 참 많이 계시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 선생님들이 모여 만든 상이라면 한 번 읽히는 것만도 대단한 영광이겠다 싶었습니다.
함: 아동문학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습니까?
김: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문학상과 기타 공모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자연스레 소설에 뜻을 두었습니다. 그땐 제가 참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하던 때였죠. 그러다 서른 즈음에 어떤 계기를 통해 제 마음이 한차례 정화되었습니다. 소설로 풀어내고자 했던 감정의 찌꺼기가 많이 떨어져나가고 정말 붙잡는 것이 하도 없었을 때, 턱하니 동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건 정말 놀랍고도 행복한 발견이었죠.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동화의 참 가치를 발견해 낸 제 안의 빛이 참 고맙습니다.
함: 작품을 쓰면서 기쁨이나 어려움을 느낄 때는 언제였나요?
김: 잘 쓰거나 못 쓰거나 내가 내 글을 쓰면서 큰 소리로 웃거나 눈물지을 때 가슴이 뛰고 정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아주 가끔이라서 탈이긴 하지만요.
쓰고는 싶은데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 때가 가장 힘듭니다. 미치죠.
함: 무척 공감이 가는데요. ‘무지개 다리를 타고 온 소년’을 쓰게 된 모티브는 무엇이었나요?
김: 뭔가 꼭 하나를 쓰고 싶은데 글감을 못 찾아 밤낮으로 고민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남쪽에는 새싹만 자라는 것일까?”라고 쓴 작품이 1위를 하고 제 작품이 2위를 하는 아주 기분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도 그 작품이 너무 좋아 필사의 노력으로 눈을 떠 제목만 휘갈겨놓고는 다시 잠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수첩을 펴놓고 그럼 남쪽에는 대체 무엇이 자란단 말이야? 생각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북쪽 아이들이 떠올랐고, 좀 더 접근이 용이한 탈북 소년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습니다.
함: 꿈이 대신 써준 셈이네요?
김: 그렇습니다. 제가 꿈에게 한 수 빚졌습니다. 이참에 그 꿈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겠어요. 꿈아, 고마워!
함: 꿈도 기뻐하겠는데요. 선생님은 글을 쓸 때 습관이나 징크스가 있나요?
김: 징크스는 없고 체질은 야행성입니다. 한창 몰두하고 있을 때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와 뱃속에서 밥 달라고 보채는 소리가 가장 겁납니다. 꼼짝 않고 잘 갇혀 있으며 좀 정물적입니다. 움직임이 거의 없죠.
함: ‘내 안에 자라는 동심’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김: 따로 동심을 키우진 않고, 그저 어릴 때의 그 동심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제가 동화를 쓰는 것은 바로 그 길로 되돌아가기 위한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주로 고학년 동화를 쓰는데 언젠가 유아 동화를 쓰고 싶습니다. 아주 짧으면서 그 속에 삶의 깊이와 철학이 담긴 유아 동화를 꼭 쓰고 싶고, 그럼으로 해서 자연스레 내 본래의 자리로 회귀하고 싶습니다. 아장아장 걷고 방긋방긋 웃는 아이들 마음 속엔 무엇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고, 또 부럽습니다.
함: 존경하는 선생님이나 감명 받은 작품이 있다면?
김: 현덕, 이주홍, 황순원, 이미륵, 정채봉, 권정생 선생님과 하이타니 겐지로, 미야자와 겐지, 다니엘 페나크, 코닉스버그, 베치 바이어스 등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렇게도 쓸쓸한 날이면 하루에 마흔 네 번이나 해넘이를 보았다는 ‘어린왕자’를 사랑합니다.
함: 아동문학에 대한 본인의 견해는 어떤가요?
김: 다른 문학 장르도 많은데 아동문학, 그것도 동화에 눈을 뜬 제 자신이 참 자랑스럽고 기특합니다.
언젠가 사이버아동문학관에서 임정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이제 우리 아동문학은 세계와 경쟁해야 할 때’란 말에 공감합니다. 아동문학 분야가 확대된 만큼 그 깊이가 날로 깊어지고 그 향기가 세계로 뻗어나가 모든 이의 가슴을 향기롭게 할 날을 꿈꿉니다.
함: 앞으로의 활동방향과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김: 일단 쓰고 있는 장편을 마무리짓고 다음 것은 다음에 생각하겠습니다. 머리가 나빠 한번에 두 가지 일은 못 하니까요.
뜻한 바대로 이루어지면 차차로 저학년 동화, 유년 동화로 옮겨가 언젠가는 단 한 줄로 된 동화나 글자 없는 그림책에도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아마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야 말이죠.
궁극적으로는, 동화와 동시가 없어도 모두의 마음이 동화 같고 동시 같아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야말로 동화 같은 세상이요.
뭐라 말해도 결국 이 한마디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동화가 참 좋고, 그 좋은 것을 하도록 길을 열어준 계몽아동문학회의 여러 선생님들이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다는 것입니다.
첫 회 수상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소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함: 지금까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쓰시기를 기원 드리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글에 대해 고뇌한 흔적이 느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건 우리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김하늬 선생님의 건필을 빈다.
<당선소감>
당선소식을 듣던 날은 생일 전날 밤이었습니다.
서른 몇 해 전 이 세상에 태어난 날,
다시 작가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신 계몽아동문학회의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 선생님들이 모여서 제정한
황금펜아동문학상 첫 회 수상자인만큼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이 크다는 것을 느낍니다.
보내주신 성원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김하늬로 살겠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고 앙드레 말로가 말했다는데 그 말의 진실성을 믿습니다.
작품뿐만이 아니고 삶 자체가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가 될 수 있도록
힘써 가꾸어 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동화 당선작>
무지개 다리를 타고 온 소년
童同 김하늬
시베리아 고원을 넘어온 차고 매운 바람 한 줌이 드넓은 만주벌판에 휘몰아칩니다.
비좁고 어두컴컴한 시장 한 구석에는 칼날바람이 몰고 온 비닐이며 신문조각, 검불들만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습니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한 작은 시장입니다.
아직 아침이 밝아오기에는 채 이른 시간, 두꺼운 호피무늬 털모자와 장갑을 낀 사람 하나가 골목 너머로 총총 사라집니다. 그 길을 따라, 자신의 키 만한 대빗자루를 들고 조심조심 비질해 오고 있는 소년이 있습니다. 깡마르고 왜소한 몸집에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이 빨갛게 얼었습니다.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소년은 이쪽 길에서 저쪽 한길까지 말끔히 비질합니다. 그리고 얼음이 두껍게 언 빙판 길에 모래흙을 덮기 시작합니다.
영하 30도를 훌쩍 웃도는 연변은 마치 거대한 얼음나라 같습니다. 기껏 시장을 찾은 손님들도 좀체 호주머니에서 손을 뺄 줄 모릅니다. 그러다 얼음장 위에 엉덩방아를 찧기라도 하면 어쩌려는지, 소년은 얼음길 위에 모래흙을 두둑이 덮습니다.
“얘, 참 바지런도 하누나.”
시장 입구에 바투 붙어선 평양냉면 전문점 ‘일송정’의 주인 아주머니가 소년을 손짓해 부릅니다.
“날래 들어와 아궁이에 불부터 좀 넣어라. 인차(이제) 손님들도 들이닥칠 터인데 구들장이 뜨끈해야디.”
소년은 쓰레기를 담은 봉지를 들고 서둘러 부엌으로 뛰어듭니다. 성냥을 긋는 소년의 손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바싹 마른 떡갈나무 이파리에 겨우 불을 붙인 뒤, 솔가지를 툭툭 꺾어 불을 살립니다.
“모처럼 남쪽에서리 단체 손님이 오는 거인데.”
“남쪽, 어디메 말입네까?”
소년의 눈이 반짝 빛납니다.
“서울에서리. 서울이라믄 평양에서도 지척이디 않네?”
소년은 부지깽이로 불을 쑤석거립니다. 붉은 불꽃이 별빛처럼 후루루 피어납니다.
“학교 선생님네들이 방학을 맞이해서 무슨 답사를 왔다지비? 돌아가기 전에 우리 일송정 랭면 맛이래 꼭 보고 가야 한다면서리.”
소년은 아궁이 가득 장작개비를 모두어 놓고, 불에 달군 부지깽이로 ‘평양’이라 써봅니다. 그리곤 그 옆에 ‘서울’이라고 쓴 뒤 얼른 지워버립니다.
“고저 랭면은 뭐니뭐니해도 육수 맛이 제일이디. 국물이 푹 우러나도록 불 좀 잘 넣으라우.”
행주로 가마솥 주위를 훔쳐내며 아주머니가 주의를 줍니다. 가마솥에는 어제부터 끓이기 시작한 꿩고기 국물이 한참 우러나고 있습니다.
드르륵! 덜컹, 덜컹!
골목을 빠져나온 바람이 사납게 식당 문을 뒤흔듭니다. 소년은 무엇에 놀란 듯 흠칫, 뒤돌아봅니다. 아직 손님들이 올 시간은 멀었는데, 심술궂은 바람이 연해 장난질을 하고 있습니다.
소년은 문득 두만강을 건널 때 휘몰아치던 강바람이 생각나 작은 몸을 오소소 떱니다. 소년이 국경을 넘은 지도 어느덧 4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소년은 중국 공안(경찰)의 눈을 피해 한뎃잠을 자며 구두닦이, 심부름, 구걸 등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소년은 퍽 운이 좋은 편입니다. 함께 강을 건너던 동무 중 한 명은 급류에 휩쓸려가고, 세 명은 다시 북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소년이 이곳 일송정의 조선족 아주머니를 만난 건 지난 해 겨울이었습니다. 소년은 시장 한 모퉁이에서 꽃을 팔고 있었습니다.
“얘, 그 꽃 한 송이 얼마간?”
“콜록, 콜록! 오, 오 원이라요.”
터져 나오는 기침을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소년은 간신히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습니다.
“한 송이에 오 원이라믄 너무 헐하지 않네? 고렇게 해서 밥은 먹고 사네?”
소년은 흘끗 아주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아무도 소년에게 그런 말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그렇디요. 그렇디만…….”
숫기 없는 소년이 말을 더듬고 있는 사이 아주머니는 소년의 손바닥에 백 원을 놓아주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손바닥에 놓인 백 원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아주머니는 소년의 때에 절고 추위에 갈라터진 손등을 눈 여겨 봐두었습니다.
며칠 뒤, 소년은 잠복 중이던 공안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뛰어든 곳이 바로 일송정 식당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단박 꽃 팔던 소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곤 공안으로부터 몸을 숨겨주었습니다. 탈북 소년을 숨겨주다 발각되면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도 꽁꽁 숨겨주었습니다.
“고맙습네다! 이 은혜 잊디 않갔습네다!”
소년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하자, 아주머니가 가만히 소년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오갈 데 없으면 함께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의지가지 없는 혼잣몸이니 함께 등 비비고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얘, 장작개비 두어 개만 더 넣으라는데 무슨 생각을 고렇게 재미나게 하고 있네?”
냉면에 얹을 고명을 준비하던 아주머니가 통박을 줍니다. 소년은 얼른 잘 마른 소나무 장작을 아궁이에 집어넣습니다. 안 그래도 불빛에 단 소년의 얼굴이 잉걸불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치익, 푸! 치이익, 푸우!”
어느 새 가마솥에선 하얗고 몽글몽글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뒤이어 구수한 국물 내음까지 퍼져 나와 좁은 부엌을 훈훈하게 달궈 놓습니다.
“얘, 이 맛 한번 보라마.”
아주머니가 국자 가득 국물을 떠줍니다.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를 것 같은 진국입니다.
“매우 맛납네다!”
소년의 말에 아주머니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커다란 그릇에 육수를 퍼담습니다.
호시탐탐 문 안을 엿보고 있던 칼바람이 쌩 불어와 뜨거운 육수를 차게 식혀 놓습니다.
“어이, 춥다 추워! 이런 추위는 배꼽 빠지고 처음일세. 안 그런가?”
“허허, 참게. 그 악명 높은 시베리아 벌판을 건너온 바람 아니겠나!”
마침내 손님들이 도착했나 봅니다.
“어서들 오시라요! 어서 이 온돌방으로. 방바닥이 아주 절절 끓습네다.”
반갑게 손님을 맞는 아주머니 뒤에서 소년도 꾸벅, 인사를 올립니다.
“허허, 재작년에는 보이지 않더니 그새 아주머니께서 아드님을 하나 두셨나 봅니다.”
“아이구, 손님네두! 하기야 이젠 자식 삼아 살아야디요. 다 같은 동포니낀.”
“그럼 혹시, 북에서?”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년에게 모아집니다.
“좀 조용히 해 주시라요. 발각되면 큰일납네다.”
“거 참, 이젠 북쪽의 식량 사정도 많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몇 년 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없는 사람들한테는 늘 그게 그거디요, 뭘.”
“남쪽의 아이들은 지금 너무 잘 먹어서 소아비만이다 소아성인병이다 해서 난리들인데…….”
“그러게나 말일세. 북에선 먹을 게 없어 탈출하고, 남에선 조기유학이다 이민이다 해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형편이니. 그것 참!”
갑자기 식당 안의 공기가 서늘해집니다.
“기레, 이번에는 어디를 둘러보고 왔습네까?”
아주머니가 얼른 손님들에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며 묻습니다.
“어제와 그제는 고구려 유적과 항일운동 발자취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백두산엘 갔다오는 길입니다. 어쩐지 이번엔 천지가 참 고요합디다. 하얗게 눈 덮인 천지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불쑥 눈물이 납디다. 그래 함께 손을 잡고 울고 웃다가 통일 노래 한 소절씩 하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그러셨습네까? 천지 물이 왜 항상 넘쳐나는가 했더니 바로 손님네들 눈물 때문이었습니다래!”
아주머니의 말에 모두들 그렇다는 듯 껄껄 웃습니다. 모처럼 일송정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이윽고 아주머니가 정성껏 준비한 냉면을 내갑니다. 소년은 수저와 육수 주전자를 들고 뒤따릅니다.
“이름이 무엇이냐? 고향은 어디고?”
서울 손님이 묻습니다.
“리용수라 합네다. 함흥에서 왔습네다.”
“고생이 많겠구나. 하지만 부디 꿈을 잃지 말거라. 꿈을 갖고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게다.”
“에구, 좋은 날이라믄 고저 하루바삐 통일이 되거나 남쪽 땅으로 넘어가는 거인데, 그거이 호락호락하지 않단 말입네다.”
옆에서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듭니다.
“그렇지요. 쉽지 않지요. 하지만 희망을 가져야지요. 우리 모두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르륵! 덜컹, 덜컹!
문 밖에선 연신 한 겨울 바람이 휘몰아쳐 오고, 뜨끈한 온돌에 앉은 손님들은 춥다춥다 하면서도 살얼음이 동동 뜬 냉면을 맛나게 들이킵니다.
“어이, 시원타! 이보우, 아주머니. 우리가 이 맛을 잊지 못해 이 추위에 예까지 찾아왔지 뭡니까?”
“감사합네다. 보답으로 제가 왕만두 한 접시 올리갔습네다.”
아주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손님상에 내놓습니다.
손님들은 무척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아이들처럼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를 합창하기도 합니다.
“이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가았어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점점 사위어 가는 불꽃을 다독이며 소년은 저도 모르게 손님들의 노래를 따라해 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노래하다 돌아갈 집이 있고 반겨줄 식구들이 있는 손님들은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소년의 부모님은 지금 차가운 북녘 땅에 묻혀 있습니다. 아버지는 오래 전 장티푸스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두 동생은 굶어 죽었습니다. 원산에 외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시지만 소년을 거둘 형편은 못됩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꼭 자유대한의 품에 안기라”고 했습니다. 가서 통일조국의 참일꾼이 되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지금 어떻게 해야 그 품에 안기는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얘! 고렇게 부지깽이를 놀리다간 종내 이부자리에 오줌 쌀라!”
부산하게 손님방을 오가던 아주머니가 소년의 뒤통수에 꿀밤을 먹입니다. 그리곤 웬일인지 찬장 깊숙이 아껴 두었던 들쭉술을 들고 나갑니다.
아주머니는 모처럼 찾아온 남쪽 손님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무슨 수가 없겠습네까? 저 아이래 한국으로 무척 가고파 하는데 말입네다.”
“글쎄요, 요즘은 워낙 국경 수비가 삼엄해놔서 말입니다. 하지만 힘닿는 데까진 노력해 보지요. 우선 영사관과 몇몇 단체 쪽에 문의해 보는 것이 좋겠군요.”
아주머니와 손님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부엌으로 쏠립니다.
“그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들 서두르자구!”
손님들은 벗어두었던 외투를 걸치고 황급히 문 밖으로 나섭니다.
“허, 참! 날씨하곤. 남쪽에선 한겨울에도 개나리가 지천인데 말야.”
부산이 고향이라는 손님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바람의 뒤꽁무니에 대고 넋두리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지내(아주) 춥지는 않은 편인데, 그런데 고거이 참말입네까?”
“말도 마시게. 그저 햇볕이 좀 따숩다 하면 그것들이 툭툭 꽃망울을 펼친다네. 하기야 이제 곧 반가운 매화가 피는 봄이 올 테지만.”
“우리 옌볜 사람들한테는 고저 꿈같은 얘깁네다. 그나저나 꼭 좀 알아봐 주시는 거디요?”
“물론이지요, 아주머니. 그럼 잘 먹고 갑니다. 얘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꾸나!”
손님들은 한차례씩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이내 바람 찬 골목길로 사라집니다.
그날 밤, 소년과 아주머니는 밤이 깊어서야 식당 옆 문간방에 고단한 몸을 뉘였습니다.
“아주마니, 남쪽에서리 정말 꽃이 피었을까요?”
“낸들 알갔니? 피었다니 피었갔디. 에구, 따뜻한 남쪽에서는 봄이 지척이라지만 우리네는 서로 의지하면서리…….”
아주머니는 엷은 한숨을 내쉬며 소년의 어깨 위로 두툼한 솜이불을 다독여 줍니다.
“근데 아까 손님들한테 한 말이 정말입네까?”
“뭐이 말이가?”
“우리가 다 같은 동포라는 거이 말입네다.”
“고럼. 지금은 한국이니 북한이니 조선족이니 그러디만 옛날엔 모두 이 만주벌판을 말달리고 호령하던 한 핏줄이었디. 이 길림성만 해도 예전엔 다 고구려 땅이었지 안핸?”
“정말입네까?”
소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그것도 몰란? 저쪽 집안시에 올매나 크고 웅장한 광개토대왕릉비가 서 있다고야.”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오래 묻어두었던 가슴 속 이야기를 끄집어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 만주 땅으로 이주해왔던 가난한 선조들의 이야기며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그리고 몸은 비록 중국에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조선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득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살얼음 밑을 흐르는 봄물처럼 조란조란 들려줍니다.
그러다 깜박했다는 듯 벌떡 일어나 선반 위에서 곱게 싼 꾸러미를 꺼내 놓습니다.
“얘, 용수야! 일어나 이것 한번 매 보라마. 벌써 메칠 전에 장만해 둔 거인데.”
아주머니가 내민 것은 뜻밖에도 반질반질 윤이 나는 새 책가방입니다.
“봄이 오면 우선 시내에 있는 조선족 소학교라도 다니라마. 가서 우리 민족의 역사도 배우고 중국어도 날래날래 익혀 두어야디.”
“…….”
“와 말이 없네? 많이 배워야 통일조국의 일꾼도 되고, 또 한국에 가서도 재미나게 공부할 수 있지 않갔네?”
소년은 왈칵 목이 메입니다. 그저 굶주림이나 면해 보자고 그 차가운 두만강을 건너온 것인데, 아주머니가 소년에게 고운 무지개 다리를 놓아주고 있습니다. 잊고 있었던 꿈을 되새겨 주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눈물이 글썽한 소년의 등을 한 번 다독여주곤 자리에 눕습니다.
“어디에 살던 우리는 한 형제디. 한 핏줄이디. 고걸 잊어버리지 말라우…….”
잠꼬대하듯 중얼거리며 아주머니는 스르르 단잠이 드십니다.
소년은 잠든 아주머니 얼굴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살그머니 책가방을 끌어안았습니다.
가슴이 뭉클, 뜨거워집니다.
소년은 더운 가슴으로 ‘동무들아!’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북쪽의 동무들아! 남쪽의 동무들아! 나도 봄이 되면 공부하러 간다아!’
가만히 되뇌어 보았습니다.
소년은 책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아주머니 곁에 나란히 눕습니다.
남쪽 어딘가에 피어있다는 개나리꽃이 떠오릅니다.
정말 그 노란 꽃망울이 터졌는지, 봄은, 기다리는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 것인지,
소년은 어느새 아주머니가 놓아준 고운 무지개 다리를 타고 꿈나라로 갑니다.
새 가방 메고 학교에도 가고, 이 한 겨울에도 꽃 피고 새싹 돋는다는 따뜻한 남쪽나라에도
가봅니다.
얼어붙은 강도 건너지 않고 가시철조망도 넘지 않고 나비처럼 너울너울 날아갑니다.
(*)
출처 : 제 1회 황금펜 아동문학상 동화 당선 작품
글쓴이 : 凡 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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