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화산 유적- 죽어서도 놓지못할 손
그렇게 서로를 꼬옥 안아주었다고한다.
서로의 영혼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울림이 주변을 둘러싸고,
한사람의 절실함이 아닌, 서로의 절실함이
이렇게도 간절하여
서로를 놓지 못한다고 한다.
죽어서도 놓지 못할 손이 정녕 있었다고 한다.
죽어서도 놓지 못할 마음이 정녕 있었다고 한다.
몸을 태우는 용암의 그 뜨거움에도 서로를 놓을수 없었다고한다
-폼페이 화산 유적-
번영을 누렸던 도시 폼페이가 화산재 밑에 묻히던 날
하늘에서 본 봄페이 유적 지금은 약 5분의 4가 발국된 상태이다.
사진 오른쪽 끝에 보이는 직사각형의 공간이 포름의 흔적이다.
고대 로마인의 생활을 알려 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베수비오 화산은 이탈리아 나폴리 만 해안에 우뚝 솟아 잇는 화산이다. 폼페이는 이 화산의 남쪽에 있었다. 베수비오 화산은 기원전 8세기에 대분화를 일으킨 후, 휴식을 취하고 잇는 것처럼 보였다.
폼페이를 멸망시킨 대폭발이 일어난 것은 기원 79년 8월 24일 정오 무렵이다. 폭발은 갑자가 일어났지만, 8월 중순부터 작은 지진이 계속 일어나는 등 폭발 전부터 몇 가지 징조가 있었다. 화산의 폭발 정에는 반드시 많은 소지진이 먼저 일어난다. 그것은 마그마가 지표로 향해 상승해 오기 때문이다. 베수비오 대폭발 때 폼페이와 함깨 헤르클라네움, 스타비아에 등 나폴리 만 해안의 도시가 멸망하였다.
폼페이의 마지막 날은 그 때 당시 이 도시에 살고 있었던 소(小)플리니우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 61∼114)가 역사가 타키투스(C. Tacitus;55 ? ∼120 ?)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 나타나 있다. 소플리니우스는 나폴리 만의 입구에 있는 도시 미세눔에 살고 있었다. 이상한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베스비오 화산 위쪽에 나타난 것을 처음으로 본 사람은 소폴리니우스의 어머니였다. 그것을 본 숙부 대(大)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23∼79)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갤리선(Galley船; 옛 그리스·로마의 군함)을 이끌고 베수비오 산 기슭으로 출항하였다. 그러나 대플리니우스는 독성의 화산 가스를 들이마셔서 결국 죽고 말았다. 한편 소플리니우스는 어머니와 함께 짐파차를 타고 도시를 탈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짐마차는 평탄한 길을 달리고 있는데도 계속 덜컹덜컹 흔들이고, 바다에서는 조수가 빠지고, 화산재가 쏟아지고, 등 뒤에서는 검고 두터운 안개가 추격해 오고 있었다.
베수비오 화산의 대분화 때에는 폼페이에 대량의 화산재와 화산력이 쏟아져 내렷다. 맹독의 화산성 가스가 거리를 떠돌고, 화쇄류(火碎流; 화산에서 방출된 파편 모양의 고체 물질과 화산 가스의 혼합물이 고속으로 사면을 흐르는 현상)도 발생했던 것 같다. 죽은 사람의 수는 약 2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산재와 화산력이 3∼4m나 쏟아져 내려 거리를 완전히 덮고 말았다.
화산재에 파묻힌 폼페이가 다시 지상에 나타난 것은 16세기 말의 일이다. 1592년 폼페이 위를 가로지르는 모양으로 운하를 건설하던 중에 건물과 그림이 발견되었다. 최초의 본격적인 발굴은 1861년에 이탈리아의 국왕 빅토르 에마누엘 2세가 임명한 주세페피오레루리의 지휘 아래 실시되었다. 그 후 발굴은 후계자로 인계되고, 지금은 폼페이의 약 5분의 4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이다.
발굴된 폼페이의 거리는 한 변이 약 2km인 사각형 모양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리의 서쪽에 치우친 부분에 포름(공동 광장)이 있고, 그 위위에 신전과 공설 시장, 시의 관공서 등이 있다. 포름은 도시의 종교·정치·경제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로는 모두 포장되어 있으며, 차도와 보도가 구분되어 있었다. 거리의 사거리 가운데에는 공동 수도가 있다. 수도의 연관(鉛管;수도물·가스 등을 전달하는 데 쓰는 관)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수도는 집집마다 들어갔던 것 같다. 또 공중 목욕탕과 체육관, 대극장, 소극장 등의 극장도 있다. 거리의 동쪽에는 1만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도 있다. 또 빵집의 화덕에는 갓 구워 낸 빵이 올려져 있고, 선술집의 술독에는 포도주가 저장되어 있으며, 책상 위에는 동전이 흩어져 있었다. 인간이나 동물의 시체는 화산재 안에 공동(空洞;아무 것도 없이 빈 것)으로 남아 있었다. 이 공동에 석고를 주입한 다음 화산재를 제거하니 고통의 흔적이 생생한 시체의 석고가 나타났다.
폼페이의 유적은 번영의 절정에 있던 도시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고대 로마 인의 도시 생활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 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파일링크 : | %C0%CC%B0%CD%C0%CC%BB%E7%B6%FB%C0%CC%B4%D9(품페이 화산유적).jpg |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카트리나 & 리타 (0) | 2005.09.30 |
---|---|
[스크랩] 아름다운 수생식물 보실래요?( 물사마귀,물달개비,물옥잠) (0) | 2005.09.29 |
[스크랩] 발레의 아름다운 모습 (0) | 2005.09.15 |
[스크랩] 주부들이 꼭 알아야할 약과 식품의 궁합 (0) | 2005.09.14 |
[스크랩] 걷기 시리즈 1 (0) | 2005.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