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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교와 다른종교에서 말하는 구제법의 다른점

tlsdkssk 2005. 9. 10. 10:54

 

 

종교의 생명은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중생을 섬기고 보살피는 정신이다. 자신이 믿는 신을 섬기는 이만이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정신은 바로 그 종교가 갖는 자비의 폭이 좁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을 섬기지 않거나 신을 모르는 사람,또 지옥이나 짐승의 세계에서 괴로움을 받는 중생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수 있을까?자비심을 귀히여기는 이라면 이같이 묻지 않을수 없다.

 

1. 다른 종교의 구제법

 

다른  종교란 불교밖의 종교로, 신(神)을 섬기는 종교를 말한다. 신을 섬기는 종교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 섬기는 일신교(一神敎)와 여러신을 섬긴다는 다신교(多神敎)가 있다.

신을 섬기는 종교의 공통점은 자신이 섬기는 신이 아니면 모두   부정해 버린다는 점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믿는 신과 교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가르친다. 역사상 일어났던 수많은 종교간의 분쟁과 전쟁이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자신의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사악 하다는,신을 섬기는 종교의 가르침은 중생을 구제 하기에 앞서 파멸에 빠뜨리기 일쑤다.

이와같이 신을 섬기는 종교는 그 가르침이 가진 한계 때문에 사람을 구하고 돕는다는 생각이 넓지 못하고 구제할 대상도 신을 맞는 이들로 한정 될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러한 구제법이 "신의뜻"이라 믿기에 "따르는 이는 살것이요 따르지 않는 이는 죽을 것 이다"는 그릇된 가르침을 불멸의 진리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종교의 생명은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중생을 섬기고 보살피는 정신이다. 자신이 믿는 신을 섬기는 이만이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정신은 바로 그 종교가 갖는 자비의 폭이 좁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이다.

신을 섬기지 않거나 신을 모르는 사람,또 지옥이나 짐승의 세계에서 괴로움을 받는 중생들은 어떻게 구원 받을수 있을까?자비심을 귀히 여기는 이라면 이같이 묻지 않을수 없다.

 

2.불교의 구제법

 

불교는 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다.

인과법을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 깨우치는  일을 삶속에서 이루어내는 길이요,가르침이 불교다.

물론 불교에서도 신과 천국에 매달리지 않고 사는 것을 더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긴다. 삶의 가치를 하나라고 고집할때 삶을 이어주는 유기 관계는 어김없이 깨지고 그 본디 생명력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신을 섬기든 섬기지 않든 그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고집함이 없이 사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런 저런 신을 섬기는 이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 왔을때 삶의 진실을 말씀 하셨을 뿐 섬기는 신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바른 가르침이란 주의(主義)가 아니라 삶의 진실에 눈을 뜨게 하는 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바로 삶의 진실에 눈을 뜨는 일이다.

 

깨달음이란 덧 없음과 무엇이 무엇이 아님을 밝게 몸소 겪는 일이다.

선과 악, 참과 거짓, 신과 사람의 덧없음, 그것이 그것 아님을 밝게 알 때만 끝없는 자비심이 피어난다.

그래서 깨달은 이는 종교나 중생의 모습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행복과 기쁨을 공양(共養)하는 것이다.

악마까지도 행복한 존재가 되어야 나도 행복하겠다는 마음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불교의 독특한 정신이라 하겠다.

 

신을 섬기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악마는 선과 악이 맞섬을 상징한다. 그런 종교에서는 또 사람은 죄악에 물든 존재라 규정한다.신을 믿으면 죄악에서 벗어날수 있지만 악마를 따르면 영원히 타락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신을 내세우는 종교에는 인류의 시작부터 악마가 등장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의 죄악을 설명할수 없을 뿐더러 전지전능한 신이 왜 완전한 사람을 창조하지 못했나 하는 점을 설명할수 없기 때문이다

 

죄악은 참으로 있는것이 아니다. 참으로 있는것이라면 그것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 죄악은 삶의 현상이요. 삶의 사건이다 현상과 사건은 참으로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예측 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결정짓는 힘을 업(業)이라 하는데 이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겪는 선악 갈등의 괴로움은 업기운 (業氣運)의 맑고  어두움 가볍고 무거움에 달린 것 이지 신이나 악마의 존재와는 관계가 없는 것 이다.

 

아무튼 크게 깨달은 이는 삶의 진실에 들어 맞게 살뿐 틀 지워진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깨달은 이, 곧 부처님이나 보살들은 꼭 착하고 좋은 모습만으로 악인을 구제 하지는 않는다.

악인의 모습으로 착한 사람을 제도 하기도 한다 . 불교는 조직으로 힘을 삼는 종교가 아니라 끝이 없는 자비심으로 힘을 삼는 종교다.  불교는 어떤 종교를 따르는 중생이든 어떤 모습을 한 중생이든 그들이  괴로움에 빠졌을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나고 죽는 윤회의 흐름을 길이 쉴수있게 도와주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조직이나 단체를 귀히 여기지 않는다. 삶의 진실에 눈을 뜨고 업의 기운을 바꾸는 일을 중히 여길 뿐 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배울수 있고 또 마땅히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 이것이 불법(佛法)이다.

우리가 불법을 가벼이 여기면 헤아릴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괴로움은 더욱 커지고 길어질 것 이다.  그러므로 참된 불교인이라면 순간 순간 중생의 괴로움을 잊지 말아야 하고 기회를 찾아 인연을 만들어 그들을 이끌면서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업이 무거워 진실성과 조화성을  나몰라라 하는 삶의 방식에 깊이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생을 바르게 제도 하려면 너나 가릴것 없이 그 어떤 보상 조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중생의 삶을 당장 바꾸어 줄수 없더라도 바른 가르침이란 반드시 꽂을 피우기 마련인 죽지 않는 빛과 생명의 씨앗임을 확신 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의 구제 정신이다. 특히  중음신 구제법은 의식이 아홉배 맑아져 지난일을 환히 기억할수 있는 중유기에 든 중생을 위한 가르침이다. 그런 점에서보면 그 중요함과 뛰어난 공덕이 말로 다 할수 없는 것이다 

 

 

출처 : 불교와 다른종교에서 말하는 구제법의 다른점
글쓴이 : 진여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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