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오랜 시간 숙고하다가 결국 본지 주간을 내려놓기로 했다. 에세이스트 15년사를 꼭 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 아쉽다. 차근하게 돌아볼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참 좋겠는데, 이제 떠나버리면 오히려 잊기 위해 노력하게 될까봐 그것이 두렵다. 어릴 적부터 나는 드러나는 것에 늘 공포가 있었고 숨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편안했다. 누구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어떤 사상이나 이론을 만들어낸 적 없고 그럴 자신도 없다. 다만 견고한 사상이나 이론의 틀 앞에 마주서면 묘한 거부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본지 편집 일을 하며 보낸 시간은 누구도 견고해지지 않길 기도하는 시간에 다름 아니었다. 확신을 내려놓고 굳어지지 않기 위해 흔들리는 것, 그게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문학관이다. 창간 맴버라고 해도 내가 본격적으로 편집일을 도맡은 것은 2007년 1월부터였으니 만13년이다. 기억력이 흐려졌고 머리칼은 반백으로 성글어졌으며 눈은 침침해졌다.
그럼에도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듯 생생한 기억들로 가득하다.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치 내겐 소중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일 터이다. 염라대왕께서 뭘 하다 왔는고, 물으시면 『에세이스트』 만들다 왔습니다, 라고 대답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아, 나는 심한 매질을 당할 것 같다. 실수로 점철된 시간이었으니까. 내게 변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꼭 이렇게 말할 터이다. 그곳에서 그 일을 하면서 저는 처음으로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제게 다가오는 모든 분들이 자기 생 안에 우주를 품고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벅차서 맨날 길을 잃었던 것이니 용서하십시오.
사람을 만나는 일에 익숙치 못한 나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날마다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다. 나는 내가 그저 아무 색깔도 입혀지지 않은 순전한 사람이기를 소망했다. 사람의 자격으로 사람을 만나길 소망했다. 그러나 점점 나는 사람이 아닌 의자가 되어가고 있었고, 의자에게 부과되는 수많은 요구와 의무가 버거웠다. 이제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작가로 돌아가려 한다. 글을 통해 다시 나의 스승님들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평생 스승을 찾아 헤매었으나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을 한탄해왔다. 그러다 기운이 진해서 주저앉을 즈음 막 상경한 김종완이란 시골 양반을 만났다. 처음 선생께선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러 왔다고 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당신보다 몇 살 위인 줄 알았는데 외려 두 살 아래라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고 이크 늦었구나, 큰일났다! 서둘러 상경했다는 말에 나는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까지 박원순이란 인물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날 늦은 밤 전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거렸다. 돈키호테의 유쾌한 귀환이란 생각이었다. 심심한 세상에 저런 사람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아. 누구는 부러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오두막에 살며 세상을 걱정하는 문자 몇 자로 온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데, 별로 벼려지진 않았지만 문자 몇 자 들고 세상을 바꾸어보겠다고 도시로 돌아오는 이 하나쯤 있다고 이상할 것도 없잖아. 당시까지만 해도 나에게 문학이란 미사일 앞에 석촉(石鏃) 같은 것이었다. 문학 따위가 이 복잡무한의 세상을 어떻게 바꿔? 코웃음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의 교실에서 가장 성실한 고정 멤버가 나였다. 이듬해 선생은 본지를 창간했고 이미 선생의 신도 비스무리하게 되어버린 나는 적극적으로 그 일을 도왔다. 공연히 비장한 선생의 수많은 선언들을 실실 비꼬면서도 실은 선생의 꿈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도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쩌면 꿈이란 것을 거의 한번도 꾸어보지 못 한 나로선 그 비장함이 신선해서 은근슬쩍 편승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맞다. 나의 유일한 꿈은 편승이었다. 현명한 사람 곁을 맴돌며 거드는 척하다가 그가 날아오를 때 그 날개 위에 올라타보는 것(아, 그러려면 한없이 작아져야 하는데). 그러면 통 모르겠는 이 세상이 조금 보이려나 했던 그 심보가 ‘평생 스승을 찾아 헤맸다’는 말로 둔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스승을 못 만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승을 맞지 못했다는 것을 김종완 교실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본지 편집 일을 맡아하면서 비로소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게으름이고 자폐증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교만한 자가 게으르고 교만한 자가 자기 문을 닫는다는 것도 눈치챘다. 교만은 눈과 귀를 닫는 일. 나의 눈이 멀었고 귀가 닫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본지와 함께한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마지막 편집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작가들과 독자들 모두가 ‘눈 멀고 귀 먹은 채 게으름에 빠져있는 나’를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주신 스승들이었음을 절감한다. 자폐적인 내게는 통 안 맞는 직무였지만, 너그러이 감싸안으며 사랑해주신 에세이스트 회원님들과 독자들께 큰절 올린다.
1. 문제작가 신작 특집 : 강대선 선생을 모셨다. 이런저런 잡념으로 우왕좌왕하다가 실은 이번 특집작가를 챙기지 못했고 부랴부랴 강대선 선생에게 떼를 썼다. 이미 청탁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빨리 신작 5편을 보내달라고. 너그러운 강 선생은 그저 웃었고 거짓말처럼 일주일 후에 신작 5편을 보내주셨다. 준비된 작가인 줄 잘 알고는 있었지만, 꿈결에 금덩이를 주었는데 깨어나 보니 여전히 손바닥에 금덩이가 놓여있는 기분이었다. 강대선이 함께하는 『에세이스트』는 오래도록 탄탄대로일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안다. 우리에겐 수많은 강대선이 있다는 것을.
2.. 중편 수필 : 송이순, 변우연 두 분께서 중편 수필을 집필해주셨고 이찬웅, 엄기백 두 분의 글은 지난 호에 들어온 것을 2회에 나눠 싣는다. 중편 수필에 대하여 독자의 평가가 최근 조금 냉정해졌다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나는 한 편의 수필이 한 권의 책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사유란 단순명료하게 끊어지는 고체가 아니고 한 순간 반짝하는 스파크일 수도 없다. 한 생각 속에 그의 전 생애가 집적되는 바, 어찌 모든 이야기가 짧고 명료하게 구획정리될 수 있단 말인가. 긴 글은 싫어요, 지루해요,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혹시 우리가 효과와 형식에만 지나치게 매몰된 것은 아닐까 하는 서글픔이 일기도 한다. 빼어난 문장가라면 장강처럼 유려한 문체로 심장한 의미들을 다층화할 것이다. 그런 글을 지루하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참을성이 없거나 변하지 않으려고 자기 문을 닫아버린 사람일 터, 해결되지 못 할 슬픔이다. 누문으로 버벅대며 이야기를 종횡으로 오가기만 할 뿐 끝을 못 내는 글도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단숨에 그를 폄훼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말더듬이나 느릿느릿한 말투의 사람이 더 깊고 절실한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대체로 재미가 덜하다. 사나흘에 읽어야 할 책을 한 시간 반의 영상으로 압축한 결과이고 내면의 풍경을 누락시킨 결과이다. 속도가 지배하는 시대지만 그 속도와 빠른 성과에 저항하는 것 또한 예술이며 문학일 터. 수필에서 긴 글이 유행할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나는 한 편의 수필이 한 권의 책이 되는 때가 수필의 정점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15년을 버텨왔다. 결국 한 권도 못 썼지만 아직도 꿈은 내려놓지 못 했다. 중편을 써주신 네 분께 감사드린다.
3. 연재 : 이병용, 이호철, 유기웅 선생께 연재를 마무리해달라는 편지를 10월 어느 날 썼던 것 같다. 의미 있는 연재였고 덕분에 본지가 결이 다양한 층위를 구성할 수 있었다. 원고료도 못 드리는데 좋을 작품을 때에 맞춰 지극한 정성으로 집필해주신 님들께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권은민, 김영란, 홍성담의 연재는 계속될 것이고 김창규 시인의 연재를 이번 호부터 시작한다. 연재 글은 가능하면 기록적 의미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발행인의 의지의 반영이다. 발행인께선 당신의 전부를 바쳐서 만드는 잡지인데, 연재를 선택하는 권한 정도는 그분께 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4. 신인상 : 김정윤, 정원국, 최미자, 최병란 네 분이 선정되었다. 소중한 탄생이다. 본지는 함께함으로써 가족이 된다고, 그래야 한다고 나는 늘 호소해왔다. 가족은 서로에게 사랑의 의무를 기꺼이 짊어지는 관계. 내가 문학공동체라는 사회학적 용어보다 의도적으로 ‘가족’이라는 용어을 씀으로써 일정 부분 추상성을 가미한 것은, 문학 이전에 신뢰와 사랑을 의무화하고 싶었던 소망의 발현이었다고나 할까. 우열이나 귀천이나 빈부나 노소나 피부 빛깔, 머리색깔, 성별의 분별이 사라지고 오직 사람으로서 사람을 만나는 소중한 공간을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 부러울 게 무언가. 등단하시는 분들께 부탁드린다. 이곳에 사람,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에 맞서 싸우던 모든 갑옷과 칼을 내려놓으시고 맨 몸으로 오시라. 사람으로만 오시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부딪치며 닳아지면 사랑이 되리니, 사랑을 이루기 위해 오시라.
88호 월평은 김종완 발행인의 개인 사정으로 부득이 다음 호에 통합하여 싣는다.
―주간 조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