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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모든 미술의 시작은 점, 점묘파 / 현대미술 걸작선

tlsdkssk 2018. 11. 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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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걸작선

RouenCathedral_Monet_1894


Claude Monet. Rouen Cathedral

▲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


▲ 피사로의 <사과 수확>  Apple Harvest by Camille Pissarro



모든 미술의 시작은 점, 점묘파


인상주의의 등장은 당시 미술계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인상주의로부터 충격을 받은 신진 화가들은 인상주의의 기법을 더욱 발전시켜 이후 신인상주의, 혹은 점묘파라 불렸다.

그 과정에서 쇠라는 색이론을 미학적으로 적용하기도 했다. 색상을 지각하는 감각의 배후를 파고 들어 색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현상에 주목한 점묘파는 20세기 과학적 인상주의의 문을 열었다.


정 장 진 미술 평론가


점묘파, 인상주의의 직계 후손


인상주의 화가들은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가 텍스트에 기록된 이야기가 아닌 눈에 비친 광경들을 그렸다. 철로가 놓이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사생을 한 것인데, 지금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하는 예능활동이지만 19세기 후반만 해도 이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자연히 날씨나 시간에 따라 순간순간 변하는 풍경을 캔버스에 담기 위해서는 빠른 손놀림이 필요했고 밑그림인 소묘는 고사하고 물감을 섞을 시간도 없었다.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등 세 명의 “골수” 인상주의자들은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터치 위주의 민첩한 붓질을 통해 작품을 그리게 된다. 모네가 그린 해변 그림에는 모래가 그대로 묻어있을 정도였다.


모네 같은 화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풍경을 시시각각 관찰하며 수십 장의 연작형태로 제작하기도 했다.

 “여보, 성당이 무너져 내리는 악몽을 꾸었소……”

모네가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의 대성당 앞에 여인숙을 잡아 놓고 같은 창문 앞에서 <루앙 대성당 연작>을 그릴 당시 아내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오는 말이다. 모네는 이외에도 <포플러 연작>, <노적가리 연작> 등을 그렸으며 수련의 화가로 불리기도 하는 그의 수천 점에 이르는 수련 그림들 역시 하나의 연작에 다름 아니다.


관학파의 고루한 미술관에 대한 일대 도전이었던 이들 인상주의 화가들의 반란은 당시 갓 미술에 입문한 젊은 화가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민첩한 손놀림, 거칠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터치 위주의 붓질 그리고 무엇보다 오직 야외에서만 거머쥘 수 있는 밝은 색과 예리한 구도는 하나의 축복이었다.

젊은 화가들은 인상주의를 모방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쇠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선배 인상주의 화가들의 기법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이런 이유로 후일 쇠라를 비롯해 인상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일군의 젊은 화가들을 신인상주의(néo-impressionnisme)라고 부르며, 선배들의 터치를 정교하게 다듬어 일일이 점을 찍어 묘사한 탓에 점묘파(點描派, 불어로는 포엥티슴 pointillisme)로 칭하기도 한다.


1.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86, oil on canvas, 207.5 × 308.1 cm, Art Institute of Chicago   Georges Seurat


Self-Portrait with Grey Felt Hat, Winter 1887–88. Van Gogh Museum, Amsterdam

2. 반 고흐의 <자화상>


Paul Signac - The Papal Palace in Avignon, 1900 at Musee d'Orsay Paris France

3. 시냐크의 <아비뇽의 교황궁>


빛과 색을 중시한 인상주의와 달리 쇠라는 모든 사물들을 점으로 묘사하면서 색과 색이 만나 고유한 색감이 사라지고 제3의 다른 색이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만났다. 이제 쇠라에게는 빛과 색들이 어울려 있을 때 이 어울림을 지배하는 시지각적 현상과 그 현상의 배후가 더욱 중요한 것으로 다가왔다.


수도승 같이 그림을 그린 점묘파 화가들


우선 쇠라의 가장 유명한 점묘 작품인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를 보자. 가로 세로가 각각 308cm, 207cm인 이 큰 그림을 쇠라는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 모두를 일일이 점을 찍어 완성시켰다. 25살 되던 해인 1884년에 시작해 무려 2년이 넘게 매달린 그림이다. 자료에 의하면 이 작품 하나를 위해 38점에 달하는 유화 크로키를 그렸고 데생만도 23점이나 남아 있다. 얼마나 고생을 하며 이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일요일 오후, 파리 인근 센 강의 한 작은 섬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단순한 그림이다. 그렇다면 왜 화가는 이 그림에 그토록 매달렸던 것일까? 또 왜 모든 것을 점을 찍어 묘사해야만 했을까?


그림을 잘 보면 사람들 사이에 묘한 침묵과 거리감이 느껴진다. 강아지들이 뛰놀고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지만 그림은 야릇하게도 적막감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 마치 토키 영화가 나오기 이전의 무성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만 같다. 쇠라는 모든 사물들을 점으로 묘사하면서 선배인 인상주의 화가들이 못 보던 것을 보았으며 나아가 오직 점을 통해서만 묘사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감득해 낸 것이다.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쇠라는, 색과 색이 만나면 고유의 색감들이 사라지고 제3의 다른 색이 떠오르는 현상을 알고 있었고 이 현상을 자연과 사물들 모두에 대입해 보려고 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고유의 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현상에 의하여 굴절되고 왜곡되는 현상을 드러내고 싶었고 나아가 감각 전체의 배후를 들여다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사회적으로는 이제 막 시작된 일요일 노동 금지 정책에 의해 평화롭게 휴식을 즐기는 당시의 모습을 일러주지만, 그 그림에 감도는 야릇한 침묵과 적막감은 감각의 배후에 있는 보다 근원적인 원리에 대한 그의 탐구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이제 쇠라에게는 인상주의자들과는 달리 빛이나 색이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빛과 색들이 어울려 있을 때 이 어울림을 지배하는 시지각적 현상과 그 현상의 배후가 더욱 중요한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실제로 대비 효과가 강할 경우 황색 계열이 적색 계열과 인접해 있을 때는 초록색 계열의 색감을 보이고 초록색 계열과 가까이 놓일 때는 적색계열로 보인다. 색은 이렇게 주변의 색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다.
반 고흐의 강렬한 그림들은 이런 대비를 가장 극적으로 사용한 사례들이다. 그러니까 반 고흐는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던 사물들의 배후까지 내려갔던 것이다.


색이론에 바탕을 둔 과학적 예술


감각의 배후에 있는 보다 근원적인 원리에 대한 이 호기심은 사실 과학자의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쇠라를 비롯해 시냐크, 크로스 등 점묘파 화가들은 물론이고 인상주의자들도 당시 슈브뢸이라는 과학자가 발표한 색이론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슈브뢸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에 크게 유행했던 영매를 통해 사자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영혼 불멸설 신봉자들의 유사종교를 경계하며 강하게 비판하던 과학자였다. 태피스트리를 짜던 고블랭 공방의 책임자이기도 했던 그는 직공들이 원하던 색감이 나오지 않는다고 자주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들었고 이 현상에 호기심을 느끼다가 연구를 한 끝에 문제가 염료의 화학성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색들의 간섭현상에 있음을 알아낸다. 이미 들라크르와도 이 연구를 일고 있었고 인상주의자들도 잘 알고 있었던 점이었다.


색이론은 뉴튼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색채론 3부작을 쓴 독일의 문호 괴테와 맥스웰 방정식으로 유명한 맥스웰은 물론이고 흔히 돌터니즘(doltanism)으로 불리는 색맹 현상을 발견한 18세기 말의 돌턴까지 많은 과학자, 예술가들이 관심을 가졌던 분야다. 우리가 색맹 테스트를 받을 때 넘기는 원형의 테스트 그림들은 사실 점묘파의 가장 초보적인 그림에 해당한다.


1. 크로스의 <저녁바람>  L'air du soir, c. 1893, Musée d'Orsay .

Henri-Edmond_Cross_-_The_Evening_Air


2. 들라크르와의 <사자사냥 습작>  Study for The Lion Hunt by Eugène Delacroix



OLED와 하이 데피니션 TV의 선구자, 점묘파


낭만주의 화가인 들라크르와는 북아프리카 지중해를 여행하며 충격을 받고 돌아온다. 낯선 문명도 그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어둡고 습기 찬 북 유럽과는 전혀 다른 풍광 속에서 들라크르와의 눈과 감각은 전혀 다른 세계를 봤다. 모네도 마찬가지였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북불의 르아브르 해변가에서 자란 모네 역시 후일 아드리아해의 밝은 빛이 쏟아지는 베네치아를 여행하며 “조금만 일찍 베네치아에 왔었다면……” 하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색이론은 들라크르와, 모네 등 극도로 예민한 눈과 감각을 갖고 있던 화가들을 만나 비로소 미학적, 철학적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쇠라는 이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경우다. 반 고흐도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많은 자화상을 점묘 방식으로 그렸다. 우리는 오늘날 가시광선 이외에 다른 광선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가 보는 색들이 하나의 본질이나 원형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서로 섞인 상태에서 다른 색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패션과 디자인은 이러한 색들의 조화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점묘파 혹은 후기 인상주의는 색에 관한 이론과 그것의 미학적 적용을 통해 시간이나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으로, 20세기의 문을 연 19세기 마지막 사조다. 하지만 많은 미술사가들은 점묘파를 단순히 과학적 인상주의로 보려고 하질 않는다. 실제로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옵아트(Op art)는 점묘파의 그래픽적 응용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의미에서 점묘파는 미술의 기법이 아니라 철학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상에 대한 근원적 질문의 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옵아트 이전에 팝아트(Pop art)예술가로서 대중적인 만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보면 망점(網點,dot)을 그대로 확대해 그림에 노출시켰다. 화소수는 이젠 OLED 패널의 선명도를 측정하는 단위가 되었으며, 화면은 갈수록 더욱 입체감을 주는 3D로 진화할 것이다.


쇠라는 이미 100여 년 전에 점을 찍는 수도승 같은 고된 작업을 통해 오늘날의 하이 데피니션을 넘어서는 울트라 TV, 즉 초고화질 화면을 예견한 것이다. 같은 논리로 우리는 모네의 연작들을 영화가 탄생하기 오래 전에 이미 영화적 감수성을 표현한 선구자적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금융.

전국은행연합회 (http://www.kf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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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86, oil on canvas, 207.5 × 308.1 cm, Art Institute of Chicago Georges Seurat


Georges Seurat Bathers at Asnières, 1884.


Henri-Edmond_Cross_-_The_Evening_Air


La_fuite_des_nymphes Henri-Edmond Cross


Lion Hunt (1855), Nationalmuseum, Stockholm




https://en.wikipedia.org/wiki/Rouen_Cathedral_(Monet_series)

https://en.wikipedia.org/wiki/Camille_Pissarro

https://en.wikipedia.org/wiki/Georges_Seurat

https://en.wikipedia.org/wiki/Vincent_van_Gogh

https://en.wikipedia.org/wiki/Paul_Signac

https://en.wikipedia.org/wiki/Henri-Edmond_Cross

https://en.wikipedia.org/wiki/Eug%C3%A8ne_Delacroix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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