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크랩] 파우스트

tlsdkssk 2018. 6. 26. 06:22

 

파우스트’는 민음사 번역본(정서웅 옮김)이 널리 추천되고 있고 여기에 안진태의 ‘파우스트의 여성적 본질(열린책들)’을 함께 읽으면 맥락을 짚고 이해할 수 있다.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년)는 ‘파우스트’를 25살에 쓰기 시작해 죽기 한 해 전인 82세에 완성했다. 그는 이 소설을 완성할 때에는 백 살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듬해 바로 세상을 떠났다. 집필 구상을 포함해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공들인 만큼 그 속에는 작가 괴테의 삶과 세계관인 이른바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즉 질풍노도기의 자유분방한 천재성, 그리스적 조화미를 추구한 고전주의 정신은 물론, 긴 생애의 온갖 체험과 예지가 깃들어 있다.

 

괴테는 무엇보다 이 비극을 통해 강렬한 인식에의 욕구를 지니고 용기 있게 자아를 성취해 나가는 르네상스적 인간상을 그려내고자 했다. ‘파우스트’는 제1부와 5막으로 구성된 제2부로 구성된다. 작품의 중심에는 주인공 파우스트가 있지만, 파우스트의 영혼을 파멸시키고 또 구원하는 두 여성인 그레트헨(제1부)과 헬레네(제2부)도 파우스트 못지않은 주축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의 ‘죄와 구원’을 담아내기 위해 먼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계몽주의의 시대정신을 담은 기본 주제를 제시한다.

제1부 ‘천상의 서곡’에서는 주님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사이에 내기를 거는 장면이 나온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주님이 허락만 해주신다면 녀석을 슬쩍 나의 길로 끌어내리리다”라고 제안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두고는 “하늘로부터는 가장 아름다운 별을 원하고, 지상에서는 최상의 쾌락을 모조리 맛보겠다는 기세”라고 비유한다. 어쩌면 이런 양면성이야말로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일 것이다.

 

이에 주님은 “파우스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주님(하느님)의 이런 신뢰와 확신이 바로 이 비극의 기본 주제이자, 의도된 각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정된 진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존재가 파우스트다. 요컨대 파우스트는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자아의 한계를 넘어서고, 나아가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사람이다.

 

괴테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시를 쓴 적이 있는데 여기에 신적 인간, 즉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이 잘 담겨져 있다.

 

“나는 여기 앉아서 / 내 모습의 인간을 만드노라. / 나를 닮은 종족으로, 괴로워하고 울고 / 즐거워하고 기뻐하지만 / 너 따위를 숭배하지 않는 / 나와 같은 인간을 창조하리라.” 신을 향해 거침없이 “너 따위를 숭배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 구절 때문에 괴테는 비기독교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회의에 빠진 인간 파우스트를 유혹할 수 있다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장담에 주님은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알고 있다”고 응수한다. 이 문장은 비극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인 파우스트가 그를 파멸로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종국에는 이겨낸다는 말이다.

 

“아!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심지어는 신학까지도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철저히 공부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가련한 바보. 전보다 똑똑해진 것은 하나도 없구나!”

 

지식에 대한 회의로 절망에 빠진 파우스트는 자신에게는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고백한다.

 

“내 가슴속에는, 아아!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 있으니, 그 하나는 다른 하나와 떨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하나는 음탕한 사랑의 쾌락 속에서, 달라붙는 관능으로 현세에 매달리려 하고, 다른 하나는 용감하게 이 속세의 먼지를 떠나, 숭고한 선조들의 영의 세계로 오르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개의 영혼’은 최고의 인식과 인생 향락을 동시에 갈구하는 파우스트의 이중성을 가리킨다. 또한 ‘두 개의 영혼’은 괴테 자신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영혼이기도 할 것이다. 파우스트는 결국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고 ‘인식과 향락’의 경계 놀음을 하기 시작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 순진무구한 소녀 그레트헨을 범하게 한다. 마녀의 부엌에서 영약을 마시고 20대 청년이 된 파우스트는 그레트헨을 첫 쾌락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소녀의 고귀한 사랑은 방탕한 파우스트의 마음까지 정화시킨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메피스토펠레스의 농간으로 그레트헨은 파우스트가 건네준 수면제로 급기야 어머니를 죽이고, 파우스트는 그녀의 오빠를 죽이게 된다.

 

죄책감에 빠진 파우스트를 메피스토펠레스는 ‘발푸르기스의 밤(독일에서 마녀들이 브로켄에서 큰 축하 행사를 열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밤의 축제)’의 환락경으로 이끈다. 이것이 파우스트를 잠시 도덕적 마비에 빠지게 하지만, 그레트헨의 파멸 소식을 듣고는 연인을 구하러 감옥으로 향한다. 그레트헨은 미쳐버린 상태에서도 파우스트를 용서한다. 그녀는 탈옥하자는 파우스트의 손을 뿌리치고 “양심의 가책은 어떡하고요”라며 끝내 사형대로 향한다.

 

제2부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무대다. 파우스트는 파리스의 연인이었던 헬레네와 결혼한다. 그러나 ‘환영의 여인’ 헬레네는 끝내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그녀의 옷과 베일만이 파우스트의 팔 안에 남아 있다.

 

여기서 괴테의 여성관이 드러나 재미를 더해준다.

 

“무엇이! 여자의 아름다움은 별것 아니오. 경직된 그림인 경우가 흔하지요. 내가 좋아하는 여성은, 유쾌하고 생의 의욕이 넘치는 그런 것. 내 등에 업혔던 헬레네의 그 애교 말이오.”

 

여성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기발랄한 매력이 없으면 그것은 한낱 시체와 같은 경직된 그림에 불과한 것으로 괴테는 보고 있다.

 

그런데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도 근본악이 아니라 인간을 만족감이라는 위험 상태에서 뒤흔들어 일깨우고 자극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런 의미에서 악도 신의 세계를 유지하는 요소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인간에게 ‘영원히 살아서 움직이는 생성의 힘’을 지속시키는 자극제로서 악마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 주님이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펠레스를 반려로서 붙여주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그레트헨과 헬레네에 이어 다시 한 번 욕망과 정열의 즐거움을 마련해주려 한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이번에는 그의 제안을 단호히 물리친다. 선행의 가치를 깨달은 그는 황제로부터 받은 해안지대를 비옥한 땅으로 만들도록 독려한다.

 

파우스트가 죽자 메피스토펠레스는 도깨비들과 함께 파우스트의 영혼을 빼앗아 가려 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그레트헨의 사랑이 하늘의 은총을 받아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해낸 것. 파우스트를 구원한 것은 그레트헨의 ‘사랑의 힘’이었다.

 

파우스트가 승천할 때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고 천사는 말한다. 이는 주님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한 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문구와 이어지는 대목이다.

 

“미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형언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성취되었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

 

이 마지막 문장은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 말하고자 한 핵심이 함축돼 있다. 여기서 괴테의 여성관이 담긴 그 유명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이 유래했다.

 

 

최효찬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출처 : 내고향 풍기
글쓴이 : 시보네/5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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