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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인리히 쉬츠`십자가 위 예수의 일곱 말씀`/Sch?tz, Die Sieben Worte Jesu Christi am Kreuz SWV478

tlsdkssk 2018. 2. 18. 15:41

 

 

 

 

 

 

Heinrich Schütz, Die Sieben Worte Jesu Christi am Kreuz SWV478


 

 

 

    Introitus: Da Jesus an dem Kreuze stund (A, D, E, F, G) 2'10
Symphonia 1'09
  Evangelist: Und es war um die dritte Stunde (C, Jesus) 0'56
Evangelist: Es stund aber bei dem Kreuze (E, Jesus) 2'11
Evangelist: Aber der Übelthäter einer (A, D, G, Jesus) 3'04
     Evangelist: Und um die neunte Stunde (B, C, E, G, Jesus) 2'04
Evangelist: Darnach als Jesus wusste (C, Jesus, E) 1'53
       Evangelist: Und abermail rief Jesus laut (E, Jesus, B, C, G) 1'27
Symphonia 1'13
Conclusio: Wer Gottes Marter in Ehren hat (A, D, E, F, G) 1'55

Heinrich Schütz - Die Sieben Worte Jesu Christi am Kreuz SWV478

 

십자가 위의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4대 복음에 기록된 십자가 위의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일곱 말씀을 모은 것으로 첫째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둘째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셋째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제자들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넷째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다섯째 `목마르다', 여섯째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일곱째 `다 이루어졌다'이다. 가톨릭교회는 `7'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7은 완전한 숫자이고, 6일간 창조 후 거룩한 날을 의미하며, 영원의 부활을 의미하는 8을 향하고 있다.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예수의 삶 속에서 드러난 말씀과 행적의 요약이고, 죽음 후에 맞이할 부활에 대한 준비를 의미한다. `예수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은 역사상 많은 음악가들의 신앙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쉬츠를 비롯해 하이든, 구노 등 많은 작곡가들이 이를 주제로 작품을 남겼다.

 

〈십자가 위의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초기 바로크의 경건한 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새벽 성당의 종소리 같은 음악이다. 이 당시 독일에서는 수난곡이 유행을 했다. 쉬츠의 이 작품은 수난곡은 아니지만 초기 바로크 시대의 수난곡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4개 복음서 중 하나를 골라 예수의 마지막 행적과 기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노래하는 것으로 바흐의 〈마태수난곡〉이나 〈요한수난곡〉이 그런 예이다. 카셀 주립도서관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예수그리스도가 거룩한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말씀, 작센 선제후의 악장 하인리히 쉬츠가 매우 감동적으로 이를 작곡했다.” 이 작곡 시기는 1645년경 30년 전쟁 말이었다. 그는 전쟁 파탄의 소산으로 당시 참혹한 상태에 처한 북유럽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에서 4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취하여 작곡하게 된다. 이 작품은 종교 여부와 상관없이 듣는 그 순간부터 경건하고 명상적으로 이 시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독일 오라토리오는 독일적인 요소와 이탈리아적인 요소를 혼합한 하인리히 쉬츠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오라토리오는 오로지 복음서만을 주제로 삼는데, 강렬한 정서적 표현을 보여주며 합창에 대한 다양한 기법으로 바흐를 예견하고 있다. 쉬츠의 오라토리오는 각 등장인물이 서로 다른 성부로 노래하는 관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고 소박함과 화려함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17세기 말에 이르면 오라토리오의 대본으로 성서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성서에 운을 붙여 변형시키거나 서정적인 주석을 혼합시킨 다소 감상적인 대본을 사용하게 된다.

 

하인리히 쉬츠는 바흐보다 정확히 100년 전인 1585년 독일 튀링겐 지방에서 태어났다. 1609년 그는 베네치아에서 지오반니 가브리엘리에게 사사 받은 후 작센 선제후 요한 게오르규 1세의 요청으로 드레스덴 악장에 임명된다. 1628년 두 번째 이탈리아유학에서 작곡가 몬테베르디로부터 극음악을 배우면서 그의 작곡 제2기가 시작되었다. 〈십자가 위의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작곡할 무렵 30년 전쟁의 참화로 드레스덴 궁정악단 활동이 중지되자 쉬츠는 덴마크왕궁 악장으로 떠난다.

 

전쟁이 끝나자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여생을 교회음악에만 헌신하게 된다. 그는 독일 합창의 전통에 뿌리박은 폴리포니 양식과 북이탈리아 콘체르토 양식을 하나로 합친 형식과 내용과도 완전한 균형을 갖춘 양식을 새롭게 개척해 나갔다. 그는 80세의 고령에도 〈누가 수난곡〉, 〈마태 수난곡〉, 등을 썼고 87세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인리히 쉬츠' 저자인 에게브레히트는 쉬츠의 예술적 본질을 독일적이고 프로테스탄트적인 인문주의라고 해석했다. 쉬츠는 이를 바탕으로 깊은 신앙심을 나타내는 수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다. 〈십자가 위의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에서 독창 레치타티보로 되어 있는 이야기하는 부분은 자유롭고, 매우 표정이 풍부한 예수의 말씀 부분은 언제나 통주저음과 현악기의 반주가 따르고 있다. 일곱 번째의 말씀이 끝난 후 신포니아가 반복 되면서 짤막한 종결합창이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다. 이 음악이 가지는 성격은 조용하면서도 마음깊이 느끼는 신앙과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 앞에서 열렬하면서도 한없이 정중한 헌신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들을만한 음반: 피터 슈라이어(예수), 테오 아담(죄수), 루돌프 마우에르스베르거(지휘), 드레스덴 성십자가 합창단(Berlin Classics, 1966); 클래망 잔캥 앙상블(Harmonia mundi, 1986); 필리페 피에로(지휘), 리체르카르 콘소르트(Recercar, 1999)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그림] 안드레아 만테냐

이 그림 속에는 예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일곱 가지 말씀이 들어있다.
첫 번째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한 사람들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용서하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카 23,34).
두 번째 말씀은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세 번째는 구경꾼드르이 야유와 모욕 속에서 나란히 십자가에 달린 죄수에게 하신 말씀
“오늘 네가 정령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카 23,43).
네 번째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46; 마르 15,34).
다섯 번째는 “목 마르다”(요한 19,28).
여섯 번째는 “이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역시“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음악] 쉬츠·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많은 작곡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오라토리오 또는 수난곡의 형식으로 다루면서 이 <십자가의 일곱 말씀> 에 곡을 붙였다. 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곡은 바흐보다 1백년 앞서 태어나 17세기 바로크 음악의 선구자가 된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utz(1585~1672)의 작품일 것이다. 이 <십자가의 일곱 말씀은> 17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곡인 데다, 노래 부르기에도 별로 대단한 기교가 필요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18세기 고전주의 음악의 대가였던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Franz Joseph Haydn(1732~1809) 역시 특별한 작곡 의뢰를 받아 <십자가의 일곱 말씀>을 남겼는데 ‘쉬츠’의 곡처럼 처음에는 가사를 붙이지 않고 그냥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만들었다. 허나 30년 후 하이든은 자신도 스스로의 작품을 가사가 있는 오라토리오로 만들어 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겨, 프리베르의 가사를 얻어다가 성악부를 새롭게 작곡,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십자가의 마지막 일곱 말씀>이다.


(지상에서 핀 천상의 음악, 이용숙 지음, 샘터)

 

드레스덴은 쉬츠가 평생 동안 칸토르로 봉사했던 독일 음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 도시의 성 누가 교회의 십자가 합창단(Dresdner Kreuzchor)은 루돌프 마우어스베르거가 쉬츠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끌며 독특한 개성을 풍기는 합창단으로 성장시켰다. 페터 슈라이어와 테오 아담이 이 합창단에서 마우어스베르거에게 훈련을 받았고 올라프 베어도 이 합창단에서 교육을 받았다.

   드레스덴은 중세로부터 라이프찌히와 함께 독일 문화와 음악의 중심지였다. 쉬츠는 이 도시의 성 누가교회에서 독일 음악의 전통을 세웠고 바하는 라이프찌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독일 교회 음악의 전통을 마련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쉬츠의 전통을 이어 받아 성 누가 교회의 칸토르로서 토마스 교회를 제치고 독일 교회음악의 전통을 지켜온 이가 마우어스베르거이다.

   마우어스베르거가 이끄는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은 옛 동독 지역의 교회 합창단의 전통을 대표했고 쉬츠의 연주에 모범을 보여주었다. 음색은 다소 거칠고 기교를 배제한 듯한 소리이지만 소년들 특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애상적인 음조를 띄어 매우 개성이 뚜렷한데, 비슷한 음색의 다른 합창단을 찾을 수 없다.
   빈 소년 합창단이나 퇼쯔 소년 합창단처럼 예리하고 철저히 훈련된 세련미를 찾기 힘들고 영국의 코리스터들처럼 맑고 아름다운 두성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듯한 발성 속에서 심금을 울리는 깊이를 보여준다. 이는 당연히 마우어스베르거의 출중한 감각이 빚어낸 산물이었으며, 누구도 범접키 어려운 경지였다. 

   마우어스베르거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의 쉬츠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은 이 곡의 가장 모범적인 연주라 할 수 있다. 소프라노와 알토, 테너, 베이스 네 독창자가 복음사가를 낭창하고 예수가 테너로, 좌우의 강도가 베이스와 알토로 등장하며 서곡 합창과 종곡 합창이 나오고 간주곡이있는 매우 소박하지만 깊이는 측정하기 힘든 아름답고 비장한 곡이다. 소프라노와 알토의 복음사가도 소년의 목소리인데 특히 알토를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에서는 투박한 가운데서도 잊기 힘든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소년의 목소리에서도 그런 깊이 있는 가창이 나온다는 데서 경이를 느낄 수밖에 없다. 독창자들의 목소리 하나하나도 흠잡을 데 없고 특히 페터 슈라이어가 예수역을, 테오 아담이 오른편 강도 역을 하는 것이 눈에 띈다.

   쉬츠의 '십자가 상의 일곱 말씀'은 성 주간의 곡이라서 자주 접하기에는 제약이 있고 세속의 즐거움이 중시되는 요즈음이라서 더욱 외면되는 곡이다. 게다가 화려함도 없으니 레퍼토리로 선호되기 힘들다.

   국내에는 얼마전 'Berlin Classics' 레이블로 소개되었는데, 같이 실린 무지칼리쉐 엑스크비엔(장송 음악)도 쉬츠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선 빼 놓을 수 없는 주요한 곡이다. 그 외에 국내에 소개 되었던 음반으로 'Musicalische Company'의 연주가 있다.(Dabringhaus und Grimm) 이 음반에서는 두 곡의 5성(SATTB)합창을 5명이 부르는데, 2명의 카운터 테너와 2명의 테너, 베이스가 노래한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이 곡의 소프라노 음역이 E음을 넘지 않아서인지 카운터 테너가 소프라노를 부르는데 소프라노를 맡은 데이빗 코르디에의 음성이 완벽한 소프라노의 음색을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지 덧붙인다면 일전에 화제가 되었던 영화 '파리넬리'에서 파리넬리의 낮은 음역을 불렀다고 알려진 카운터 테너 데릭 리 래진이 합창의 알토를 부른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드레스덴 십자가합창단의 연주보다 현대적 감각이 느껴지며 감정의 절제와 단순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음반으로 '끌레망 잔느깽 앙상블'의 연주를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로 만날 수 있다. 이 연주는 '무지칼리셰 콤파니'의 연주와 같은 스타일이다. 여성 소프라노가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며 부드러운 분위기가 주조를 이룬다. 카운터 테너 도미니끄 비스의 개성 강한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져서 호감이 가지 않는다. 연주는 비교적 평이하고 긴장감이 없어 별 감흥을 전달하지 못한다. 독일어 텍스트로 된 쉬츠의 음악을 뚜렷한 개성도 없이 이러한 스타일로 부른다는 것은 고려해야 할 일인 듯 하다.(1995년)

 

 

 

출처 : 나누는 세상
글쓴이 : 나누는 세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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