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이렇듯 모두의 삶이 특별하다/ 손미나

tlsdkssk 2017. 11. 28. 08:44


 


이렇듯 모두의 삶이 특별하다

언제든 여행을 떠나고, 글을 쓴다. 소설적인 삶을 살며, 진짜 한 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이자, 인생학교 교장인 여자. 이토록 특별해 보이는 손미나는, 우리 모두의 삶이 특별하다고 말한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절제된 책임이 따르는 거예요. 또 정신적으로 상상력의 한계를 갖지 않는 자유를 좋아해요.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어야 자유로울 수 있거든요.

원피스 오즈홍, 반지 디블리스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다. 손미나는 그 자리에 먼저 와 있었다. 촬영장까지 따라온 직원들과 계속해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결정하고, 지시한다. 그녀의 휴대폰은 메모장으로도, 메신저 대화나 전화로도 끊임없이 울려댔다. 지금은 거의 당연한 수순처럼 퍼진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시초, 그것도 KBS ‘9시 뉴스’ 앵커 자리를 박차고 스페인으로 떠났던 손미나.

그녀가 쓴 첫 여행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엄청난 흥행을 했고, 그녀는 여행자의 아이콘이 됐다. 이후로도 프랑스, 일본, 아르헨티나, 페루 등 전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쓰는 여행 작가이자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쓴 소설가로,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건 ‘손미나앤컴퍼니’를 운영하는 대표이자, 프랑스 유명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이 운영하는 인생학교 한국 지부의 교장, 그리고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이 돼 있다.

최근 TV 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직함만 6개”라고 말한 게 과장이 아니다. 열정, 자유, 용기, 도전 같은 단어와 잘 조우하는 손미나는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돼왔고, 방송 이외에 여러 가지 분야에서 더욱 부지런히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마주 앉은 그녀는 막힘없이 말을 풀어나가면서도, 그 안에 알맹이가 있었다.

방송인이나 사업체 대표로서의 정제되고 뻔한 답이 아니라, 실제 뜨겁게 느끼고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 특유의 솔직함이 있었다. 자신의 특별한 삶을 자랑하기보다는, 개개인에게는 가장 특별할 각자의 삶에 대한 공감이 있었다. 손미나는 소설 같은 삶을 살았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각자 한 편씩의 소설이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다. 이 ‘특별하게 평범한’ 40대의 손미나는 “스페인, 너는 자유다”라고 외치던 때보다 더 자유로워 보였다.

너무 여러가지 일을 하다 보면 진짜 좋아하는 일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욕심쟁이일지 모르겠는데 정말 저마다 매력이 있는 일이라서 다 재미있어요(웃음). 근데 제일 마음이 평온해지는 건 역시 글쓰기인 것 같아요. 뭔가 익사이팅한 성취감을 느끼는 건 사업하는 것이고.

특히 제가 하는 비즈니스, 인생학교는 많은 분이 와서 “당신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 “터닝 포인트가 됐다” 그런 얘기를 해주시니까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른 보람이 있고. 그런가 하면 강의나 방송은 무대 위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짜릿함이 있고. 다 포인트가 다른 좋은 점들이 있죠.

어느덧 40대예요. 20대에 추구했던 것, 30대에 욕망했던 것, 그리고 지금, 조금씩 바뀌어갈 것 같아요

20대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난 대체 무슨 꽃으로 필까,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시기였어요. 30대는 굴곡이 많은 시기였죠. 최고의 정점도 있었고, 정말 힘든 일도 있었고. 얼마 전에 인생학교에서 ‘들어주는 드로잉’이라고,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듣고 그림으로 만들어주는 테라피에 저도 참여했거든요.

선생님이 제 삶을 그래프로 그려보라고 해서 해봤더니 30대가 난리더라고요(웃음). 정점을 찍었다가 바닥, 아니 지하로 내려갔다가. 그때는 너무 화려해서 감당할 수 없는 일부터 너무 아프고 슬펐던 일까지 격정적으로 일어났던 시기여서 그 안에서 날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40대 들어선 이후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정확히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펼쳐내고 쓸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라는 사람이 쓸모 있는 존재가 될 것인가 등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는 중인 것 같아요.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 인생학교 교장 등 자신만의 영역을 점점 확장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인 건 맞지만, 무슨 일을 막 벌이고 일을 찾아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우연히 생기는 일이 많죠. 인생학교도 인터뷰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을 만났다가 “다른 사람은 싫고 네가 해달라”고 해서 시작한 거고.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도 러브콜이 왔을 때 “내 회사를 시작해서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몇 번 거절했는데, 집 앞까지 찾아와 삼고초려를 해서 하게 된 거예요. 미국 본사 대표 아리아나 허핑턴이 제 이력서를 보고 “이 사람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했고, 저도 그녀와 직접 통화하고 나니까 마음이 바뀌더라고요. 그녀가 너무 멋있어서.

왜 손미나 아니면 안 되는 거였을까요

그녀가 말하기를 첫째,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방송 매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했던 앵커 출신이었으면 했고. 둘째, 자기 이야기를 글로 써본 경험이 있는 저자. 그리고 마지막,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게 ‘여행가’라는 거였어요. 여행하는 사람은 끝없는 호기심과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새로운 대안을 찾는 훈련이 돼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맞춘 조합이 저였죠.

재미있는 건 전 세계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인은 다 여자이고, 저처럼 방송 앵커 출신에 글 쓰는 사람이에요. 특이하죠? 그렇게 기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저 자체도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니까 죽어도 못 하겠다고 도망갈 수도 있는데, 결국 하게 되는 거죠.

나이 들수록 욕심이 줄어들진 않나요

지금은 사실 일의 수나 업무량을 줄이는 건 제 뜻대로 되지 않아요. 하지만 어쨌거나 하나의 방향으로 모이고 있는 것 같긴 해요. 결국 커뮤니케이터, 인플루언서의 역할이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전 점점 더 버리고 사는 것에 관심이 많고, 무소유 철학에 대해 계속 생각하거든요. 다만 줄지 않는 게 있다면 호기심. 전 항상 뭔가가 궁금하고 새롭고 막 재미있고 그래요. 뭘 가지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알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죠.

이번에 정치권에서도 콜이 정말 많았어요. 근데 그쪽으로는 단언컨대 관심이 없고. 오히려 저 자신을 더 탐구하고 제 주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뭐 때문에 고민인지. 제가 볼 때 인생은 어차피 짧은 여행 같은데, 그 여행 동안 각자가 무슨 역할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내가 고민하는 만큼 저 사람도 고민일 텐데,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이 조금 더 의미 있을까. 그런 것에 대한 탐구, 호기심이 계속해서 많아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해 잣대가 많잖아요. 나이가 차면 결혼해라, 결혼하면 애 낳아라, 혼자 늙으면 외롭다, 언제까지 떠돌면서 살 거냐 하는 시선들. 이런 것들을 노골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을 텐데, 손미나는 어떻게 대응하나요

저도 이제 세상을 알 만큼 아는 나이이니, 물론 결혼해서 가족이 있으면 힘이 되겠지만, 또 그 가족은 굴레이기도 하다는 걸 알아요. 남편이 있다고 덜 외롭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웃음). 물론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고 싶죠. 비혼이나 독신주의는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결혼을 했다고, 아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꼭 행복인가? 그렇지 않으면 꼭 불행인가? 그에 대해 동의하진 않는 거죠. 행복한 만큼의 걱정거리가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인생이 긴데, 제가 지금 결혼해도 한 남자랑 40~50년 살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절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오프숄더 블라우스 에스카다, 반지 디블리스


오프숄더 블라우스 에스카다, 반지 디블리스
여행을 그렇게 다니는데, 로맨스는 계속되고 있겠죠

누구나 다 ‘비포 선라이즈’를 꿈꾸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더라고요(웃음).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가는 독일을 일부러 기차 타고 가본 적도 있어요. 근데 전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던데(웃음). 그래도 로맨스는 계속 삶의 일부죠. 아직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은 없지만, 찾아야죠.

인생학교를 운영하면서 새롭게 눈뜬 것들이 있다면요

생각보다 우리나라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구나. 위로나 공감이 필요한 사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쿡 찔렀을 때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와서 한 번쯤 (수업을) 들어보도록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물론 여기 온다고 한 방에 해결책이 생기진 않겠지만 내 인생을 한 번쯤은 다르게 볼 수 있는 계기는 된다고 생각해요. 우린 너무 바빠서 ‘나는 누구인가, 잘 살고 있는가’와 같은 생각을 할 시간이 없는데 전 그게 직업이 된 거잖아요. 고마운 일이죠. 제가 매일 하나씩 ‘CEO노트’라는 걸 적는데, 결국 비즈니스는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더라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고요. 내 욕심을 차리는 일이 아니라 이거야말로 제대로 한다면 사회를 위한 봉사라는 생각도 들어요. 진짜 많이 배워요. 직원들은 저보다 어린 친구가 많고, 선생님들은 또 나이 든 분이 많고. 그렇게 제가 세대를 중간에서 이어가면서 정신없이 풍족하게 지내고 있어요.

손미나가 온전히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면

소설을 완성했을 때요! 정말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이상한 표현이지만 내가 만약 물이라면 정수기를 통해서 완전히 한 번 걸러진 느낌이랄까요? 깨끗하게 정화된 느낌. 여러 가지 생각과 복잡한 것을 완전히 다 쏟아내지 않으면 소설이라는 걸 쓸 수가 없거든요. 처음으로 내가 내 안을 온전히 들여다본 시간이었기 때문에. 소설가들이 이렇게 얘기해요.

“첫 번째 소설은 그 사람의 전부이자, 전무이기도 하다.” 다시는 못 쓰는 것. 내가 해본 그 어떤 일보다 고통스럽고 어떤 일보다 희열이 있었어요. 정말 마약 같았죠. 한동안은 일상생활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계속 책상으로 돌아가서 아무도 없는 데서 글만 쓰고 싶은 거예요.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서 생계 걱정이나 재능을 다 떠나서 한 가지만 고르라면 아마 소설을 쓰지 않을까 싶어요. 안 되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싶은 마음. 반쯤 미쳐야 되거든요.

소설가는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다고도 하는데, 전 써보니까 어느 누구라도 자기 일생에 한 번은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소설의 형식이든, 그림 한 점이든, 사진 한 장이든, 뭐가 됐든 내 모든 혼을 담아서 할 수 있는 나만의 창작물.

소설 쓰기 홍보대사 같은데(웃음), 자기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보라는 거예요. 재능보다도 이건 인내심의 작업이에요. 제가 소설을 안 썼더라면 지금 사업도 진작에 그만뒀을 거예요. 근데 소설을 한 번 쓰고 나니 ‘내가 소설도 썼는데 뭔들 못 할까’ 싶거든요.

손미나가 아름답다고, 멋지다고 느끼는 여자가 있다면요

제가 프랑스에 살 때 거의 어머니처럼 생각했던 분이 계세요. 프랑수아즈 박사님이라고 성형외과 의사인데, 실제로도 프랑스 잡지 마리클레르로부터 멋진 여성으로 꼽힌 분이에요. 70대로는 유일하죠. 제가 끊임없이 욕망하는 게 있다면 여성성을 잃지 않는 건데. 한국 여성들은 젊었을 때는 화장도 예쁘게 하고 자기를 가꾸다가 굉장히 빨리 여성성을 포기하고 남잔지 여잔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가잖아요.

근데 희한하게 프랑스 사람들은 젊었을 때는 “이 예쁘고 좋은 피부를 왜 가려?” 하면서 민얼굴로 아주 캐주얼하게 다니다가 나이 들수록 더 여성스럽게 자신을 꾸며요. 파리 동네 슈퍼에 가면 할머니들이 챙 달린 모자에 스타킹 색깔 맞춰서 하이힐에다가 정말 예쁘게 꾸미고 와서 치즈 하나 딱 사 갖고 가요.

제가 이번 여름에 모로코 여행을 프랑수아즈 박사님 댁에 가서 했거든요. 수영장에 같이 갔는데 정말 멋진 남자들이 말을 막 걸어오더라고요. 전 숫기가 없어서 슬슬 피하는데, 오히려 박사님이 교태를 부리시더라고(웃음). 70대에도 여자인 거예요. 저건 정말 배워야겠다 싶었어요. 여성적 매력을 풍기면서 나이 들어야겠다. 게다가 박사님은 지금도 하루에 5명씩 아이들의 귀를 수술해주세요. 그 엄청난 열정, 저한테는 정말 큰 롤모델이에요.

손미나를 늘 ‘자유로움’과 연관을 시키죠. 손미나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요

가장 나다운 게 뭔지 알고 내 분수가 뭔지 아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것. 제가 생각하는 자유는 어떤 기준도 없이 나를 던지는 게 아니라 절제된 책임이 따르는 거예요. 또 정신적으로 상상력의 한계를 갖지 않는 자유를 좋아해요.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어야 자유로울 수 있거든요.

저 사람은 남자니까 혹은 여자니까, 나이가 어리니까 혹은 외국인이니까, 가난하니까, 부자니까 같은 장벽을 자꾸 치면 스스로 자신의 우주를 좁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자유로움이 허락하는 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는 것. 좀 잘못하면 어때요. 다시 하면 되고,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는데.

손미나의 삶을 부러워하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와 비슷한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분들은 완전 환영. 용기 내시고 열심히 헤쳐 나가시고, 분명히 멋지게 살 거라고 얘기하고 싶고요. 또 반대로 자기 현실과 너무 달라서 절 부러워하는 분들에게는 자신의 삶 안에 있는 다른 걸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 같은 사람은 또 반대로 그런 삶이 부러울 때가 있거든요.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고 나한테 A라는 행복이 있으면 B라는 불행이 있고. 저 사람에게는 B가 행복인데 A라는 불행이 있을 수 있어요. 내가 가진 걸 바라보고 사느냐, 갖지 않은 걸 올려다보고 사느냐의 차이죠. 불행이나 아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시각을 갖다 보면 외려 자기 현재가 더 행복해질 수 있어요. 저도 스페인에 가서 배운 거예요. 그네들은 오히려 ‘인생은 비극’이라고 깔고 가요.

유럽에 처음 갔을 때 다들 저보고 “인생이 놀이동산인 줄 아는 것 같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들은 인생은 원래 비극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별거 아닌 걸로 기뻐하고, 현재를 정말 즐겨요. 우리 사회는 너무 이상적인 꿈을 꾸게 하잖아요. 나는 왜 좋은 대학에 못 갔을까, 왜 좋은 데 취직 못 했을까, 왜 결혼을 못 하고 있을까 같은.

얼마 전에 정말 똑똑하고 예쁜 후배를 만나서 “넌 정말 멋있게 살고 있으니 좋겠다”고 격려를 해주는데, 대뜸 “근데 전 왜 결혼을 못 할까요” 하는 거예요. 남들 다 하는데 왜 자신은 못 하느냐고.

그래서 제가 “남들은 다 결혼하지 않아. 결혼했다고 다 행복하지도 않고”라고 말해줬지만 여전히 불행한 표정이더라고요. 전 어쩌면 그런 일들은 정말 소수에게만 오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들만 행복하고 내가 불행한 게 아니라, 그들이 그냥 지나치게 운이 좋을 뿐인 거예요.

우리는 남에게는 참 쉽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어렵다. 완벽한 삶이란 없고, 더 나은 삶이라는 것도 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 나는 어디를 올려다보면서 스스로 불행해지는 걸까. 손미나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질문들을 좀 더 빨리, 혹은 더 자주 스스로에게 던져봤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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