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스크랩]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장미 그리고 루 살로메......

tlsdkssk 2017. 5. 1. 10:44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장미 그리고 루 살로메...... "장미 가시에 찔려 죽다니..." 릴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얼핏 듣기에 낭만적이다. 家門의 紋章이 陽刻된 아래에 적혀 있는 그의 비문 또한 낭만적이다. 릴케는 죽기 1년전인 1925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듯이 유언장을 작성하고,자신의 묘비를 위해 직접 비문을 지었다. 릴케의 묘비 - 스위스의 소읍, Raron의 교회 묘지에 묻혀 있다. 릴케 가문의 문장이 양각된 아래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혀 있다 한다.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 viel Lidem.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꺼움이여. 묘비명만이 아니고 ,릴케는 자신의 시에수도 없을 만큼 장미를 등장시키고 있다. 또한 장미는 그의 일기에도 등장하고 편지에도 빈번히 등장한다. 1900년에 쓴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나는 새로운 애무를 고안해 냈다. 즉 장미 한송이를 감은 눈 위에 살포시 얹는다. 드디어 장미는 서늘한 느낌이 없어지고 꽃잎의 부드러움만이 영상위에 남는다. 그것은 일출 전의 잠과 같다." 이렇게 장미를 사랑하고 장미에 심취했던 그는 실제로 장미를 심고 가꾸는데도 많은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장미를 가꾸고, 장미 향기에 취해 사색하고, 장미를 찬미하는 시를 쓰고, 그리고도 모자랐는지 종국엔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 1921년 부터 릴케는 스위스 론江 계곡의'뮈조트 성'이라는 13세기에 지어진 조그만 古城에 작업실을 갖고 장미를 가꾸며 詩作에 몰두하곤 했다. 그는 이 뮈조트 성에서 '두에노 비가' '오르페우스에의 소네트' 등 그의 대표작들을 많이 완성하게 된다. 이 뮈조트 성에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를 비롯하여 많은 릴케의 친구들이 방문하곤 했는데, 1926년 9월, 친구인 한 프랑스 詩人의 소개로 미모의 코카서스 출신의 이집트 여인 '니메 엘루이' 가 그녀의 친구와 함께 이 뮈조트 성을 방문한다. 릴케는 이 여인들에게 주려고 뜰에 있는 손수 가꾼 장미 몇 송이를 꺾었다. 그런데 이 때 서두르다가 그만 가시에 두 손가락이 찔리고 만다. 이 상처가 곪아서 그는 곧 한 쪽 팔을 쓸 수 없게 되었고 이어서 다른 쪽 팔도 마비되는 불상사를 당한다.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리면서 가시에 묻어 있던 파상풍균에 감염 되었던 것이다. 파상풍균의 특징은 릴케처럼 근육이 마비되어 버린다고 한다. 26년 10월, 장미 가시에 찔리고 한 달 후 릴케는 친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장미가시에 깊이 찔려 생긴 상처가 내 왼손을 수 주일 동안 못쓰도록 만들었고, 이어 심하고 아픈것이 감염되어 오른손을 쓰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붕대를 매긴 했지만 두 손이 열흘 동안이나 쑤시고 아팠다. 이 재난이 채 극복 되기도 전에 시온에서 유행되던 열이 나는 장염에 걸려 또 2주일이나 아주 쇠약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릴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사의 진찰을 미루다가 11월 말에야 발몽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진단 결과 릴케의 병명은 단순 파상풍이 아니라 백혈병이었다. 파상풍의 발병과 또 그 심각성은 생성된 독소의 양과 숙주의 저항력에 따라 결정 된다고 하는데, 백혈병으로 저향력이 약해져 있던 릴케였기에 아마도 장미 가시에 찔린 정도의 상처로도 파상풍이 발병한 것 같다. 루 살로메, 그녀라면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릴케의 백혈병은 그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처음에는 장에, 말기에는 입과 코의 점막에 검은 농포가 나타나 이것이 터지면서 피가 나와 물도 한모금 마실 수 없었다고 한다. 고통속에서 그는 그의 병을 옛 애인인 루 살로메에게 알리도록 한다 릴케는 그를 잘 알고 있는 루 살로메가 자신의 육체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병을 그 녀의 신비한 능력으로 고칠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루 살로메는 19세기를 살았던 여류작가이다. 후세에는 그녀의 작품보다는 그녀의 로맨스가 더 유명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바로 철학자 니체와 시인 릴케와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연인이기도 하였다. 릴케와 그녀는 그녀가 36세... 릴케가 22세였던 1897년에 남부의 예술도시 뮌헨에서 만났다. 당시 무명의 청년 시인이었던 릴케는 이 유명한 여류작가를 굉장히 만나고 싶어 했다 한다. 문인 야콥 바서만의 티파티에서 이들은 서로 알게 된다. 거기에서 이 젊은 시인은 루의 마음에 들었고 릴케는 루에게 매혹되었다고한다. 장미가시에 찔려 그 후유증으로 죽음의 병상에 누워있던 릴케가 1926년 12월에 구술하여 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로 시작하여 역시 '나의 사랑하는사람이여' 로 끝나 있다. 죽기 이틀전 릴케는 병상을 지키던 그의 후원자 분덜리 부인에게 '루 살로메 같으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라고 말했다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장미는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몇몇 지인들과 동료 문인들 만이 참석한 릴케의 장례식은 조촐했다고 전한다. 관앞에는 마치 눈속에서 피어나듯 꽃다발속에 장미꽃들이 피어 있었다고... 키펜바르그가 쓴 릴케의 전기는 전한다. 'Das Leben ist eine Herrlicbkeit' '인생은 멋진 것이다'
Westlife - The Rose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루 안드레아 살로메에게 첫사랑을 고백한 詩 -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팔이 꺾여도 나는 당신을 내 심장으로 붙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멈춘다면 나의 뇌수가 맥박 칠 것입니다. 나의 뇌수를 불태운다면 나는 당신을 피속에 싣고 갈 것입니다.

출처 : 내마음속의 아름다운 오솔길
글쓴이 : swan & ros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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