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김 훈

tlsdkssk 2017. 2. 7. 12:34

김훈 "한국 언론 무슨 짓 했는지 나는 다 안다"

김용운 입력 2017.02.07 00:41 수정 2017.02.07 09:02 댓글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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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공터에서' 발간 기자간담회 개최
마씨 집안 아버지와 아들의 생애 통해 한국사 되짚어
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언론계 현실 지적 '눈길'
탄핵정국과 한국문학에 대한 생각도 밝혀
소설가 김훈이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작 장편 ‘공터에서’ 기자간담회에서 책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해냄)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소설가 김훈(69)이 2011년 ‘흑산’ 이후 6년여 만에 새로운 장편 ‘공터에서’(해냄)를 독자에게 선보였다. 김 작가는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신작은 제가 살아온 시대에 관한 소설이다”며 “1910년 나라가 망했을 때 태어난 아버지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을 태 태어난 아들의 삶을 그렸다”라고 말했다.

‘공터에서’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마씨 집안사람들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아버지 마동수와 두 아들 마장세, 마차세의 삶에는 일제 강점과 해방·한국전쟁·군부독재·베트남 전쟁 등 질곡의 한국 현대사가 빼곡히 교차한다.

김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집필 의도 등을 먼저 설명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가졌다. 김 작가는 질의응답을 통해 최근 시국 현황과 앞으로의 집필 계획 등 자신의 생각을 보다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특히 80년대 언론사 기자로 재직하며 감당했던 당대 군부독재시대의 만행과 이를 묵인하고 협조했던 언론의 처세에 대해 깊은 회한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아래는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5월 독자들과 만나는 대담 자리에서 세월호를 소재로 한 소설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유효한가?

“세월호는 자료 많이 가져다 읽었다. 아주 많이 읽었다. 현지에서 기자들이 겪은 이야기를 쓴 책들은 참 재미가 있었다. 저는 항상 현장을 바탕으로 쓴 글 좋아한다. 다큐멘터리와 르포, 보고서 등 팩트에 바탕한 책들을 좋아한다. 세월호도 역시 그렇다. 그런데 그걸 변형시켜서 밖에 쓸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다음날 자살한 단원고 교감을 생각했다. 인솔 책임자였는데 탈출해서 그 다음날 아침에 나무에 목매달아 죽었다. 이것에 대해 뭐라고 글을 써야 하나. 교감선생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런 것들은 글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건 종교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겠다 싶었다.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편하다고 했다. 아직도 그런가?

“에세이가 편하다. 3인칭의 주인공 없이 무책임한 정서를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어서 에세이가 편하다. 소설 속 3인칭을 만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3인칭을 쓴다 하다라도 소설 속의 마차세, 마장세, 마동수 등 그들을 들여다보면 아직 3인칭에 도달하지 못한 1인칭의 아류다. 제가 존경하는 황석영 선생은 3인칭을 너무 잘 만드신다.”

-요즘 젊은 소설가들에 대한 생각은?

“젊은 소설가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은 없다. 젊은 소설가들은 우리 세대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있다. 우리 세대가 구사하지 못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 보지 못한, 장님들이 보지 못한 세상이 있다. 사소한 것들을 들여다본다. 사소한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화된 것들, 지엽말단적인 것들을 본다. 거기서 큰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젊은 작가들의 시선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다.

다만 요즘 젊은 작가들은 문체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저는 문체를 매우 신중하게 고르는 사람이다. 저는 장인적 기법이 없으면 목표를 향해 갈 수 없다. 한국어를 읽는다는 것은 조사를 읽는다는 것이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와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차이가 크다.

한국어 사유는 조사를 연구한다는 것이다. ‘은·는·이·가’ 등 이걸 뗐다 붙였다 하면서 가난한 살림을 산다. 그 모호함 속에 우리 모국어의 힘이 있다. ‘비가 내린다 와 ‘비는 내린다’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이걸 증명할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을 문장마다 하나 씩 따져 쓰려면 진이 빠지는 것인데 그런 노력 없이는 문체를 만들어 갈 수 없다. 법전 읽기 좋아하는 데 우리 순수한 한국어는 조사와 종결어미만 있다. 한문으로 바꿀 수 없다. 한자는 고구려에 소수림왕 때 들어온 글자로 우리 글자라고 해도 된다. 한자를 모르면 법전을 이해할 도리가 없다. 그 개념을 모른다. 소설에 한자어를 도입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모국어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공터에서’는 지난 현대사를 소재로 했지만 역사를 통괄하는 구성은 아니다.

“한국 문학 전체를 놓고 통찰력 있는 진술을 할 입장은 아니다. 가령 조정래 선배나 황석영 선배는 한 시대의 억압적인 구조 억압적인 틀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거기에 인물을 배치해 글을 쓴다. 윗대 어른들도 그런 작가들이 있었다. 저는 전체를 들여다보는 시각보다는 디테일 통해서 좀 더 큰 것을 말해보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원고지에다 전체를 올려놓고 쓰는 작가들을 한없이 존경하지만 그분들을 따라가지는 못할 거 같다.”

-광화문 촛불집회 등 현 시국에 대한 생각은?

“조카들이 촛불집회에 나가자고 했을 때 감기가 걸렸다고 하고 안 갔다. 친구들이 태극기 집회 나가자고 했을 대도 감기 걸렸다고 하고 안 나갔다. 대신 연말에 관찰자 입장에서 두 번쯤 가서 양쪽을 다 기웃거렸다. 해방 후 70년이 지났는데 엔진이 공회전한 거 같다는 느낌이었다. 70년이 지났는데 나는 어디에 와 있나 싶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 학생들이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송했다. 지금 시위를 하는 그 거리다. 그때 태극기 들고 교통 통제한 그 길에 반나절을 기다렸다. 남학생들은 가로수에 소변을 봤고 여학생들은 그저 참으라는 말만 들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태극기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너무 오래 사는 거 아닌가,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애가 들었다, 위정자들이 만든 난세를 광장의 군중들이 바로잡는 건 불행하지만 그 안에서 희망이 있을 것이다. 분노의 폭발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연결하는 동력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것을 연결하는 게 정치지도자들이다.

태극기 집회에 나온 내 또래들은 1인 소득 100달러 미만일 때 사춘기 보냈다. 기아와 적화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다. 그때는 기아와 적화가 가장 무서웠다. 그런 잠재적인 정서가 저렇게 됐구나 싶었다. 지금처럼 난방을 펑펑 때고 잘 먹어도 기아와 적화의 공포에 흔들리고 있구나 싶었다. 집회에 나온 태극기와 성조기, 십자가 이것은 내가 어렸을 적 전개했던 반공의 패턴과 똑같았다. 갑질의 유구한 전통이다. 태극기와 성조기와 십자가와 반공은 내가 어렸을 적에 기독교 우파와 결탁이 됐다. 그것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

-처음에 기획했던 분량보다 소설이 짧아졌다고 들었다.

“나의 아버지 세대와 나의 세대를 쓰기로 했는데 지금 같은 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 긴 글을 쓰고 싶었다. 다섯 권 정도 쓰고 싶었다. 후기에 밝혔듯이 기력이 미치지 못했고 많은 부분 버렸다. 크로키나 스냅 기법을 쓰다가 안된 건 버렸다. 쓴 것보다 못 쓴 게 더 많았다. 제가 아버지 세대에 대해 쓰는 게 평생의 짐이라 생각했다. 그 아버지 세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저런 아버지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나처럼 생각할 줄 알았다.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저런 삶을 살아선 안 되겠구나. 그런 고통들이 제가 글을 쓰게 된 중요한 본질이었다.”

-희망과 고통 중에 어떤 것을 쓸 것인가?

“괴로운 질문이다. 희망과 고통 중에서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걸 고민하고 있다. 제가 이번 소설에서 말할 수 있는 희망이란 것은 아주 사소한 것. 갓난애가 태어나는 거 특히 여자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여성의 생명이 태어난 것은 놀랍고 신비스러운 것이다. 여성은 또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까. 써놓고 보니 그런 것들이 희망이라고 한 게 한심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그게 아니면 또 뭐가 희망인가? 이념이 희망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참 자신이 없는 부분이었다. 희망이라는 것도 결국 생활 위에다가 건설할 수밖에 없다. 갑질을 쳐부수는 것들. 이런 게 희망이다.”

-제목과 주인공 마동수의 이름에 담긴 의미는?

“공터는 역사적 구조물이나 시대가 안착 될 만한 건물이 들어서 있지 않은 곳이다. 저와 아버지와 제가 살아온 시대를 공터로 본 것이다. 돌이켜 보면 70년 동안 가건물 위에서 살아왔다고 느낀다. 그런 비애감과 연결이 되어 있는 제목이다. 마동수는 아버지 동녘 동에 지킬 수를 썼다. 애국적인 이름이다. 결국은 애국과는 하나도 관련 없이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로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 ”

-책에서 박정희 시대를 쓰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던 80년대도 빠졌다.

“내가 그동안 글 쓰는 게 매우 저조했다. 후기에도 밝혔듯이 몸이 안 좋았다. 특별히 아픈 데가 있는 게 아니라 노화가 왔다. 글을 쓰기가 싫었다. 가끔 단편 쓰고 에세이 쓰며 살았다. 올해부터는 정신을 차려서 열심히 쓰려고 한다. 닭이 알 낳듯이 써보려고 한다. 70년대를 쓸 생각이 없냐고 묻는데 그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70·80년대에 내가, 우리가, 한국 언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다 안다. 나는 완전히 안다. 어느 언론사도 예외가 아니다.

그 후에 생긴 신생 언론사는 예외다. 신생 언론사들은 80년대로부터 자유롭지만 나는 다 안다. 내 선배들은 더 잘 알 거다. 내 선배들은 정말로 잘 알 거다. 근데 우리 사회는 그 문제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반성하거나 되묻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리고 그대로 흘러갔다. 그것을 말할 때가 되었을 것이다. 1980년. 내가 1974년에 입사해 1년 수습하고 5년 반 차 기자였다. 그때 나를 지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일을 써야되나. 자신이 없다.

나는 그것을 소설로 쓰는 것보다 그 시대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다 모여서 왜 그렇게 됐는지 이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됐는지. 아마 짐작하기에 그 시대에 언론들이 역사라는 것은 그 민주적인 법칙에 따라서 전개되고 진화한다는 확신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런 신념이 없었다. 그런 신념을 가진 언론인도 있었겠지만 분명히 없었고 압도적인 사회 전체적인 공포 분위기에 짓밟혀 있었다. 개인적인 소회다. 그 문제에 대해서 더 늙기 전에 다들 말할 수 있는 후세에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에 그런 언론 행위로써 높이 출세한 사람. 권력의 정상까지 닿은 사람들. 지금도 있다. 다 모여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 소설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