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숲에 몸통만 남은 채
속이 빈 고목枯木이 서 있네요
아버지,
저 나무도 한때는
당신의 그늘처럼 넓고 안온했겠죠
당신처럼 푸르고 건재했겠죠
바람이 불어도 굳건하게 버텨냈겠죠
당신은 마지막까지 청청한 나무였어요
그러니 속이 검다 못해
이미 동굴이 되고 있었다는 걸
어느 누가 알았겠어요
성성한 몸에 동굴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죽음에 성자 같던 당신도 허를 찔린 듯
당황스러워했죠
허어, 그것참!
공동空洞을 돌아 나오는 소리는
오래 묵은 목관악기가 내는 소리처럼
깊고 길었어요
뒤늦게
길을 가다 만난,
죽은 나무의 몸통을 끌어안고
죄인처럼 등을 천천히 쓸어보는 것도
허어, 그것참.
하시던 당신의 목소리가
그 안에서 들려오기 때문이죠
그때,
당신의 텅 빈 몸을 안아드려야 했는데
내 팔은 너무 짧고 허약했어요
'사진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정호수 (0) | 2016.07.10 |
---|---|
송탄 국제시장에 가다 (0) | 2016.06.26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0) | 2016.04.27 |
[스크랩] 야생 제비꽃 (0) | 2016.04.26 |
[스크랩] 창덕궁4/13 (0) | 2016.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