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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우 평론

tlsdkssk 2016. 3. 16. 07:52

석창우 31회 개인전 평론-미술평론가 홍경환

 

31회 개인전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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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의 표리일체, 그 여백 아래 휘도는 자유로움

-작가 석창우 작품에 대한 소론

 


홍경한(미술평론가, 경향 article 편집장)

 


여백, 그 틈새마다 감동이 새겨진다. 일획으로 가로지어가는 붓질 사이엔 신념이 자리를 부여받고, 채움과 비움의 이치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나드는 순간 장애 화가라는 세속적 편견마저 허물어진다. 그뿐이랴, 리듬을 타고 도는 그의 동세엔 되레 즐거움이 쌓이니, 그야말로 생명은 명상의 길에 있음이요, 언제나 괴롭지 않고 즐거움이 채워지면 곧 깨달음에 이른다는 선정(禪定)맞닿는 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만큼 일궈짐에 관한 환희와 희열이 집적되며 공유되고 또한 순환된다. 이처럼 석창우의 작품엔 순환이 놓이며, 그 순환은 특정한 띠 없이도 타자와 화자를 잇는다. 그러나 결국 그의 그림들은 삶에 대한 순응이요, 탈바꿈이자 다시 태어남을 올곧이 새기는 심필(心筆)에서 비롯된다.


주지하다시피 석창우의 그림엔 지필묵(紙筆墨) 혹은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한국화의 테두리 내에서 규정되지 않는다. 한지에 먹을 주로 사용하는 장르에서 자주 발견되는 묵법과 필법, 준법이나 농담 효과 등이 우세하기보단 인체의 균형과 움직임, 입체감, 구조성, 형태의 특징 등을 단시간에 재빨리 포착해서 그리는 서구의 크로키(croquis) 화법과 행위예술에 버금가는 양태가 주로 목도된다. 따라서 그의 그림들 다수는 시각적 외견에 더해 한층 단순화되고 요약된 화풍의 발원, 그 형과 의미와 감성의 교류와 호흡에 의의가 있다 해도 그르지 않다.


실제로 추상성과 상징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완성되는 그의 작품들은 대개 표피적인 반추상의 인체 형상들로 나타나고, 이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잠시 정적에 휩싸이게 할 정도의 생동감과 더불어 화면 밖으로까지 이어지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흘리거나 무의식적으로 그어진 붓 자국들(소위 물파(物派)적인-행위적 개입)은 석창우 작품만의 강한 아우라가 되어 타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만든다. 특히 수성 잔뜩 머금다 이내 날아가 버린 수묵의 흔적들은 회화의 물성을 한껏 내뿜고,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니는 선(형태가 있든 없던), 인체를 비롯한 유무형질의 각종 자연물들은 화면을 누비는 에너지와 어우러지면서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로 언급하는 먹과 서예의 접목(추상성을 지닌 문자), 동작의 신기함과 감탄, 형세의 이면(裏面)에 존재하는 표현의 갈망과 생의 즐거움을 노래하려는 아름다운 마음에 있으며, 연필을 갈고리에 끼우고 연습하던 시절부터 간직해온 예술적 신념이 포착된다는 데 있다. , 그의 많은 그림들 속엔 과거 전기 사고로 인한 작은 비극적 여운이 심층부 어느 지점에 안착되어 있지만, 낙관적이며 수용적인 작가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예술에 관한 신심(信心)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표리일체(表裏一體), 가시적인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힘찬 필세와 그것이 천명임에 순종(順從)하는 작가적 태도로 나타난다. 또한 예술은 행복이고 즐거움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누구나 인식 가능한 사물과 인체를 화면에 부분적으로 배치하여 시각적 안정감을 주는 반면, 또 다른 부분엔 추상적 질서의식을 투입함으로서 자연스러운 중간계를 형성시킨다. 이것이 비록 그의 그림에서 온전히 목도되는 것은 아니나, 그 역할은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곳엔 추상과 구상, 생명의 운율(韻律)이 녹아 있으며, 그 자체로 세상이치와 만물의 주관과 객관이라는 양자 공간성이 심어지는 분동(分銅)이 얹혀 있다. 나아가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로움이 모두 이곳에서 발현될 뿐만 아니라,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지펴낸 여러 수작들이 형과 상, 선과 색이라는 혼돈을 융합한 채 그 중간계 속에서 구현된다.


석창우는 언제나 형태만으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관람자로 하여금 구조적인 현장감을 체험하게 하는 프로세스에 인색하지 않으며, 질서와 혼돈이 은유적으로 숨어 든 화면의 중심에 인지적 사물을 그려 넣음으로써 재차 질서의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공유를 이끈다. 이것은 석창우의 작품세계를 구성하는 알고리즘(algorithm)이 되는데, 1차적인 형상은 지극히 지각적인 구상이지만 그의 정신과 기법은 추상이 되고, 추상인가 하면 자연형태를 무시하지 않은 비구성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음이다.


이 가운데, 화면의 분할과 주제의 재구성, 공간의 확산과 수축 등 모든 조형적인 방면에서 이뤄진 평면감각은 강한 물성의 오브제를 배치하지 않아도 될 만큼 수묵 크로키자체로 구성의 탄탄함을 갖게 한다. 그 탄탄함은 이어 마치 구원을 갈망하듯 화가로서,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의 실존적 상황이라는 필터를 통해 고뇌와 어둠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극한에서 그 역으로서 빛의 세계로 향하며 감각을 포용한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쩌면 연민의 시선이며 번뇌와 아픔을 잊거나 혹은 대리하는 이가 지닌 사랑의 눈길이 회화적 메타포를 통해 복선처럼 내재된 채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갤러리 빈'에서의 이번 전시도 그의 이러한 특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무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