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떠난 가족들이 쓰던 이불 제발 치우지 말아주세요"
21일 세월호 참사의 288번째 희생자가 발견됐다.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김모(17)양이 이날 오전 7시 58분 세월호 4층 중앙객실에서 수습됐다. 신원확인소에서 시신이 오길 기다리던 실종자 가족들은 치과 진료 기록과 옷차림 등의 정보로 우선 신원을 파악했다. "우리 애는 오늘도 안 올 건가 봐." 한 어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사고 발생 36일째, 300명을 넘겼던 실종자는 이제 16명으로 줄었다. 단원고 학생 7명, 교사 3명, 일반인 4명, 승무원 2명만이 남았다.
단원고 여학생 중엔 2학년 1반 조모(17)양, 2반 윤모(17)양과 허모(17)양, 3반 황모(17)양이 남았다. 허양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용돈 한 번 달라지 않던 딸이었다. 어머니는 "비싸니까 가지 않겠다는 수학여행을 억지로 보낸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날마다 바지선에 타는 윤양의 아버지는 "다른 학생들은 수습될 때마다 유명 브랜드 옷을 입고 있는데 나는 딸에게 한 번도 그런 옷을 사준 적이 없어 한이 된다"며 울었다. 남학생은 6반 남모(17)군과 박모(17)군, 7반 안모(17)군이 돌아오지 못했다. 외동아들 남군은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내 심장' 이라 저장돼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 곁을 지켰던 1반 담임 유니나(28·일본어) 교사, 양승진(57·일반사회) 교사, 고창석(40·체육) 교사도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회사원 조모(45)씨는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제주로 가던 길이었다. 홀로 구조된 여섯 살 둘째는 고아가 됐다. 안산 합동분향소엔 조씨의 영정이 아내와 첫째 아들 옆에 안치됐다. 유족들은 "시신은 못 찾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권모(52)씨와 아들(6) 부자도 아직 바다에 있다. 권씨 부부는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를 짓겠다는 소망으로 5년간 건물 계단 청소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가족은 이삿짐을 실은 1t 화물차와 함께 배에 올랐다. 오빠가 구명조끼를 입혀 떠밀은 동생 권모(5)양은 구조됐고 엄마 한모(29)씨는 시신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조리실에서 일하던 이모(56·여)씨와 김모(61·남)씨는 뜨거운 기름과 집기 등에 부상당한 채 복도 통로에서 실종됐다. 김씨의 딸(29)은 "선원들 배고프다고 과일 깎아주고 밤이면 야식을 챙겨주시던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16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이미 신원확인소를 수십 번 다녀왔다. 더는 시신을 보고 울지 않는다. 이젠 분노와 슬픔보다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한 실종 학생 아버지는 "처음엔 체육관이 사람들로 가득 차 너무 좁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넓더라"고 했다. 그는 "'나만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압박감이 하루하루 조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체육관 바닥엔 떠난 가족들의 이불 수백 채가 아직 깔려 있다. 담요를 치우니 너무 휑하다는 가족들의 말에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가져다 뒀다.
사고 발생 36일째, 300명을 넘겼던 실종자는 이제 16명으로 줄었다. 단원고 학생 7명, 교사 3명, 일반인 4명, 승무원 2명만이 남았다.
단원고 여학생 중엔 2학년 1반 조모(17)양, 2반 윤모(17)양과 허모(17)양, 3반 황모(17)양이 남았다. 허양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용돈 한 번 달라지 않던 딸이었다. 어머니는 "비싸니까 가지 않겠다는 수학여행을 억지로 보낸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날마다 바지선에 타는 윤양의 아버지는 "다른 학생들은 수습될 때마다 유명 브랜드 옷을 입고 있는데 나는 딸에게 한 번도 그런 옷을 사준 적이 없어 한이 된다"며 울었다. 남학생은 6반 남모(17)군과 박모(17)군, 7반 안모(17)군이 돌아오지 못했다. 외동아들 남군은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내 심장' 이라 저장돼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 곁을 지켰던 1반 담임 유니나(28·일본어) 교사, 양승진(57·일반사회) 교사, 고창석(40·체육) 교사도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조리실에서 일하던 이모(56·여)씨와 김모(61·남)씨는 뜨거운 기름과 집기 등에 부상당한 채 복도 통로에서 실종됐다. 김씨의 딸(29)은 "선원들 배고프다고 과일 깎아주고 밤이면 야식을 챙겨주시던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16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이미 신원확인소를 수십 번 다녀왔다. 더는 시신을 보고 울지 않는다. 이젠 분노와 슬픔보다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한 실종 학생 아버지는 "처음엔 체육관이 사람들로 가득 차 너무 좁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넓더라"고 했다. 그는 "'나만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압박감이 하루하루 조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체육관 바닥엔 떠난 가족들의 이불 수백 채가 아직 깔려 있다. 담요를 치우니 너무 휑하다는 가족들의 말에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가져다 뒀다.
'살며 사랑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외면일기(미셀 투르니에 산문집) (0) | 2014.05.29 |
---|---|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0) | 2014.05.23 |
[스크랩] 5월을 수놓는 순백의 찔레꽃, 정열의 꽃양귀비 (0) | 2014.05.15 |
[스크랩] 새가 남긴 교훈 (0) | 2014.05.13 |
[스크랩] 정약용이 갱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준 22세 청상과부 (0) | 2014.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