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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장석주/식물들의 욕망과 사생활

tlsdkssk 2014. 4. 29. 09:55

식물들의 욕망과 사생활
『욕망의 식물학』, 마이클 폴란, 이창신 옮김, 서울문화사, 2002

직립보행을 하며 언어와 도구를 쓰는 고등 생명체라는 자부심을 안고 사는 인간에 비해 한 곳에 뿌리를 박은 채 살아가는 식물들은 우둔하고 열등해 보인다. 그러나, 식물의 세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런 비교우위에 의한 '고등'의 근거는 의심스러워지고 희미해진다. 식물들은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 동안 진화를 이루어왔으며, 오늘날과 같은 복잡성과 정교함을 갖기 위해 다양한 생존전략을 탐구하고 그걸 유전자에 입력시켜 왔다. 우리는 식물들의 "고등한" 사생활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이 두 발로 걷는 연습을 하는 동안 식물은 이미 빛을 양분으로 전환하는 기술인 광합성을 개발하고, 여러 종류의 화학물질을 만들어냈다. 한마디로 인간이 겨우 자전거를 고안하고 조립할 때 식물들은 달나라에 가는 우주선을 설계하고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의 실존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덮쳐오는 생물체를 피할 길이 없"는 이동의 불가능성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 명민하고 교활해 보일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그 한계에 대책없이 주저앉아 있었을 리는 없다. 식물들은 자신의 종족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서 동물의 힘을 빌어 제 유전자를 세계의 곳곳으로 실어 나른다.

지구 위에 일만 년 전의 백악기에 처음 나타난 속씨식물들이 동물의 힘을 빌어 제 씨앗을 세상에 퍼뜨려 영토를 확장해가는 활동은 눈부신 바 있다. 속씨식물들은 화려한 꽃과 달콤한 액으로 꿀벌을 유혹해 다리에 꽃가루를 묻혀 보내거나,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이나 동물의 털에 달라붙는 아주 작고 정교한 고리를 만들거나, 그리고 도토리와 같은 열매로 다람쥐를 유인해 이 숲에서 저 숲으로 씨앗을 운반하고 땅에 묻게 해서 싹을 틔웠다.
이 식물들이 간교하고도 기술적으로 네 발 달린 동물이나 두 발로 걸어다니는 인간을 이용해 제 이익을 도모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식물들이 수만 년에 걸쳐 인간의 욕망과 필요, 감정과 가치를 자신의 유전자 속에 입력하면서 교묘한 진화론적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사실을 안다면 식물에 대한 인간의 자부심의 상당 부분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병을 고쳐주고, 심미적 욕망을 만족시키고, 도취의 즐거움에 빠지게 하면서 식물들은 공진화(共進化)라는 전리품을 챙겨왔다. 사실 인간과 식물 사이의 거래관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양쪽이 다 이득을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이 사실을 식물들은 아는데, 인간들은 저 혼자 잘났다는 자만에 빠져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몰랐을 뿐이다.
공진화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나 식물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서로를 이용하는 존재들이다. 이를테면 농경(農耕)이란 특정한 풀이 인간에게 식량이라는 형태의 대가를 지불하며 숲에서 나무들을 몰아내고 그들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풀들이 자신들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 결과적으로 식량이라는 새경을 주고 인간을 부리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만 년 전만 해도 들판의 평범한 야생 식물들이었던 벼, 밀, 보리 등은 지구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가진 식물군(植物群)으로 떠올랐다.
사과는 포유동물이 보편적으로 단맛을 즐기는 본능에 착안해 제 유전자를 퍼뜨리는 전략을 펼친다. 사과는 달콤한 맛과 영양가가 풍부한 과육 속에 씨앗을 숨겨둠으로써 씨앗을 퍼뜨리는 기발한 생존전략을 구사한다. 동물이나 인간이 사과에게서 과당을 얻는 대신에 씨앗을 운반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이런 공진화적 거래는 식물이나 인간을 다같이 번창하게 했다. 사과는 씨앗이 채 여물기도 전에 탐욕스런 동물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육이 끝날 때까지 단맛을 유보하고 떫거나 신맛을 유지하고, 색깔을 눈에 띄지 않게 유보하는 책략을 쓴다. 그리고 씨앗에는 미량의 독성을 숨겨두어 동물들이 오직 과육만을 섭취하도록 유도했다.
꽃들은 시각적 아름다움과 향기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다양한 종들의 꽃들은 시각, 후각, 촉각과 관련된 경이로운 수단으로 곤충, 새,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들을 끌어들이고 공진화의 거래를 한다. 오늘날 대지 위에 피어나는 그토록 다양한 종들의 꽃들은 꽃의 욕망과 그 상대의 욕망이 경이롭게 공생한 물증이다.
17세기에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투기의 대상이었다. 튤립 거래는 연중 끊이지 않고,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이 수익이 보장된 신종 투기거래에 뛰어들었다. 생업을 집어치우고, 집을 저당잡히고, 전재산을 투자해 하루가 다르게 값이 뛰어오르는 새롭게 나타난 변종의 튤립 거래에 나섰다. 이 희귀한 변종 튤립이란 다름아닌 바이러스의 장난의 결과였다. 바이러스들은 간혹 "실수로"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빛깔의 튤립을 만들어냈다.
17세기 가장 부유한 유럽 국가의 냉담한 부르주아들이었던 이들은 단조로운 풍경과 단조로운 삶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 희귀한 튤립 거래에 몰입했다. 튤립은 그 빛깔과 형태가 구현하는 덧없는 아름다움말고는 거의 아무런 실용적인 쓰임새가 없는 꽃이다. 네덜란드에 휘몰아친 튤립에 대한 과도한 투기 열풍은 "덧없는 아름다움"이란 튤립의 식물학적 특성과 네덜란드 사람들의 과시적 성향이 맞아떨어지고, 여기에 "예술과 종교 사이에 숨쉴 틈을 만들고자 발버둥쳤던 이 시기 인본주의"와도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마이클 폴란의 튤립에 대한 편애는 두드러진다 ; "튤립은 일차적이며, 이를테면 좌뇌 발달형 꽃으로, 결코 초자연적이지 않고, (여섯 개의 수술에 여섯 장의 꽃잎의 경우와 같이) 외형적 규칙과 구조적 배치가 명확하고 논리적인데, 이러한 모든 합리성은 숨김없이, 즉 눈으로 확인 가능한 방법으로 구현된다. 미끈하고 견고한 줄기는 꽃망울 하나를 공중에 치켜든 채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며, 불확실하고 변덕스런 이 땅 위에, 그리고 이 땅 너머에 선명한 자태로 서 있다. 튤립은 자연의 혼란에 초연한 채 꽃망울을 터뜨리며, 질 때에도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는다." 네덜란드에 불어닥친 튤립 열풍은 버블경제의 요인이 되고, 그 거품이 잦아들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나라의 중산계급이 떠안았다. 결국 투기 열풍에 휩쓸린 중산계층의 파산을 초래했지만, 튤립들에게는 개체 수의 증가와 꽃으로서의 명성을 크게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거래에서 명백히 인간은 큰 손실을 입고, 튤립은 큰 이익을 챙겼다.
교활한 것은 꽃이고, 그 교활에 잘 속아넘어가는 것이 인간이다. 어쨌든 꽃은 "열매와 씨앗"을 맺어 인간과 동물에게 지속적으로 당분과 단백질을 공급하는 식량 에너지의 안정적 물적 기반을 선물한다. 그 결과 꽃들은 포유류의 종의 다양성의 출현에 뚜렷한 기여를 했다. 인간은 꽃으로부터 "감각적 즐거움"과 "열매와 씨앗이라는 생계수단"과 "방대한 양의 새로운 은유"를 얻어낸 대신에 꽃의 유전자들을 세상 곳곳으로 날라 퍼뜨리고, 꽃의 명성을 드높이며, 꽃의 행복을 보장해주었다. 이처럼 "움직이지도 못하는" 꽃들과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간은 공진화의 거래를 하며 상호 욕망을 충족시켜온 셈이다.
야생의 자연에는 "금단의 식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치명적인 독이나 환각작용을 하는 향정신성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 식물들이 주로 금단의 식물의 계열에 들어간다. 그 대표적인 식물이 양귀비나 대마초나 마리화나와 같은 식물이다. 이들은 신경을 자극해 뇌에 특정한 화학물질을 분비해 그것을 온통 적셔놓는다. 이들 향정신성 식물들은 인간의 뇌 내부의 화학적 보상체계에 작용해 때로 비참함이나 지루함을 극복하게 하고, 금기시 되는 행동을 자극하고, 성적 흥분을 일으킨다. 마리화나를 복용하면 뇌는 화학물질을 자체적으로 분비하는데, 그게 카나비노이드이다. 카나비노이드는 뇌에 작용해 "진통작용, 단기 기억 손실, 진정작용, 인지력의 경미한 손상" 등등의 효과를 일으킨다. 한 과학자는 이것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얻고자 했던 것들"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이들 식물들은 초월성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인간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꽃과 꿀벌이 서로 꿀을 주고 꽃가루를 운송하는 임무를 맡기듯이 인간과 식물들 사이에도 어떤 상호관계를 맺으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의 생물다양성에 기여하며 공존해 왔다. 마이클 폴란은 식물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명석한 문장과 유머를 섞은 글쓰기를 통해 "욕망의 식물학"이라는 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욕망의 식물학은 뒤집으면 식물의 욕망학이 될 터이다. 네 가지의 길들여진 식물 종(種)들, 즉 과일, 꽃, 마약, 필수 식량으로 분류될 수 있는 대표선수들인 사과, 튤립, 마리화나, 감자를 통해, 그들의 관점에 서서 식물의 다양한 사생활과 생존전략이라는 비밀을 드러내 보인다.
어쨌든 인간은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특정 식물들을 선택, 재배, 개량해낸다는 인간의 자부심은 인간만이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과도한 자의식의 산물이다. 식물 쪽에서 바라보자면 전혀 딴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동물과 사람을 부리는 식물들의 전략은 기상천외하고 때로는 너무나 명석하다. 식물들은 지상 위에 걸어다니는 동물을 조종하고, 심지어 생명과학자의 두뇌까지 이용해 스스로의 유전자마저 갈아치울 정도로 지능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식물들은 인간의 기초적 욕망, 즉 감각적 미에의 욕망, 도취에의 욕망, 미각에의 욕망에 기대어 유전자에 작용하는 생물적 이익을 알뜰하게 챙기고 있는 셈이다. 세상은 살아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벌이는 하나의 신명나는 춤판이다. 나는 그 춤판의 이름 없는 하나의 춤꾼일 뿐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튤립, 그 아름다움과 투기의 역사', 마이크 대시, 정주연 옮김, 지호, 2002
'악마가 준 선물, 감자 이야기', 래리 주커만, 박영준 옮김, 지호, 2002


출처 : 에세이스트
글쓴이 : 조정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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