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스크랩]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함민복

tlsdkssk 2013. 7. 8. 21:01

 

 

 

어머니가 나를 깨어나게 한다/ 함민복

 

여보시오―누구시유―

예, 저예요―

누구시유, 누구시유―

아들, 막내아들―

잘 안 들려유―잘.

저라구요, 민보기―

예, 잘 안 들려유―

몸은 좀 괜찮으세요―

당최 안 들려서―

어머니―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예, 죄송합니다. 안 들려서 털컥.

 

어머니 저예요―

전화 끊지 마세요―

예. 애비가 동네 볼일 보러 갔어유―

두 내우 다 예, 저라니까요! 그러니까

이따 다시 걸어유 어머니. 예,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안어들머려니서 털컥.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었네

어머니가 자동응답기처럼 전화를 받았네

전화를 받으시며

쇠귀에 경을 읽어주시네

내 슬픔이 맑게 깨어나네

 

- 시집『자본주의의 약속』(세계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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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민복의 시에는 몇 년 전 별세한 그의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물론 살아생전 어머니와 얽힌 사연들이다. 시인이 시골에 계신 귀가 어두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화가 도무지 이뤄지지 않는다. 달포 만에 집에 전화를 걸긴 걸었는데 보시다시피 끝끝내 통화다운 통화는 못해보고 덜컥 전화를 끊고 만 것이다. 물론 나이든 어머니의 청력 때문에 빚어진 에피소드지만 그야말로 모자간 동문서답이다. 시인도 큰 볼 일이 있어 전화한 것 같지는 않고 아무튼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그리고 시인은 그걸 소처럼 무심한 자신에게 귀 어두운 어머니가 경을 읽어주신 것으로 이해한다. 만약 신경질이라도 버럭 내고 말았다면 이런 시가 나올 리 없다.

 

 이 시는 전혀 거창하지도 비장하지도 않다. 그리고 시인이 자주 써먹는 수법이지만 어머니와의 통화내용을 고스란히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유머가 은근히 재미나다. 마지막 연에서 ‘쇠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도 적절히 기용되어 시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감동을 배가시킨다. 오히려 자신을 소로 어머니가 경을 읽어주는 현인으로 환치시켰다. 썩 가슴 찡한 감동은 아닐지라도 이 시를 읽으면 누구라도 마음속으로 내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내 어머니도 이런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부쩍 전화 받는 것을 겁나하신다. 집으로 전화 오는 일 자체가 드문데다 어머니가 직접 받으실 경우도 적은데 가족 말고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렇게 일상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그대로 시로 옮긴 작품들이 꽤 많이 있다. 재미와 유머, 위트를 동반하여 잔잔한 감동을 챙겨주는데, 얼핏 특별할 게 없다 싶은데도 독자의 지지를 얻고 마음을 움직이게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러한 소재들은 일상에서 널려있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는 그것을 발견하고 포착하여 시 안으로 끌어오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이런 현장감 넘치는 대화체 시를 건지려면 헐렁한 여유 가운데서도 마음이 먼저 따뜻해야 하고, 유머를 감각해내고 이해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싶다.

 

 

권순진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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