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흐르는 상자

[스크랩] 속리산에서 / 나희덕

tlsdkssk 2012. 11. 19. 16:58

 

 

 

 

 

 

 

 

속리산에서

 

 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아직 남아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고

 산 속에 갇힌 시간일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들풀처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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