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이야기/ 박노해
바닷가 마을 백사장을 산책하던
젊은 사업가들이 두런거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인데
사람들이 너무 게을러 탈이죠
고깃배 옆에 느긋하게 누워서 담배를 물고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는 어부들에게
한심하다는 듯 사업가 한 명이 물었다
왜 고기를 안 잡는 거요?
"오늘 잡을 만큼은 다 잡았소"
날씨도 좋은데 왜 더 열심히 잡지 않나요?
"열심히 더 잡아서 뭘 하게요?"
돈을 벌어야지요, 그래야 모터 달린 배를 사서
더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잖소
그러면 당신은 돈을 모아 큰 배를 두 척, 세 척, 열 척,
선단을 거느리는 부자가 될 수 있을 거요
"그런 다음엔 뭘 하죠?"
우리처럼 비행기를 타고 이렇게 멋진 곳을 찾아
인생을 즐기는 거지요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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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각색되어 유통되는 이야기 가운데 내가 아는 것도 시의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미국의 한 사업가가 남미의 한적한 어촌마을로 휴가를 갔다. 낮인데도 고기는 잡지 않고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어부를 보았다. 한참 일할 시간인데도 빈둥빈둥 노는 꼬락서니를 본 이 사업가는 속으로 이렇게 게으르니 요 모양으로 밖에 살지 못하지 라며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선 어부에게 다가가 자기의 사업 경험을 들려주기로 했다.
당신은 좀 더 노력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소! 지금 고기만 잡아서 먹고 살지 말고 더 많이 잡아서 돈을 벌면 큰 배를 살 수 있잖소. 통조림공장을 만들어 전 세계로 팔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되고 큰 사업가가 되어 도회로 나갈 수도 있소! 이 말을 가만 듣고 있던 어부는 ‘그럼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고 뭘 하죠?’ 라고 물었다. 사업가는 양양하게 ‘그렇게 하면 지금 나처럼 이렇게 한적한 시골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늦잠도 실컷 자고 매일 저녁 친구들과 놀면 되지요’ 어부가 말했다. ‘별것 아니네요, 지금 내가 그걸 하고 있는뎁쇼.’
비슷한 내용이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에도 나온다. 아프리카 오지에 서양인들이 찾아왔다. 서양인들은 부족민들이 나무를 베어 하루하루 먹고 사는 걸 보고 부족에게 도끼를 선물해 주었다. 이듬해 서양인들이 다시 부락을 찾아갔더니 부족민들은 그 전보다 더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서양인들은 의아하여 왜 더 많은 나무를 베지 않으냐고 물었다. 부족장은 당신네들 덕분에 쉬고 즐길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도시 현대인들이 생의 의미를 외면한 채 돈만 벌면 장땡인양 죽어라고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이 시는 생각케 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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