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의 병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뒷좌석 문을 여는데 반쯤 보이는 기사님의 인상이 반듯해 보였다.
"이대 목동 병원이요."
행선지를 말하자 기사는 엘리가 귀엽다고 칭찬을 한다.
그는 육십중반쯤 되어 보였다.
나는, 기사님 정도면 자제분들도 다 자리를 잡아
굳이 힘들게 벌지 않아도 되는데다가 정년도 없으니 참 좋은 일자리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는 화답으로 주절이주절이 자기 얘기를 늘어 놓았다.
정말 그렇다는 것이다.
KBS방송국의 버스 기사로 30년간 근무하다가 정년 퇴직을 했는데,
집에서 두달 가량 쉬어봤더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개인택시를 장만 했다는 것이다.
아들 둘은 다 결혼을 했고, 며느리들도 든든한 직장이 있으며, 매달 연봉으로 75만원이 나오기에
마누라에게 매달 150만원만 쥐어주면 모든 의무는 끝난다는 마음 가짐으로 일을 한단다.
아침 9시쯤 나와 저녁 7시가 넘으면 일을 끝낸다고.
퇴직금으로 받은 돈 2억7천만원 중 2억은 두 아들에게 각각 1억씩 나누어주어
집을 장만하도록 보태주고 나머지 돈으로 택시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듣다 보니 대한민국에 이렇게 내실 든든한 가정이 과연 얼나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썩 부자는 아니지만 가정이 안팎으로 안정 돼 있고 평생 직장이 보장된 사람이다.
또한 이따금 며늘들에게 기십만원씩 용돈도 준다니 며늘들에게도 대접받는 시아버지 일 것이다.
일부 속빈 강정 같은 강남 부자들에 비한다면 얼마나 탄탄한 소시민인가.
주체할 수 없는 돈으로 인해 자식들간에 문제를 일으키는 졸부의 집안보다
더 윤택하고 건강한 가정의 가장이다.
새삼 대한민국 모든 가정의 평균치가 이 정도만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은 정말 행복하신 분이시네요."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부러움을 표했다.
그도 내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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