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풍경

금아 선생님

tlsdkssk 2007. 5. 29. 00:20
 

                      금아 선생님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딸 재희는 “5월을 그렇게 사모하시더니 5월이 가고 있는 이때에 가셨네.”하며 울먹인다.

  빈소를 찾아 따님 서영씨를 뵙고 이렇게 인사드렸다. “따님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요? 하지만 ‘엄마’만나 행복하게 웃고 계시겠지요!”

  13년 전 처음 뵈러 갔을 때 ‘인연’을 주셨습니다. ‘서병태 선생 청람  피천득’이라 쓰시고….

  3년 전 딸 재희를 데리고 갔을 때는 ‘서재희 양에게 피천득’이라 쓰신 ‘수필’ 주셨습니다.

직업을 물으셔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하니 엄지손가락을 세우시며 “최고야!”하셨지요.

  작년에 뵈러 갈 땐 ‘장미’가 떠올라 빨간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 서운하다’라고 쓰셨기에 “일곱 송이 다 가지세요.”하며  화병에 꽂았다. 화분 옆에 놓으며 “화초에 물 주실 때 잎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세요.”하니 “그래 먼지가 없어야 호흡하기 쉽겠군.”하셨다.

  차와 과일을 주시기에  내가 성호를 그으며 감사기도를 드리자 “나도 세례를 받았다오.

‘기도’를 읽고 나를 방문한 신부님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신 후 프란체스코란 본명으로 세례를 주셨어요.” 하셨다. 교리도 중요하지만 ‘기도’같은 마음이면 자격이 있다는 거예요.

  “난 화제가 빈곤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서 선생과 나는 냇물과 돛단배라고 할까…”

  “아닙니다. 저는 종이배밖에 안 됩니다.” 선생님은 찻잔이 다 식도록 잔을 들었다 놓았다만 하셨다. 찻잔은 대화를 위한 반려로만 보였다.

  ‘만년’에서 선생님은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 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라고 쓰셨습니다. 저희들은 선생님이 가난하게 사랑을 사시다가 가셨다고 확신합니다.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소식과 유머’라고 대답하신 선생님, 저는 소식은 못하여 장수는 바라지 않고, 생에 너무 욕심은 부리지 않고 하루하루 살겠습니다.

  문인 모임에서 처음 만난 분과 인사하고 대화 나누었더니 그 분이 “어쩌면 웃는 모습이 금아 선생님과 비슷하십니다.”하더군요. 듣고 보니 오랫동안 선생님을 흠모하며 살아서 약간은 비슷한 얼굴 모습이 될 때도 있는 가 봅니다.

 

  빈소를 나오기 전에 서영씨에게 물었다.

  “신문에 보니 ’결혼 전 날 눈물을 그치지 않는 딸을 보다 못해 금아가 결혼식 참석을 포기하셨다‘는 기사가 있던데 아빠 대신 누가 따님 손잡고 입장하셨나요?”

  “City Hall에서 식 올려서  한국처럼 입장하지 않았어요. 신문에서 그렇게 썼군요.”

  두 분 오빠, 두 분 올케, 서영씨 나 재희 7명이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부의금‘은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가르침대로 불우 이웃 돕기에 보태겠습니다.”하고 물러 나왔다.

                                       2007년 5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