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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영국인이 가장 열광한 영화 Top 10

tlsdkssk 2006. 10. 23. 20:58
 원문출처 : K-league

 

영국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무엇일까요?

 

  

  

 

콧대 높고 자존심 센 영국 사람들이 가장 열광한 영화는 바로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미국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합니다.

 

최근 영국영화협회(BFI)가 유성 영화가 등장한 이래 역대 영화 티켓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1939년에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3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그 어떤 영화보다도 높은 티켓 판매고를 올렸다고 밝혔습니다.

 

BFI 아만다 네빌 협회장은 이번에 조사한 ‘관객수 톱10’ 목록에 대해

“여론 조사나 평론가 선정이 아니라 관객수에 의해 선정된 것”이라며

“지난 100년 동안 영국에 살았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 영화”라고 했습니다.

 

10위권 내에 든 영화 가운데 가장 최근작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1997년작 ‘타이타닉’으로 1890만명이 관람했네요.

1970년대 이전 영화 관객수는 무역 잡지에 나타난 수치나

각종 일화로 나타난 증거들을 참고해 산출했다고 합니다. 역대 관객수 톱10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2. 사운드 오브 뮤직(1965) /뮤지컬 영화


3.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1937) /애니메이션


4. 스타 워즈(1977)


5. 공원 오솔길의 봄(1948)


6. 우리 생애 최고의 해 (1946)


7. 정글북(1967) /애니메이션


8. 타이타닉(1997)


9. 사악한 여자(1945)


10. 베일 속의 사랑(1946)

 

2001년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아쉽게도 11위에 그쳤습니다.

그밖에도 20위권 내에는 뮤지컬 영화 그리스(12위), 조스(14위), 쥬라식 공원(15위),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16위),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19위) 등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매거릿 미첼의 소설을 원작으로 

빅터 플레밍 감독이 만든 3시간40분짜리 대작이죠.

저는 영화보다도 소설을 너무 좋아해서,

두 권으로 나온 두꺼운 완역본을 초등 시절 몇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고하던 남부 대지주의 딸이 전쟁으로 몰락과 시련을 겪으며 강인해지는 과정이 어찌 드라마틱한지,

지금 생각해도 통속적인 미국 대중 소설 가운데 이 작품을 따라갈 소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매거릿 미첼은 이 소설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집필하는 데 10년을 투자했고

‘내 전부를 다 쏟아부었기에 더이상 남아 있는 게 없다’며 평생 이 작품 하나밖에 남기지 않았지요.

(미첼이 숨진 뒤 엉뚱한 사람이 ‘스칼렛’인가 하는 자칭 속편을 썼는데

엉터리 솜씨로 원작의 분위기만 망쳐놔서 화가 났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을 쓸 때 단순히 스토리를 흥미롭게 전개시키는 것 외에도

개별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 작품을 보며 실감했지요.

스칼렛 오하라의 어머니는 초반에만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지만,

그 하나하나를 묘사하는 것도 어찌 매력적이던지요.

 

예를 들어 ‘스칼렛의 어머니는 참 조신하고 엄격한 성격이었다’ 이런 게 아니라

‘스칼렛은 자기 어머니가 의자에 앉을 때 등받이에 등을 기대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라고 설명하는 식이지요.

집안에서 의자에 앉을 때조차 결코 뒤로 기대 쉬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

그 성격에 대해 더이상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불꽃 같은 스칼렛과 따뜻한 물 같은 멜라니의 캐릭터, 희대의 매력남 레트 버틀러 등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물론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유명한 당시 영화 포스터입니다. 80년대 한 문고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표지가 이 포스터컷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비비안 리의 야한 옷차림에 그야말로 '허걱' 놀라서 금서를 훔쳐보듯 화끈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소설로도 인기를 끌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했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촬영상 등을 휩쓸었죠.

그 유명한 스칼렛의 마지막 대사도 원작에는 없던 것입니다.

그것도 영화속 영어 대사는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결국, 내일은 또다른 날)"인데

우리나라 번역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테니까'라고 멋드러지게 바꿔놔서 더 유명해졌죠.

 

완벽주의적 기질이 있는 제작자 D.O.셀즈닉이 3년간 감독을 수차례 바꿔가며

600만달러라는 당대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여 완성시켰는데,

당시에는 욕도 많이 먹었지만 개봉한 지 50년이 될 때까지 12억명이 넘는 세계 인구가 이 영화를 관람했고

지금까지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누구도 불평할 수 없게 됐습니다.

 

지금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면 누구나 '비비안 리'를 떠올리지만

셀즈닉이 수많은 당대의 쟁쟁한 인기 여배우들을 제치고

무명에 가까운 비비안 리를 주연 배우로 전격 발탁했을 땐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촬영장에서 비비안 리를 발견한 순간 '이 여자다!'하고 마음을 결정했다는 일화가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이 아름다운 비비안 리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촬영 당시 애기 엄마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프랑스계 영국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리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연기를 배운 리가 미국 남부 여성 역을 맡는다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미국 팬들 입장에선 낯설고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었겠죠.

게다가 리는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13세 연상의 변호사 허버트 리 홀먼과 결혼해서 이듬해 딸도 낳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도전할 때는 연극을 같이 하며 만난 대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스캔들을 뿌리며 그를 따라 할리우드로 건너온 상태였죠. (결국 1940년 올리비에와 재혼합니다.)

 

흑인 유모 마마가 파티에 앞서 기둥을 붙잡고 선 스칼렛의 개미 허리를

코르셋으로 조르던 장면이 기억나십니까?

 

  

 

당시 비비안 리의 허리 사이즈가 19인치다 18인치다 확인되지 않은 별별 괴기스러운 설들이 나돌았는데

하여튼 그 정도로 유명했던 개미허리가 아줌마의 몸매였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 불꽃이 튈 듯 도전적인 눈빛과 도도하다 못해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뾰족한 콧날과 새초롬한 입술!

결국 그녀는 '완벽한 스칼렛 오하라'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에 비비안 리 따라한다고 이씨 성을 영어로 'Leigh'로 표기하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영화는 중학교 때 처음 본 것 같은데,

소설을 먼저 읽어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도 좀 있었습니다.

아무리 영화가 4시간 가까운 엄청난 길이였지만,

극 전개를 위해 많은 부분이 생략된 채 시간이 휙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멋진 주인공들과 눈부시게 화려한 의상들,

맥스 스타이너의 웅장한 음악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실제로 대부분 그림이었죠) 배경들은

여러번 다시 봐도 황홀하더군요.

(처음 봤을 때는 흑백이었지만, 두번째부터 컬러로 복원한 작품을 보았기에 그 색감이 더욱 생생합니다.)

제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특히 남부지방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예컨대 ‘콜드 마운틴’ 같은-을 볼 때마다

항상 뭔가 설레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아우라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P.S.

 

참, 당시의 화려한 출연진 4인방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요?

일단 애슐리 역의 레슬리 하워드가 몇년 만인 1943년 비행기 사고로 가장 먼저 세상을 떴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비비안 리

이후 ‘애수(1940) ‘안나 카레니나(1948)’ 등에서 활약했고

저의 또 하나의 all time favorite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서도 호연해 두번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지요.

그러나 올리비에의 아이를 임신했다가 유산하고, 그와 이혼한 뒤 폐결핵과 신경쇠약 등으로 고생하다가

1967년 50대의 아까운 나이에 홀로 쓸쓸한 최후를 맞고 맙니다.

  

  

 

‘바람과..’ 이전에 이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인기 스타였던 클라크 게이블

1960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습니다.

1949년에 자동차 사고로 숨진 원작가 매거릿 미첼을 포함해 다들 장수하진 못한 셈입니다.

이들이 지금도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늙어갔을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렇게 세상을 떴기에 더 절정의 아름다운 모습만이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배우 4인방의 고향입니다.

클라크 게이블은 미국 오하이오주로 그나마 평범하지만,

비비안 리는 다즐링 차로 유명한 인도 다즐링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사 애슐리 역의 레슬리 하워드는 영국 출신이지요.

멜라니 역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특이하게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잠깐,

 

그렇다면 4인방 중 유일하게 남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어떻게 됐을까요?

 

       

 

1980년대 후반까지 TV 등에서 활동한 하빌랜드는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생존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이 최근 모습입니다.

물론 당시의 곱디 고운 선녀 같은 모습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된 모습마저 여전히 미인이라는 느낌입니다.

  

   

 

    과연 얼짱 할머니지요?

    생생한 표정과 고운 피부만 봐서는 60대 정도로 보입니다만

    1916년생이니 지금 과연 몇살인지는 각자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영국인이 가장 열광한 영화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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